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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1백여 미터의 답동마을 입구에서 시작하는 서해랑길 39코스는 봉화령 자락을 오르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반에 고도를 3백 미터까지 높이는 과정에 땀이 조금 나기는 하지만 이후로는 어렵지 않은 능선길이 이어진다. 산을 내려오면 덕산마을 입구에 닿는다. 

 

사실 원래의 계획은 38코스를 끝내고 답동마을에서 버스로 영광 읍내로 나가는 것이었지만, 조금 이른 시간이고 다음 버스 시간까지 한 시간 넘게 남아 있는 것이 우리를 고민에 빠지게 했다. 이런저런 생각과 토의를 하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버스를 기다리기보다는 조금 더 걷기로 했다. 39코스 초반부는 등산로를 걸으니 별도로 지도를 준비하지 않았어도 문제가 될 것은 없었고 산을 내려가면 버스가 지나가는 경로이니 버스 시간만 맞출 수 있다면 좀 더 걷는 것이 지혜로운 선택이었다. 

 

길은 답동마을 정류장에서 백수해안도로 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조금 올라가다가 등산로로 진입한다. 제1회 대한민국 경관 대상에서 자연경관부문 최우수상을 받았다는 커다란 길 표식과 함께 여정을 시작한다. 해안 절벽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운 풍경이 이어지는 길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만난 한 어르신은 산에서 무언가를 채취해 가시며 몸이 예전 같지 않다며,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괜한 푸념을 늘어놓으신다. 백수 해안도로 도로변에 있는 작은 표식을 따라서 산행을 시작한다. 어르신 말씀처럼 우리도 몸이 예전 같지가 않다. 해안 도로는 구불구불하고 경사도 있는 편이지만 휴일을 맞아서 나들이 나온 자동차들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등산로 초입에서는 분홍빛 진달래가 우리를 반겨준다. 수수한 아름다움이 있는 꽃, 언제 만나도, 보고 또 보아도 질리지 않는 꽃이다. 개인적인 취향이기는 하지만 진한 화장을 한 것처럼 보이는 철쭉과는 분명 다른 매력을 가졌다.

 

개인적인 취향은 진달래를 더 좋아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진달래와 비슷한 철쭉, 영산홍 등은 모두 진달래과 진달래 속에 포함되어 있다. 진달래와 함께 하는 제대로 된 봄나들이를 한다.

 

산 능선을 향해서 오르는 길 산 아래 동쪽으로는 백동저수지가 시야에 들어온다. 등산로 주변으로는 푸릇푸릇한 들풀들이 초봄을 지나 신록의 계절이 다가왔음을 알려준다. 

 

오르막 길을  헉헉 거리며 오르고 있는데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존재를 만났다. 산자고라고 하는 야생화다. 스쳐 지나갈 수도 있겠지만 멈추어 허리를 굽히게 한다. 가느다란 꽃줄기에 여섯 개의 하얀 꽃잎을 가졌다.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높지 않은 산이기는 하지만 결코 순탄치만은 않다. 산바람은 거세고, 오르막길은 여전하고, 옆지기는 달갑지 않은 오르막 산행길을 견디느라 한참을 뒤처져 있다.

 

뒤쳐지는 옆지기를 기다리며 봄꽃을 감상하는 호사를 누린다. 이번에는 봄의 전령사라는 생강나무꽃이다. 잎이 나오기 전에 노란 꽃을 먼저 피우는 나무로 잎과 줄기에서 생강냄새가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두껍게 쌓인 낙엽 사이로 푸른빛이 도는 꽃이 피었다. 현호색이라는 여러해살이 식물이다. 덩이줄기가 있는데 약용한다고 한다. 들꽃은 가까이 다가가 볼수록 더 아름답다.

 

등산로 주위의 관목들은 연한 잎을 내며 봄의 절정을 맞이하고 있다. 봄의 한가운데를 지난다.

 

딸기 잎을 가진 노란 뱀딸기 꽃이 고운 색을 뽐낸다.

 

이름도 예쁜 제비꽃, 보라색 자태가 기품이 있다.

 

능선으로 올라온 길은 봉화령 반대편인 정유재란 열부순절지 방향으로 이동한다. 열부순절지는 산을 내려가면 만나는 곳이다.

 

능선에 올라서니 우리가 지나왔던 37코스, 38코스 경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영광의 풍력발전기들과도 진짜로 안녕이다. 백수읍이라는 이름도 야동마을이라는 이름도 재미있다. 물론 지금 사람들이야 실업자를 백수로 부르고, 야한 동영상을 야동이라 부르지만 그 옛날에는 백수라는 이름도 야동이라는 이름도 별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이든 생각하기 나름이다. 야동마을은 백동 저수지 방향으로 산을 내려가면 만나는 마을이다.

