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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제네바 걷기에서 처음 만난 것은 유엔 광장(Place des Nations)의 평화로운 모습입니다. 아직 관광객들은 보이지 않고 이른 출근 시간이다 보니 이따금씩 킥보드나 자전거를 타고 무심하게 분수 사이를 가르는 사람만 보입니다. 이 광장에서 시위가 열리기도 한다는데 이른 시간에 누리는 평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무거운 배낭과 이어지는 여정만 아니라면 좋은 사색의 시간이 될법한 분위기이기도 합니다.

 

광장 한편에 있는 "부러진 의자, Chair du Palais des Nation"라는 조형물입니다. 그냥 보아도 불편함과 안타까움의 느낌이 밀려오는 조형물입니다.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한 핸디캡 인터내셔널(Handicap International)이란 단체의 의뢰로 스위스의 예술가 다니엘 버셋(Daniel Berset)이 제작한 작품으로 무게 5.5 톤, 높이 12미터에 이르는 목조 조형물입니다. 우리나라를 포함하여 수많은 분쟁 지역에 뿌려진 지뢰는 값은 싸지만 그로 인한 희생과 제거 비용은 엄청나다고 합니다. 이미 매설되거나 뿌려진 지뢰를 모두 제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하죠. 핸디캡 인터내셔널은 북한 장애인을 돕고 있는 단체로 대북 제재 면제를 받은 여러 NGO 단체 중의 하나입니다.

 

국제 노동 기구(ILO), 세계 보건 기구(WHO)를 비롯한 귀에 익숙한 여러 국제기구들이 제네바에 본부를 두고 있는데 스위스 제네바의 유엔 본부는 미국의 뉴욕, 케냐의 나이로비, 오스트리아 빈과 함께 유엔의 4대 사무소중의 하나입니다. 부러진 의자 길 건너편의 유엔 본부를 거쳐 호수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합니다.

 

유엔 광장 분수대 사이를 무심하게 지나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니 다들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평일에 커다란 배낭을 메고 길에 서있는 제가 지금 여행 중이다라는 것이 실감이 납니다.

 

유엔 본부로 건너는 횡단보도에 설치된 보행자 작동 신호등의 버튼. 나라마다 지역마다 특색이 있습니다. 최소한의 기능과 정보 전달을 하는 단순한 디자인이 마음에 듭니다.

 

길을 건너 유엔 본부 앞에 섰지만 할 수 있는 것은 "태극기 찾기". 이국 땅에서 만나는 태극기는 정말 반갑지요. 시간을 맞추어 예약하면 건물 내부를 12프랑에 가이드 투어 할 수 있지만 저희는 생략하고 누군가 지인이 이곳에 근무하게 된다면 직원 투어로 식당과 주변 공원까지 쭉 둘러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네요.

 

유엔 본부 외부로는 철통 보안이 이루어지고 있었는데요. 벽에는 스위스 작가 한스 에르니(Hans Erni)의 평화의 벽(Peace Wall) 작품이 벽화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강대국들에 휘둘리는 유엔의 한계가 있지만 한반도에도 세계에도 평화가 깃들기를 바라봅니다.

 

이제 유엔 본부 담장을 따라 이어진 뻬가(Avenue de la Paix)를 따라서 쭉 내려가면 다음 여정인 레만호 옆  공원 지대와 만나는 로잔로까지 갈 수 있습니다. 도심은 아니기 때문에 처음 접하는 스위스의 길을 조용한 분위기 가운데 걸을 수 있었습니다.

 

가끔 눈을 사로잡는 풍경이 있었는데 바로 전동 보드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운동복 차림도 아니고 거의 정장에 가까운 차림의 남녀 직장인들이 전동 보드로 출근하는 모습은 이방인의 눈에는 정말 생경스러운 풍경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런 기구를 트로티네트 (Trottinette)라 부르는데 점점 사용자도 많아지고 관련 서비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가는 길에는 쎄쉐홍(Gare de Genève-Sécheron)이라는 작은 기차역을 지납니다. 여정 중에 스위스 기차를 타는 계획은 없어서 기차의 생김새라도 보려고 호기심이 발동한 시간이었습니다. 여행 후반에는 체력 회복을 위해 스위스 구간 걷기를 일부 생략하고 결국 스위스 기차를 타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지요. ㅎㅎ

 

기차역을 지나서 좀 더 내려가면 유리로 외관을 마감한 현대식 건물을 하나 만나게 되는데 바로 1950년에 설립된 세계 기상 기구(World Meteorological Organization, WMO - Organisation Météorologique Mondiale, OMM) 입니다. 표준화와 빈곤국을 위한 지원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홍콩 천문대에서 운영하고 있는 세계 기상 정보 사이트인 http://worldweather.wmo.int/kr/home.html도 있습니다.

 

로잔로와 만나는 지점에 세워져 있는 앨버트 토마스 기념물(Monument d'Albert Thomas) 입니다. 조각상에 있는 인물들의 표정이 어두워 보여서 2차 대전의 희생자들과 연관된 것 아닌가? 하는 추측을 했었는데 알고 보니 국제 노동 기구 ILO의 초대 이사였던 프랑스 출신의 앨버트 토마스의 연설문에 등장하는 "4개의 대륙에서 온 노동자들"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 조직되어 세계에 많은 기여를 한 국제 조직입니다. 위키에 적혀 있는 조직의 목표가 가슴에 와 닿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전하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노동을 보장하는 것".

 

드디어 로잔로에 도착했습니다. 로잔로(Rue de Lausanne)는 제네바에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본부가 있는 우리 귀에 아주 익숙한 로잔까지 이어지는 스위스의 1번 도로입니다. 이 도로를 사이에 두고 조금 전에 만났던 앨버트 토마스 기념물 건너편에는 세계 무역기구(WTO)가 있고 로잔로를 건너서 조금 더 우측으로 내려가면 이제 저희가 걸을 공원 지대가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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