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1597년 4월 1일 이순신 장군이 의금부에서 석방되어 합천의 권율 장군 휘하로 내려가는 길을 따라가는 이순신 백의종군길을 시작한다. 그가 이동했던 1700리, 약 640Km를 걷는다. 난중일기에 따르면 4월 1일 백의종군을 처분받고 이튿날 유성룡을 방문하고 다음 날 출발한 것이니 장군이 길을 떠난 시기와 얼추 비슷하다. 길은 명보 아트홀 앞의 생가터 비석을 출발하여 의금부가 있었던 종각을 거쳐 소공동과 남대문 앞을 지나서 서울역 뒤편의 길을 내려가다가 삼각지에서 한강대로로 나와서 이촌역 앞을 지나서 중앙 국립 박물관 앞에 이른다.

명보아트홀 앞의 순댓국 집에서 순댓국으로 넉넉한 아침식사를 하면서 긴 여정을 준비한다. 전국에 있는 다양한 순댓국집에서 식사를 했었지만 개인적으로 김치 순댓국은 처음이었는데 나름 훌륭했다. 콩나물과 김치가 어우러진 순댓국은 해장에 딱이었다.

조선 명종 때인 1545년에 한양에 태어난 이순신 장군의 생가터 표지석은 명보 아트홀 앞에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도록 시에서 세운 것이지만 고증을 거친 실제 생가터는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만날 수 있는 신도 빌딩 앞이라고 한다. 어릴 적부터 장군을 좋아했던 아들과 함께 여행을 한다니 감회가 새롭다.


여러 영화배우와 감독들의 손도장이 있는 명보아트홀을 뒤로하고 장군이 긴 여정을 출발했던 옛 의금부 자리 종각을 향해서 이동한다. 중구에서 설치한 그늘막에도 장군의 탄생 연도인 1545년이 새겨 있고 길 이름도 충무로이다. 충무로 하면 영화의 길로만 생각했었는데 이순신의 길이었다.


충무로 역에서 직선으로 을지로 3가를 지나서 청계 3가까지 이르는 충무로를 걸으면 청계천에 이른다. 청계 고가와 하천을 덮었던 콘크리트를 걷어내고 청계천 복원을 끝낸 것이 2005년이니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사이 나무들도 부쩍 성장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이다.


청계천을 건너온 길은 물길을 따라 수표교를 지난다. 청계천은 엄밀한 의미에서는 거대한 조경 공간이다. 한강물을 끌어올려서 정수한 물을 흘려보내고 있고 인근의 지하철에서 나오는 지하수를 흘려보내고 있다. 수표교는 홍수 관리를 위해서 수량을 재는 표식이 있던 다리라 수표교라 했다고 한다. 지금 있는 것은 임시 다리이고 청계천 복개 당시 원래의 다리는 장충단 공원으로 옮겨졌다. 장충단 공원에 있는 다리를 이곳으로 옮겨 오려했지만 폭이 맞지 않는다고 한다.


길은 전태일 기념관을 지나서 종로를 향해서 움직인다. 낙원상가를 향하는 길이다. 낙원상가는 우리 세대나 MZ세대 모두에게 악기의 메카로 공통 관심사가 통하지만 지금 세대는 전태일을 알지도 기억하지도 않는다. 평화시장 봉제 노동자로 일하면서 동료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그 당시 정권과 행정 기관들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고 결국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분신으로 생을 마감했다. 지금의 MZ 세대와는 너무나도 거리가 먼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


매년 연말이면 타종 행사가 열리는 보신각을 지나서 종각에 도착했다. 이곳은 의금부가 있었던 자리로 장군의 백의종군로 시작점이기도 하다. 보신각과 종각은 같은 의미인데 지금은 연말 행사 등에서만 종을 울리지만 조선시대에는 백성들에게 오전 4시경, 오후 10시경,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을 알려주는 용도였다고 한다.


조팝나무가 출발지 안내석 옆에서 하얀 꽃을 피웠다. 마치 신부의 하얀 드레스 같이 아름답다.


길 건너 영풍빌딩 앞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의 동상이 있었다. 다른 동상들과 달리 앉아 있는 모습인데, 당시 일본군의 고문 때문에 일어날 수도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이 의금부를 떠나 내려간 그 장소 전옥소가 있던 장소에 동상을 세운 것인데 전봉준 장군은 전옥소에서 교수형을 당했다고 한다. 길은 광교를 지나 소공동으로 향한다.


소공동으로 진입하니 시티투어 버스도 시야에 들어오니 젊은 시절 다니던 동네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다. 롯데 백화점 모서리에 한 서양 여성의 동상이 있었는데, 여행자의 시선을 이끌고 호기심을 발동시킨다. 알고 보니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나오는 샤롯데(Charlotte)라고 한다. 필자도 한때 참 좋아했던 소설인데, 롯데 그룹의 창업주가 소설을 읽고 기업이 고객들로부터 사랑과 신뢰를 받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롯데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소공동을 지나는 길에서는 멀리 남산도 보이고 빨간색의 시티투어 버스도 시야에 들어온다. 남대문 시장 건너편을 지나는데 이른 아침부터 시장통은 여행자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상인들이 느끼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비율은 7대 3일 정도로 외국인이 많다고 한다.


