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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천 온천이 있는 지누단다(Jinu Danda)를 거쳐 톨카(Tolka, 1,700m)까지 걷는 10Km가 넘는 여정을 시작합니다. 촘롱을 떠나 지누단다까지 내려가는 길은 700미터의 고도를 내리는 급한 내리막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길을 걸어 올라가지만 저희는 내려가기만 하네요. 이 길을 올라간다면 진을 빼는 코스겠지만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겠습니다.

 

헤븐 뷰 게스트 하우스 앞은 간드룩, 지누단다, 시누아 및 촘롱으로 갈라진 삼거리로 첫날에는 시누아로 향했었죠. 이제는 지누단다, 지누 온천을 향해서 걷습니다.

 

고도를 700미터가량 하강시키는 급경사이다 보니 초반부터 아찔한 계단의 연속입니다. 이 계단이 오르막이 아니라는 점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무릎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내딛기만 해도 배낭을 둘러멘 등짝에는 조금씩 땀이 배기 시작합니다.

 

다랭이 논 사이로 만들어진 길에서 오랜 세월 지나다닌 수많은 발걸음이 보이는 듯합니다. 소먹이 풀을 지고 가는 아주머니의 발걸음, 수확한 곡식을 둘러멘 장정의 발걸음, 동네 아이들의 놀러 다니는 발걸음도 있었을 것입니다.

 

무거운 모래주머니를 어깨에 두른 상태로 잠시 숨을 고르고 있는 당나귀들의 모습입니다. 당나귀들도 이 오르막을 오르려면 많이 힘들 것입니다. 땀을 흘리는 당나귀의 등짝을 보면 측은한 마음도 듭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힘센 포터라 하더라도 사람은 모래주머니 하나도 버거울 테니 그런 점을 생각하면 당나귀는 이곳에서 아주 중요한 이동 수단임을 공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우룽(Taulung, 2,180)에 있는 마차푸차레 뷰포인트 롯지에서 목을 축이며 잠시 쉬어 가기로 했습니다. 산장의 이름처럼 마차푸차레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장이었습니다. 타우룽(Taulung, 2,180)은 푼힐 쪽에서 타다파니(Tadapani, 2,630), 출레(Chuile)와 킴롱(Kimrong) 계곡을 거쳐 촘롱으로 가는 길목으로 킴롱 계곡에서 직접 촘롱 고개로 가는 경로도 있지만 나머지 경로 중 하나는 이곳 타우룽을 통해서 촘롱으로 올라가고 또 다른 경로는 저희가 묵었던 촘롱 초입에 있는 헤븐 뷰 게스트 하우스 앞 삼거리를 통해서 촘롱 고개로 올라갑니다.

 

산 아래가 아직 까마득해 보이지만 그래도 산아래가 시야에 잡힐 정도로 많이 내려왔습니다.

 

이른 아침 마당에서 닭에게 모이를 뿌려주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습니다.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는 않는지, 돌아다니는 개나 고양이의 피해는 없는지...... 닭을 풀어놓고 키운다는 게 정말 신기한 모습입니다.  

 

12월을 바라보는 시기이지만 낮은 위도의 지역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곳은 들꽃이 한창입니다.

길을 한참 내려가고 있는데 등산복을 차려입은 일련의 중년 남성들이 현지 가이드를 앞세우고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딱 보아도 한국인들이었습니다. 한국인이면 "안녕하세요!"나 "수고하세요!"라고 인사하며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등 호구조사가 일상인데 저희는 그저 나마스떼 하며 지나갑니다. 히말라야에서는 나마스떼가 이 모든 것을 담은 인사지요. 그런데, 저희도 딱 보면 한국인으로 티가 나나 보죠? 저희가 일행과 마주칠 당시에는 서로 나마스떼하며 인사했는데 일행 중 대장으로 보이는 노년의 트래커가 "한국인이세요?"라고 훅 들어옵니다. "잘 아시면서......"하고 서로 큰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행들은 멀리서 내려오는 키 작은 한쌍이 한국인 이냐, 아니냐로 갑론을박이 있었나 봅니다. "제 말이 맞지요!" 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중년의 남성 일색인 그들에게 저희의 모습이 보기 좋았나 봅니다. "같이 다니시는 게 좋아 보이네요!" 했습니다.  앞으로 이들에게 닥칠 수많은 계단의 고비를 생각하면 지금 숨을 헉헉대며 올라가는 사람들에 던진 "좋은 여행되세요!" 하는 인사는 축복의 기원이었습니다. 

