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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둘레길 9코스는 산청군 시천면 면사무소가 있는 덕산을 떠나 중태재 고개를 넘으며 하동군으로 진입하는 코스이다. 지리산 남서 방향으로 나아간다. 중태재 부근의 일부 등산로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마을길과 임도로 구성된 무난한 길이다.

 

8코스 종점이자 9코스 시작점인 남명 조식 기념관 건너편의 산천재 앞에서 9코스를 시작한다. 산천재는 조식 선생이 후학을 키우기 위해서 천왕봉이 보이는 이곳 덕산에 지은 것이라고 한다. 지리산 종주를 했던 사람이라면 기억하는 세석평전, 촛대봉, 중산리, 장터목 산장, 천왕봉이 모두 이곳 산청군 시천면에 속해있다. 천왕봉이 산청에 있으니 산청 사람들이 "지리산은 우리 거야!"라고 해도 달리 대꾸할 방도가 없다.ㅎㅎ

 

골목길을 지나 덕천강 강변으로 나간다.

 

북서쪽으로 천왕봉이 있을 텐데 분간할 수는 없다. 천왕봉이 지척인데 이런 넓은 강이 있다는 것도 신기하다. 하긴 넓은 둔치가 있어서 평지 같아 보이지만 이곳은 해발이 최소 1백 미터가 넘는 산지이다.

 

덕천강변의 산책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다. 9코스는 강을 건너서 강 건너편에서는 반대쪽으로 걸어야 한다.

 

산책로를 걷다 보니 한겨울에도 푸른 잎을 뽐내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참가시나무라고 하는 상록수이다. 제주도 같은 곳에서나 있을 법한 나무를 천왕봉이 보이는 산청에서 만나니 더 신기할 따름이다. 도톨이가 맺히는 나무이고 잎과 잔가지가 결석에 좋다고 한다.

 

덕산에서 하룻밤 묵어가는데 숙소 주인장이 둘레길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9코스가 길이 막혀 있어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말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서는 길을 걷는 모양이었다. 실제로는 걸을 수 있었다. 숙소에 걸린 지리산 상고대 사진을 보면서 청년 시절 겨울 지리산을 다녀왔던 추억을 떠올리고 있는데 주인장은 이제는 고목에 맺힌 상고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신다. 상고대는 서리가 나무나 풀에 붙어서 하얗게 된 것을 지칭하는데 고목들은 모두 쓰러져서 고목에 맺힌 상고대는 더 이상 볼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첫 지리산 산행에서 수동 필름 카메라로 감탄하면서 찍었던 상고대 사진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다. 덕산 읍내를 돌아다녀 보니 덕산 약초 시장도 있었다. 4일, 9일 오일장이다.

 

다음날 아침 동쪽으로 떠오르는 아침 태양을 뒤로하고 서쪽을 향해 길을 이어간다. 덕천강을 건너는 원리교와 천평교 다리로 향하는 길이다. 정면 어딘가에 지리산 천왕봉도 있다.

 

강변 산책로를 걷다가 덕천강을 가로지르는 징검다리를 발견했다. 어차피 강변 건너편에서 반대쪽으로 길을 가야 하니 멀리 다리로 돌아가지 않고 징검다리를 통해서 바로 가로질러 가기로 했다.

 

징검다리를 통해서 덕천강을 건너니 맑은 강물을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열린다. 징검다리에서 바라본 동쪽의 아침 태양은 황홀하다. 덕천강은 동쪽으로 흘러서 진양호로 들어간다.

 

덕천강 북쪽 강변에 참가시나무의 푸른빛이 있었다면 남쪽 강변에는 붉은 산수유나무 열매가 2월의 산청 붉은색을 담당하고 있다. 봄이면 노란빛으로 옷을 갈아입을 산수유나무를 상상해 본다.

 

산수유나무와 함께 걸은 강변길은 송하마을에서 원래의 둘레길과 합류하여 동쪽으로 길을 이어간다.

 

눈부신 아침 태양을 바라보면서 동쪽으로 이동하는 길은 지리산대로가 지나는 덕산 1교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이어간다.

 

함미봉 위에 걸친 아침 태양을 뒤로하고 강변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던 길은 남서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꾀꼬리길이라는 표식이 있었는데 산불 피해를 입은 지역을 위해서 지역 금융 기관이 기여한 길이라고 한다. 산청군의 군조도 캐릭터도 꾀꼬리이다. 앞으로는 참새목 꾀꼬리과에 속하는 노란 새를 주목해서 볼 것 같다.

