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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강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걸었던 여정이 모두 끝나는 여강길 마지막 코스이다. 원래의 4코스는 강 건너 여주 여행자센터에서 시작하여 남한강 출렁다리를 건너거나 연인교라 부르는 여주대교를 건너지만, 1코스를 걸을 때 걸었던 구간과 겹치기도 하므로 우리는 강을 건넌 다음의 여주 5일장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여주 5일장의 들어가는 길목에는 흰 목도리를 두른 평화의 소녀상이 있었다. 많은 지역에서는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는데 나비 문양의 조형물을 배경으로 미소를 가진 표정으로 작은 새를 날려 주는 모습이었다. 여주시 북내면 출신이신 고 이용녀 할머니에 대한 글이 있었는데 16세에 위안부로 끌려가 대만, 싱가포르, 미얀마까지 끌려 다녔다고 한다. 어린 나이에 희생을 강요당한 이분들에 대하여 연민과 위로가 아닌 이념과 개똥철학을 기반으로 온갖 악담과 악다구니를 퍼붓는 이들을 보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시간이 흐르면 이 사회에는 과연 똘레랑스(Tolérance)의 원칙과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원칙이 굳건하게 세워질까?


여주 5일장은 한글시장으로도 불리는데 그 이름에 걸맞은 조형물들이 시장 곳곳에서 나름의 존재감을 뽐내고 있다.


휴일의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니면 장날이 아니라서 그런지 시장 골목은 깨끗하면서도 조용하다. 여주 5일장은 5일, 10일이 장날이다.


여주 6일장을 빠져나온 길은 강변으로 이동하면 우암 송시열의 사당인 대로사(大老祠)를 지나간다. 강한사(江漢祠)라고도 불리는데 정조가 여주 유생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건립한 것이라 한다. 송시열의 고향은 충북 옥천인데 이곳에 사당이 세워진 이유는 효종대왕능과 연관이 있다. 송시열의 효종에 대한 충절로 그가 여주에 올 때마다 영릉을 바라보며 통곡했다는 것에 기인한다. 나라의 힘이 강하여 효종의 북벌이 성공하고 옛 고구려 지역을 되찾을 수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본다. 지금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은 과연 그런 꿈이 있을까?


강변으로 나온 길은 멀리 세종대교를 바라보며 강변 산책로를 서쪽으로 걷는다.


이곳 은행나무들에는 어제 벚나무에 붙어 있던 여주시 수목 관리 시스템의 NFC 태그와 함께 은행나무의 암수를 구별하는 표식을 별도로 붙여 놓았다. 가을철 낙과를 받아 내기 위한 것도 있지만 지속적으로 암나무를 수나무로 교체할 계획도 있다고 한다. 그 은행의 냄새 때문에 악취가 난다고 민원을 넣고 또 행정 기관은 멀쩡한 나무를 뽑아내다니, 사람의 욕심과 어리석음은 어디까지 이를 것인가! 안타깝다.


길은 소양천을 건너서 세종대교 아래를 통과해 이어간다. 수로 건너편의 양섬공원으로 이어지는 다리도 있는 곳이다.


남한강 자전거길을 따라 이동하는 길, 우리가 가야 할 세종 산림욕장 표지가 등장했다. 어제도 받은 느낌이지만 수로 건너편으로 양섬을 두고 있는 이곳의 풍경은 아늑하면서도 아름답다.


길을 남한강 자전거길을 뒤로하고 둑 위로 올라가서 세종 산림욕장으로 향한다.


산림욕장 입구에 있는 잠시 숨을 고른 우리는 숲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고도 80여 미터의 높지 않은 숲길이다.


여강길 표식을 따라 이동하는 길에서 생전 처음 보는 관경을 만났다. 가을에 떨어졌던 도토리에서 싹이 나고 있었다. 도토리를 다람쥐 먹이나 도토리묵의 재료로만 생각했지 참나무의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임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다. 비를 맞고 햇살을 받은 도토리는 그 딱딱한 껍질을 깨면서 새로운 생명으로 발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생명의 신비란!


잘 가꾸어진 산림욕장의 산책길을 가로질러 내려간다.


길은 어제 걸었던 여강길 6코스와 겹치는 구간을 걸어서 산을 내려가고 여주 시청 양궁장을 지나쳐 영릉로 도로를 따라서 직진한다. 어제 6코스는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다리 아래를 통과했다.


길을 직진하다 보면 한 기업체의 연수원 입구를 지나게 되는데 이곳에 무궁화를 가지런히 심어 놓았다. 그런데 인근에서 교통사고가 발생했었는데 튕겨져 나온 사람이 이곳에 있던 무궁화나무 때문에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기업 전용 공간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안으로 들어가면 콜마 무궁화 역사문화관이라고 무궁화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 전시하고 일반인도 볼 수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 콜마라는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느낌에 외국 기업인가 싶었다. 1990년에 설립한 한국 기업이고 미국 콜마의 글로벌 상표권을 인수했다고 한다. 국내 최초의 화장품 및 의약외품 ODM 전문 기업이고 코스피 상장 업체였다. ODM이 조금 생소했는데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EM)이 브랜드사가 설계한 대로 제조사가 생산만 하는 방식이라면 ODM은 제조업체가 제품의 설계, 기획, 개발부터 생산까지 전체 과정을 담당하고 브랜드사는 그야말로 상표만 부착하는 방식이라고 한다.


영릉로 도로로 나온 길은 효종대왕릉 교차로에서 도로를 가로질러 영릉으로 향한다.