 

촘롱 쪽에서는 좌판에서 오렌지를 파는 남성이 있었는데 지누단다 쪽에서는 한 여성이 좌판에서 작은 바나나를 팔고 있었습니다. 바나나 5개에 100루피를 지불했습니다. 간식으로는 딱이었습니다. 맛도 좋았고요.

 

지누단다에서 만난 수줍은 꼬마 신사. 보는 것만으로도 미소 짓게 하는 귀여운 친구였습니다. 옆지기가 나마스떼하며 초코바 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가볍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지누단다에서는 의도치 않게 엉뚱한 길로 갈 수 있으므로 지도 앱을 보면서 신중한 길 선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단 저희는 온천은 들르지 않을 것이므로 나야풀과 란드룩 방면으로 걷습니다. 

 

꽃으로 장식해 놓은 산장의 모습이 참 아름답습니다. 아무리 위도가 낮고 해발 고도도 낮은 지역이기는 하지만 MBC와 ABC 산장에 눈이 내리는 한 겨울에도 이곳은 여전히 꽃을 피울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습니다.

 

지누(Jhinu, 1,750m) 표지판과 함께 드디어 포카라 표지판도 봅니다. 톨카와 페디까지 걷는 일정을 포기하고 바로 포카라로 돌아갈 수 있는 짧은 경로도 선택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포카라 표지판을 보니 그만 걷고 그냥 포카라로 돌아갈까? 하는 유혹이 마음 한구석에서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숲 너머로 긴 출렁다리도 보입니다. 킴롱 계곡을 건너는 이 출렁다리는 한참을 걸을 정도로 높고, 긴데 287미터에 이릅니다. 촘롱과 시누아 사이의 출렁다리는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깁니다. 출렁다리라고 했지만 영어로는 서스펜션 브리지(Suspension Bridge)라고 합니다. 고소 공포증이 있다면 우회 경로도 있으므로 검토할만합니다. 

사실 저희가 여행을 떠나기 전 경로를 계획할 때만 해도 저 다리의 존재는 알지도 못했고(2018년에 개통됨) 당연히 구 경로로 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글의 맨 위에 있는 지도도 구 경로로 잡아 놓았습니다. 그런데, 눈앞에 나타난 긴 다리에 아무 생각 없이 마법처럼 이끌려 갔던 것입니다.  

 

길을 가다 보니 네팔 산장이 지어지는 민낯도 보게 됩니다. 나름 철근과 자갈, 모래, 시멘트를 섞은 수제 콘크리트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을 보니 허투루 건물을 올리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이 또한 당나귀가 없으면 불가능한 현장입니다. ABC 트레킹 경로는 이렇게 새로운 산장이 계속 등장해도 모두가 영업이 되는 화수분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이제는 촘롱 고개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계곡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계곡 아래로 내려오니 거의 보이지 않았던 안나푸르나 남봉도 눈에 들어옵니다.

 

드디어 287미터에 이르는 지누단다 출렁다리입니다. 네팔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 중에 하나로 2018년도에 개통했으니 그전에 다녀가신 분들은 경험하지 못했을 그런 다리입니다. 딱 봐도 와우! 하는 감탄사로 절로 나옵니다. 문제는 이 다리에 정신이 팔려서 이후 경로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GPS나 지도가 별로 필요 없었으니 여기서도 그럴 것이라는 아니한 생각이 문제였습니다. 하긴 계획 당시부터 이곳이 복잡한 경로라는 것을 생각도 못했고 다리의 존재도 몰랐으니까요. 란드룩이나 톨카로 가려면 다리 건너편의 다리 아래에 있는 티하우스들 앞으로 이어진 길로 다시 내려가야 하는데  다리를 건너서 이어진 길을 그냥 걸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가면 간드룩에서 버스를 타는 길인데, 그걸 몰랐던 것입니다. 다리 앞에서 장사하는 아주머니에게 확인 질문이라도 했으면 괜히 고생할 일이 없었는데 그때만 해도 그걸 몰랐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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