 

이제는 산 능선을 따라 쾌적한 산행을 이어간다. 봉우재를 향하는 길이다.

 

시야가 트이는 곳에 이르니 멀리로는 광활한 간척지와 풍력발전단지가, 가깝게는 답동마을 입구가 보인다. 봉수유적에 도착했다. 조선시대에 봉수를 올렸던 곳이다.

 

북쪽으로 대신제 저수지를 보면서 전망대에 오른다.

 

전망대에 올라서 바라본 전경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니 해안 절벽을 타고 이어지는 백수 해안도로는 더 아슬아슬해 보인다. 영광의 풍력발전기들은 이제 아스라이 보인다. 서쪽 바다로는 일산도, 이산도, 삼산도, 사산도, 오산도, 육산도, 칠산도 이름도 특이한 섬들이 나란히 서있다.

 

가자봉을 지난 길은 뱀골봉을 향해서 길을 이어간다. 오르락내리락하지만 쾌적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능선길에서 만난 파란 들꽃. 앞서 만났던 현호색 들꽃이 군락을 이루었다.

 

뱀골봉을 향해서 가는 능선길, 덕산마을을 지나갈 버스 시간을 계산해 보니 마음이 급하다. 힘들어하는 옆지기에 상황을 설명하면 힘든데 왜 빨리 걸으라고 하는 거야 하는 날카로운 시선과 표정을 날린다. 그렇지만,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려는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는 일은 정말로 안타깝다.

 

마음은 바쁘지만 바위 언덕 위에 올라서서 서쪽 바다를 바라보면 잠시 숨을 고른다. 일산도부터 칠산도까지 칠뫼라 부르는 섬들이 나란히 줄지어 있다. 그 옛날 조기의 황금어장이었던 칠산바다의 이름이 바로 저 일곱 개의 작은 섬들에서 온 것이다. 육지였다가 바다가 되었다는 전설이 깃든 곳이다.

 

인근에 전망대가 있는 뱀골봉도 지난다. 노을 전망대라 부르는 모양이다. 저녁 일몰 시간에 전망대로 가면 서해로 지는 석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겠다 싶다.

 

길이 뱀골봉을 지나면 능선길은 이제 하산하기 시작한다. 저 멀리 영광해수온천랜드가 있던 곳도 시야에 들어온다. 온천은 옛날이야기이고 지금은 운영하지 않는다.

 

산을 내려가는 길은 늘 발걸음이 가볍다. 거친 바위를 뛰어내려야 하는 거친 산길도 아니라서 이런 등산로만 있다면...... 하는 부질없는 상상도 해본다.

 

처음 산행길을 시작할 때도 만났던 진달래가 산행길 끝에서도 반갑게 작별 인사를 해준다. 홀딱 반할 것 같다.

 

이제 산을 거의 다 내려왔다. 산 아래로 백수 해안 도로가 보인다.

 

서해랑길  39코스로 걸어왔던 등산로는 339미터 구수산 등산로의 일부로 우리는 백수해안도로에서 봉우재로 올라가서 봉화령에서 내려온 등산로와 합류하여 가자봉, 뱀골봉을 거쳐서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다. 등산로 입구에서 우람한 소나무 한그루가 지킴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다.

 

길은 해안도로가 아니라 덕산마을 쪽의 도로를 따라 마을 방향으로 이동한다. 

 

길은 덕산마을로 내려가다가 좌측으로 돌아서 해안로 아래를 굴다리로 통과하여 해안으로 나가는 방식이다. 버스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 열심히 내려온 덕분에 영광 읍내로 가는 버스를 제시간에 탈 수 있었다. 문제는 버스가 어디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는 것이었다. 시골 버스들은 코스에 따라서 왔던 길을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종점에서 다른 동네로 움직이기도 하고, 왕복이 아니라 순환형 노선으로 한 방향으로만 운행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눈앞으로 버스가 오기는 했는데 읍내로 가는 것이 아니라고 착각하고는 버스를 지나쳐 버렸다. 버스 전광판 표시도 읍내로 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예정 시간에서 몇 분이 지나도 지나갔던 버스가 되돌아오지 않는 것이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쳐 지나간다. 버스 기사도 목적지라도 물어보지 왜 그냥 지나갔나 하며 괜한 원망도 해보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한번 놓치면 두 시간 여를 기다려야 하는데 택시를 불러야 하나? 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멀리서 버스가 오더니 마을 앞에서 유턴하여 우리 앞에 선다. 알고 보니 아까 지나갔던 버스인데, 버스 기사님이 생각해 보니 마을에 외지인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이상해서 다시 돌아왔다고 하신다. 기사님도 버스를 놓치면 두 시간 여를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하신다. 나그네인 우리 때문에 버스가 돌아오다니, 마음이 얼마나 고맙던지...... 훈훈한 여행 마무리였다. 39코스 나머지는 다음 여정을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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