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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날에 동복리 숲길을 혼자 걷는 것은 정말 무서우리 만큼 고요함 그 자체 입니다. 

그 길에 만난 "동복리 마을운동장"입니다. 보통 읍 단위 체육 대회를 해도 고등학교 운동장을 빌려서 해야하는데 마을 운동장이 이렇게 좋다니! 감탄을 연발하면서 길을 걷습니다. 관중석에 앉아 잠시 신발을 벗고 발을 쉬어도 좋습니다. 군 연병장에나 있을 법한 큰 스피커가 이채롭습니다. 운동장 끝 부분에는 정자가 있어서 올레꾼들의 쉼터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때마침 마을 청년들이 모여서 불을 피워 고기를 굽고 있더군요. 그렇지 않아도 비상 식량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아 허기진 상태였는데 입에 고이는 침을 참으며 길을 재촉합니다. 북촌에서 김녕까지의 숲길에서는 상점이나 식당을 만날 수 없으므로 미리 식사를 넉넉히 하고 길을 나서던가 도시락이나 비상 식량, 식수를 챙기는 것이 무리하지 않는 올레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숲길의 고요함에 더해지는 "위잉, 위잉"하는 소리들, 세찬 바람에 물 만난듯 돌아가는 풍력 발전기의 날개 소리입니다. 멀리서 바라보면 작은 바람개비 같지만 바로 옆에서 바라보면 정말 거대합니다. 저렇게 거대한 날개를 돌리는 제주의 바람 또한 위대하고요. 올레 19코스와 20코스는 어찌 보면 풍력 발전기와 함께하는 길입니다. 멀리서 보이던 풍력발전기를 지나쳐 또 뒤로 멀리 보내야만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벌러진동산 간세 표지판. 동복리 올레길이 숲길이기는 하지만 풍력발전기 설치 과정에서 만든 길인지 아니면 그 전부터 있던 임도인지는 몰라도 대부분 잘 닦여진 길을 걷게 됩니다. 돌길에 주위를 기울일 필요가 없어서 그런지, 그래서 더 고요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숲길을 걷다가 든 생각은  소음과 안전 문제 때문에 풍력발전기를 민가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이나 바다 한 가운데에 설치할 수 밖에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올레꾼이야 걷다 보면 지나가니까 별 문제가 아니겠지만 소음과 안전을 위해서 민가로 부터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고 그러다 보니 이 숲 가운데 풍력 발전기가 들어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기술이 발전되어 효율과 안전성은 높이고 소음은 줄이는 발전이 있었으면 하네요.

가다보니 이곳이 "동복, 북촌 풍력 발전 단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복, 북촌 풍력 발전 단지"에 총 15기가 설치되어 있고 하나당 1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 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날개 길이가 42.2미터에 이르고 높이가 80미터이니 그 규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전 1기당 1기가와트 정도의 용량이니까 이러한 풍력 발전기 500기가 모여야 원전 1기에 상응하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단순 계산이지만 사전/사후 비용을 감안하면 점차 늘려가야 할 에너지 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안전하게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풍력 발전기를 만들어 볼까하는 생각이 꿈틀 거립니다.

비상 식량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점심 식사도 건너 뛰어서 온몸이 지쳐 있을때 입과 몸도 살짝 깨워준 산딸기 입니다. 어릴적 궁금한 입을 달래준 산딸기였는데 이렇게 올레길에서 벗이 되었네요. 주의할 점은 근처에 밭이 있거나 풀이 노랗다면 산딸기를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제초제 때문입니다. 아쉽지만 어쩌겠어요, 도시락이나 비상 식량을 챙겨서 동복리 숲길을 걷는 것을 추천합니다. 

길을 열어 놓은건지, 닫아 놓은 건지 헷갈리게 하는 출입문입니다. 파란색으로 도색해 놓은 것이 제주 올레와 연관성이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제주 조랑말 모양의 간세도 아니고 ......

잠시 아스팔트를 만나긴 하지만 이도 잠시 올레길은 다시 "김녕"을 향해서 숲으로 들어 갑니다. 

가끔은 도로 바로 옆 숲으로 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아스팔트 보다는 조금 힘들어도 이런 숲길이 좋지요.

드디어 김녕에 도착했습니다. 저질 체력에 온몸은 축축 늘어지고 동네 슈퍼에서 급하게 생수와 초코파이로 허기를 떼웁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앉아서 주위를 둘러보니 슈퍼 주인 어르신의 분재와 물건 배치가 참 깔끔했습니다. 작은 가게를 하더라도 이분처럼 마음을 다해서 해야 할텐데....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니 마을 풍경과 허기에 정신이 팔려서 원래 올레길에서 한 정거장 아래쪽으로 내려와 버렸네요. 원래 목적지는 "감흘동" 버스 정류장인데 먹을 거리를 찾다보니 "김녕리" 버스 정류장이 도착지가 되었습니다. 아무튼 고독의 숲길을 빠져나온 보람을 안고 숙소로 돌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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