길은 숭례문 앞을 지나 염천교를 향한다. 2008년 화재 이후 2013년에 복원 완료 했으니 이제 10년이 넘어가고 있다. 당시 69세의 방화범이 징역 10년을 받았으니 벌써 사회에 복귀했다 싶다.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기 위해 불을 지른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필자는 숭례문을 남대문으로 바꾼 것이 일제라고 생각했는데 조선 당시에도 단순히 남쪽에 있는 성문이라는 의미로 숭례문을 남대문으로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염천교를 지나서 염천교 수제화 거리를 지나다 보니 지난날 수제화 구두가 일반적이었던 때를 추억하게 된다. 양복도 내 신체 치수에 맞게 만들고 신발도 내 발 모양에 맞는 신발을 신었는데 이제는 추억이 되고 말았다. 길은 서울역 뒤편으로 이어진다.


길을 서울역 뒤편에 위치한 서부역을 지나서 남쪽으로 내려간다. 서부역이라는 이름은 없고 모두 서울역이지만 서쪽에 있는 것이라고 서부역이라 불렸었다. 지하 7층에 있는 공항철도는 이쪽으로 가면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1호선, 4호선, 경의중앙선, GTX 등은 반대쪽에 위치한다. 역 바로 앞으로 빨간색 지붕이 인상적인 국립극단 건물이 있었는데 2023년 폐관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연극계의 거목인 두 분의 이름을 따서 백성희 장민호극장이라 했었는데 개발로 없어지고 주상 복합 건물이 세워질 모양이다.


서울역 뒤편에서 남쪽으로 내려가는 옹벽에 자리한 담쟁이도 새순을 내며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야말로 생명의 계절인 봄이 찾아왔다.


길은 효창공원으로 가는 길과 숙대 입구를 지나서 계속 남쪽으로 내려간다. 숙명여자대학교와 효창 공원은 나란히 붙어있다. 어린 시절 어린이날 행사가 있었던 효창 공원에 갔던 기억이 있는 곳이지만 그곳은 원래 정조의 장남인 문효세자를 비롯한 왕가의 무덤이 있던 곳이고 일제 강점기 일본군이 주둔하며 훼손되고 골프장까지 만들었던 곳이다. 지금은 백범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의 유해가 묻혀 있다.


길은 남영역 뒤편을 지나서 삼각지 쪽으로 계속 내려간다.


길 건너편으로 지금은 민주화운동기념관으로 바뀐 남영동 대공분실을 지나 길을 이어간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습니다"라는 바로 그곳이다. 아들 이야기지만 지금의 MZ 세대는 온갖 고문과 인권 탄압의 현장인 남영동 대공분실은 들어 본 적도 없는 모양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데...... 인도에 "서울 도보 관광"이라는 표식이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서울의 여러 지역을 테마별로 걷기 여행할 수 있도록 코스를 만들어 놓은 모양이었다. 서울도보해설관광이라는 무료 프로그램을 https://korean.visitseoul.net/walking-tour에서 예약할 수 있다.


길은 삼각지 고차차도를 지나서 추억의 삼각지로 향한다. 지금은 한창 보수 공사 중이었다.


삼각지로 나오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통령실로 사용했던 국방부 청사가 시야에 들어온다.

1967년에 세워져 1994년까지 삼각지에 존재했던 입체 고가로도 사라지고 용산에 있던 미 8군도 평택으로 내려가면서 이곳은 예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삼각지 인근의 표구 상가들과 작은 건물의 음식점들이 여전히 남아있어 이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렇지만 이곳도 곧 재개발의 폭풍을 앞두고 있는 모양이었다.


1984년 건물이 완공될 때만 해도 독특한 외관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던 국제 빌딩은 40년이 지난 지금은 주인도 바뀌고 LS 용산 타워로 이름도 바뀌었다. 어제만 해도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는 예보에 벚꽃도 모두 떨어지고 흐린 날씨 가운데 어떻게 걸어야 하나? 하는 염려가 있었는데 어디를 가나 화려한 벚꽃을 만끽하는 여행이 계속되고 있다.


길은 용산역 앞에서 한강대교로 가지 않고 좌회전하여 이촌역 방면으로 진행한다.


2021년 용산공업고등학교에서 용산철도고등학교로 바뀐 학교 교문 앞에는 철도 특성화 고등학교답게 ITX 모형 기차가 있었는데 실제 기차처럼 운행할 수 있는 시뮬레이터라고 한다.


대단위 아파트 단지와 이촌역을 지난 길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이른다. 애들을 데리고 자동차로 방문한 적은 있지만 걸어오니 감회가 새롭다. 2027년부터 유료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조선총독부의 중앙청에서도 10여 년 있었던 중앙 박물관은 미 8군이 이전한 이후 2005년에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박물관 앞의 벤치 근처에 풀또기가 화사하게 자태를 뽐낸다. 장미과의 중국이 원산지인 식물이다. 정말로 봄이 찾아왔다.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여주 여강길 4코스 - 여주 여행자센터에서 세종대왕릉역 (0) | 2026.04.03 |
|---|---|
| 여주 여강길 6코스 - 상백2리 마을회관에서 세종대왕릉 (0) | 2026.04.02 |
| 여주 여강길 7코스 - 당낭리섬 입구에서 상백2리 마을회관 (0) | 2026.04.02 |
| 여주 여강길 9코스 - 천남공원에서 당남리섬 입구 (0) | 2026.04.01 |
| 여주 여강길 10코스 - 여주여행자센터에서 천남공원 (0) | 2026.03.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