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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르 드 몽블랑(TMB) 걷기를 위해 거쳐가는 제네바에서의 오전 시간은 평화로움으로 시작합니다. 유엔 본부와 부러진 의자 조형물을 거쳐 로잔로까지 걸어왔던 여정은 제네바 1번 도로인 로잔로를 건너서 레만호를 따라 자리한 여러 공원들을 지나 셔틀 보트 정류장이 있는 곳까지 이어집니다. 배낭 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이걸 메고 2천 미터가 넘는 산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눈앞에 캄캄합니다. 내일 닥칠 일이니 아찔한 생각은 접어 두고 지금 이 시간을 즐겨야죠.
공원 지대 걷기는 바흑똥 저택과 공원(Parc Barton)으로 시작합니다. 자전거 라이딩은 정해진 장소가 따로 있습니다. 이곳은 걸으며 산책하기 좋은 곳입니다.
바흑똥 공원 입구에서 바라본 거대한 나무들. 프랑스 파리도 스페인 마드리드도 그리고 이곳 제네바도 오랜 나무들은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귀중한 자산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닫게 합니다. 100년이 넘은 레드우드(미국 삼나무) 숲입니다. 바흑똥 공원은 자연적인 아름다움을 추가하는 영국식 정원입니다.
바흑똥 저택(Parc Barton Pavilions)은 마지막 소유자인 바흑똥(Daniel Fitzgerald Pakenham Barton)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는 이곳을 기부하면서 저택 주위의 레드우드 숲을 보존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합니다. 현재는 국제 연구 대학원(Graduate Institution in Geneva)의 숙소로 이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공원 지대가 레만호(lac Léman) 옆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길을 걷다가 조금만 내려와도 바로 호수 조망권입니다.
바흑똥 공원에서 과학사 박물관 가는 길에 만난 식수대.
과학사 박물관(Musée D'Histoire Des Sciences) 크기는 작지만 나름 흥미로운 주제로 전시를 하는 모양입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무료 개방인데(화요일 휴무) 저희는 다른 여정이 있어 10시까지 기다릴 수 없으므로 생략합니다.
과학사 박물관 외부에 설치된 마그데부르크의 반구 실험(experiment of Magdeburg hemispheres)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장치입니다. 독일 마그데부르크에서 1657년 대기압의 효과를 보여 주기 위해 수행했던 실험으로 두 개의 반구를 맞추고 그 속의 공기를 빼서 진공상태를 만든 다음 두 반구를 분리시키는 실험입니다. 당시에 말 8마리씩을 양쪽에 배치해서 당겼는데도 처음에는 분리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두 사람이 당기거나 위의 장치 같은 데서 매달려도 분리되지 않는 것이지요.
박물관 앞에는 그리스 신화의 사냥의 여신인 아르테미스 조각상이 있었습니다. 로마 신화의 디아나와 같은데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디아나 상의 보조품이겠지요?
모이니에르 공원 가는 길에 만난 세르반테스의 청동 흉상.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라고 적혀 있는데, 스위스 제네바에 생뚱맞게 왠 세르반테스의 흉상이 있을까? 싶었는데 힌트는 그 아래 적힌 도시 이름에 있었습니다. 흉상은 1982년에 세운 것으로 마드리드와 제네바 도시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습니다. 도시 간 자매결연처럼 1년 전에는 제네바 출신의 철학자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동상을 마드리드에 세웠고 1년 후에는 제네바에 세르반테스의 동상을 세운 것입니다. 세계적인 인물의 출신지라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브랜드 가치는 올라가는 법이지요.
공원 지대 걷기는 큰 분수 연못이 있는 모이니에르 공원으로 이어집니다.
이른 아침부터 공원의 잔디를 정돈하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주변의 다른 공원과 달리 이곳은 사람의 손길을 많이 받은 깔끔하게 정비된 공원이었습니다.
통로는 돌판으로 만들어 놓았고, 잔디밭 중간에는 색색의 꽃으로 장식한 화단을 배치했습니다. 왠지 잔디밭에 들어가면 혼날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레만호 주위의 공원에서는 바비큐도 하고 돗자리를 깔고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기도 하는데 이곳에서는 그렇게는 못하고 정원과 주위의 산과 호수 풍경을 즐기는 정도일 듯합니다.
언덕 위의 모이니에르 저택. 적십자 설립자 중 한 명인 구스타브 모이니에르(Gustave Moynier)가 1846년에 지은 별장으로 현재는 교육 기관들이 입주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모니이에르 공원을 지나면 몽 흐뽀 공원(Parc Mon Repos)으로 이어집니다. 몽 흐뽀 공원을 지나면 셔틀 보트 선착장 근처에서 위의 그림과 같은 건물을 만나는데 이름이 어려운 "인도주의 대화를 위한 앙리 뒤낭 센터"(Centre Henry Dunant pour le Dialogue Humanitaire) 입니다. 노르웨이 외교부와 함께 오슬로 포럼을 개최하고 있는 NGO 단체입니다. 2019년 우리나라의 문 대통령도 오슬로 포럼에서 연설한 적이 있습니다. 전 세계 무력 분쟁 지역에서 대화를 중재하는 것이 단체의 역할이라고 합니다. 바로 직전에 지나왔던 구스타브 모이니에르(Gustave Moynier)도 적십자의 설립자 중 한 명이지만 이 NGO 단체 이름에 있는 앙리 뒤낭(Henry Dunant)도 적십자의 설립자 중 한 사람이고 이곳 제네바 출신으로 최초의 노벨상 수상자 이기도 합니다.
1921년 스위스 조각가 칼 알바트(Carl-Albert Angst)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제네바 출신의 프랑스 군인과 스위스 용병들을 기리며 제작한 기념물입니다. 2차 대전(1939~1945) 기간은 나중에 새겨 넣은 모양입니다. 스위스는 1914~1918년의 1차 세계대전 이전에 이미 영세 중립국이었는데(1815년) 무슨 전쟁 기념물이 있을까 싶은데 과거 스위스는 중세로부터 용병이 유명했고 지금도 바티칸의 유일한 군사 조직은 스위스 근위대로 조직되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네바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지역이니 제네바 출신의 프랑스 군인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현재 세계적으로 영세 중립국은 스위스와 더불어 오스트리아와 라오스가 있는데 다들 육지로 둘러 쌓여 있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영세중립국이라 해서 군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주변 강대국들에 의해 중립국으로 승인받았다는 것뿐이고 실체는 조약 등이 전부이기 때문에 히틀러와 같은 인물이 조약을 무시하면 별도리가 없다고 합니다. 위의 사진을 보면 부조로 조각된 군인들이 영화에서 보던 독일군 복장이라 처음에는 이 기념물은 뭘까 싶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스위스는 1차 대전 이후에 군사력 보강에 노력했는데 스위스 군인들의 복장이 딱 저 모습이었습니다. 스위스가 영세 중립국으로 승인받은 배경을 보면 조금 전에 다녀왔던 저택과 관련 있는 모이니에르, 앙리 뒤낭이 주축이 된 적십자 활동의 영향이 컸다고 합니다.
드디어 샤토브리앙 선착장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에서 셔틀 보트를 타고 레만호를 건널 예정입니다. 셔틀 보트도 엄연히 대중교통 수단 중의 하나이기 때문에 제네바 공항에서 받은 80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무료 티켓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티켓이 없다면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자판기에서 표를 구매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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