원래의 길은 효종대왕릉을 들렀다가 세종대왕릉을 거쳐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쪽으로 나오는 것이지만 양쪽에 모두 매표소가 있는 공간이다. 비싼 비용은 아니지만 입장료를 내는 트레킹은 뭔가 내키지 않았다. 우리는 입구 좌측에 있는 데크길을 따라서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쪽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양쪽에 있는 능을 모두 영릉이라고 하는데 한자가 다르다.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을 영릉(寧陵), 세종과 소헌왕후의 무덤을 영릉(英陵)이라 한다.


두 개의 능을 외부로 연결하는 데크길도 깔끔하게 정비된 것이 걷기에 좋았다. 사실 두 능의 주차장을 연결하는 길이다.


두 영릉의 주차장을 연결하는 데크길은 영릉천을 따라 올라간다.


영릉 주차장에 이른 길은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에서 나오는 원래의 길과 합류하여 대왕로 도로를 따라 번도 5리 마을을 향한다. 의외로 영릉을 찾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학창 시절 소풍의 목적지가 대부분 왕릉이었기 때문에 그런지는 몰라도 왕릉에 대한 그리 좋은 기억이 없다.


우측으로 세종대왕 역사문화관을 보면서 대왕로 도로를 따라서 이동한다. 번도 5리 마을로 가려면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가야 한다.


번도 5리 마을로 가는 길에서는 마을 주민으로 보이는 사람이 길 건너편에서 큰 소리로 인사를 건넨다. 덩치도 크고 얼굴도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람이 친절하게 인사를 건네니 왠지 이상한 느낌이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누를 범하기 쉬운 것이 사람인 모양이다.


번도 5리 마을길을 따라 계속 서쪽으로 이동한다.


번도리 마을길을 가로질러온 길은 42번 국도 중부대로를 만나서 길을 이어간다. 수원시 팔달구까지 서쪽으로 쭉 이어지는 도로이다.


여강길 4코스는 경기 옛길 봉화길과 길을 함께한다. 전체 구간이 겹치는 것은 아니지만 세종대왕 역사문화관 앞에서 세종대왕릉역까지 같이 간다. 물론 여강길은 전철역에서 끝나지만 경기 옛길은 전철역 이후로도 계속 이어진다.


번도리를 벗어나는 여강길은 굴다리를 통해서 중부대로 아래를 통과한다. 굴다리 앞에서 아동스러운 모습의 세종대왕이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고 있다.


이곳은 중부 내륙 고속도로와 중부대로가 교차하고 서여주 IC가 있는 곳이라 굴다리를 연속해서 통과해야 했다. 세종대왕 옆에 적힌 여민동락(백성과 즐거움을 함께한다) 문구를 보면서 이 시대의 참 지도자 상을 생각해 본다.


세종대왕면 신지리로 들어선 길은 마을길을 따라 다음 목적지인 이인손 묘를 향한다. 조용한 마을에 여강길을 걷는 나그네들이 동네 강아지들의 요란한 환영 인사를 불러일으키며 지나간다.


충희공 이인손의 묘라는 표식과 함께 작은 고개를 넘으니 고개 아래로 북성산 줄기에 자리한 이인손의 묘와 재실이 시야에 들어온다.


원래 이인손의 묘는 지금의 세종대왕릉이 있는 자리였다고 한다. 이인손 사후에 후손들이 명당을 찾은 곳이 그곳이었는데, 당시에 지관이 재실도 짓지 말고 다리도 만들지 말라고 했는데 자손들이 모두들 벼슬에 나서고 출세하면서 재실도 짓고 다리도 놓은 이후 세종의 영릉이 옮겨 오면서 이인손의 묘도 영릉 자리에서 이곳으로 어쩔 수 없이 이장했다고 한다. 우리가 다녀온 영릉과 이곳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가 있는 것이었다. 지금은 커다란 재실과 함께 풍애문이란 현판도 붙여 놓았다.


세종과 세조 때의 문신이었던 이인손의 후손들은 자신이 모시던 왕의 묘에 밀려나 이곳으로 오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이인손의 묘에서 조금 이동하니 수도권 전철 경강선 철도를 만난다. 이제는 경강선 철도를 따라서 세종대왕릉역까지 서쪽으로 이동한다.


이인손묘 인근의 밭에서는 특이한 모양을 가진 작물을 대규모로 키우고 있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창 작업 중이었다. 복분자 밭이었다. 복분자 하면 서해랑길에서 만났던 고창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전국적으로 보면 고창이 45~50%로 압도적인 1위이지만 이 이야기는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도 재배가 어렵지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주에서도 복분자즙을 생산하거나 지역의 찹쌀과 복분자로 술을 빚는 업체도 있었다.


길은 굴다리로 중부내륙 고속도로를 관통하여 경강선 철도를 따라 서쪽으로 계속 이동한다. 수도권 전철로 판교에서 여주까지 운행하고 있지만 이 철도로 판교에서 부발을 거쳐 충주까지 운행하는 KTX는 2024년 말에 경북 문경까지 연장되었고 2030년에는 수서에서 경기도 광주를 거쳐 문경까지 가는 노선도 생긴다고 한다. 전철은 2028년에 서원주까지 연장될 예정이라고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


세종대왕릉역 앞에서 여강길 걷기를 모두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경강선으로 이천 설봉산을 다녀오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여주 여강길은 버스 노선도 나름 준비가 잘 되어있고 트레킹 노선의 성숙도도 높은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남한강과 함께 했던 지난 시간들이 기억 속에 깊이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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