 

덕천강을 벗어난 길은 중태천을 따라서 계곡 안으로 들어간다.

 

마을에 들어서니 이곳을 덮쳤던 화마의 처참한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처참한 흔적을 보니 산불은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막아야 하는 사회악이지 않나 싶다. 산불 원인의 대부분이 사람에 의한 것이니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길은 지리산둘레길 중태안내소를 지나쳐 이어진다.

 

2월의 서늘함 속에서도 봄을 준비하는 목련을 보니 벌써 봄이 문 앞에 도착한 듯 느껴진다.

 

중태재를 향해서 계곡 안으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서 만나는 산불 흔적을 보면 씁쓸하다.

 

화마에 수해까지 중태재로 가는 길은 한창 공사 중이었다. 길에서 나무 사이로 보이는 어떤 봉우리는 완전히 타버려 작은 풀포기조차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민둥산이 되었다. 안타까운 모습이다. 2025년 3월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7월에는 기록적인 폭우가 내려 산청 곳곳에서 산사태가 발생한 것이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이 길을 갈 수 있는 것도 어찌 보니 행운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중태천을 따라 계곡 깊숙한 곳까지 이어지는 길로는 마을이 계속 이어진다.

 

유점 마을에 이른 길은 시작점인 덕산으로부터 7.7Km, 종점인 위태까지 3.3km 남았다. 위치가 재미있다.

 

중태 정자 쉼터에 앉아서 김밥을 먹으며 쉬어 갔는데 정자에 붙은 경고판이 무엇인가?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정자가 약해서 넘어갈 수 있으니 주의하라는 문구였다. "전도주의"는 처음 보는 경고판이다.

 

중태 계곡을 내려다보니 계곡 아래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이제 민가가 없는 길을 따라 중태재 고개로 향한다.

 

길이 중태재 고개 인근에 이르자 임도는 끝이 나고 길은 숲길로 이어진다. 밑동이 불에 그을린 소나무를 보니 이곳이 참혹했던 산불 현장의 일부인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고갯길에 죽은 나무를 베어서 가지런히 정리해 놓았는데 나무의 나이테를 보니 최소 40년은 넘어 보인다. 산불을 보면 희열을 느낀다는 어떤 정신 나간 범죄자의 말이 생각나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중태재 고갯마루에 이르니 산불로 인해 타버린 벤치 한쪽을 통나무로 받쳐 놓았다. 아픔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어 온다.

 

중태재 고개를 넘어선 길은 본격적으로 하산길에 나선다. 산 아래로 마을이 보이는데 이제 위치도 산청군을 지나서 하동군 옥종면 위태리로 넘어간다.

 

산불 피해 지역을 지나는 둘레길 9코스가 대나무 숲에 이르자 속으로 드는 생각은 대나무는 산불에 강하겠지 하는 것이었다. 물론 착각이었지만......

 

검게 타버린 대나무를 보니 내 생각이 착각이었구나라고 바로 깨닫게 된다. 실제로 산불이 나면 대나무 숲은 밀도가 높고 내부에 공기가 차 있었서 탁탁 소리를 내면서 폭발적으로 타오른다고 한다. 푸른 잎, 푸른 줄기라서 불이 잘 붙지 않겠지 하는 생각은 착각이었다.

 

산 아래로 위태 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초록빛으로 생명력을 뽐낼 대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산불과 폭우로 망가진 계곡을 가로질러 위태로 향하는 길을 찾아간다. 2025년 산청과 하동의 산불과 폭우 피해가 어느 정도였는지 체감하는 현장이었다.

 

수해 피해가 선명한 계곡 끝자락의 연못을 지나면 숲길은 끝이 나고 임도를 따라서 마을로 내려가게 된다.

 

2026년 2월 첫날 정오를 향하는 태양은 따스하고 내리막길을 걷는 발걸음도 가볍다.

 

임도를 내려오다 59번 지방도 돌고지로를 만나면 마을회관 쪽으로 조금 올라가는 것으로 코스를 마무리할 수 있다.

 

위태 마을에서 둘레길 9코스를 마무리한다. 옛날 이름은 갈티마을이었다고 한다. 인근에 덕산장을 가려면 넘어야 하는 갈티 고개가 있어서 불렸던 이름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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