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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1코스를 끝내면 2코스의 절반 정도(8Km)를 더 걷는다. 읍내를 빠져나가 미학리를 지나 산정천을 건너 천변 둑방길을 따라 해변으로 나갔다가 우근리와 학가리의 들판을 북쪽으로 가로질러 송암마을에 이른다. 완만한 평야지대가 이어진다.

 

송지면사무소 옆길을 통해 읍내를 빠져나간다. 면사무소가 있는 이곳은 송지면 산정리로 이미 18세기부터 산정이라는 이름을 사용했다고 한다. 해남에서 송지면 읍내로 오려면 산정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산정리 골목길을 빠져나가 미학 2교 다리를 통해서 산정천을 건넌다. 달마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물이다. 멀리 다리너머 예전에는 섬이었던 미학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정천을 건너면 굴다리를 통해 77번 국도 땅끝해안로를 가로질러 미학마을로 들어간다. 미학마을은 예전에는 미역섬, 미도로 불렸던 섬으로 일제강점기 우근방조제가 생기며 육지화되었다고 한다.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마을 벽화에 "뜻깊은 서해랑길 되시길!!!" 하는 문구를 적어 놓았다. 어찌 보면 시끄럽고, 귀찮은 나그네일 뿐인데 참 고마운 마음을 가진 마을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깔끔한 마을 벽화에서 잠시 시 한 편 읽고 길을 이어간다. 정호승 시인의 "봄길"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해남 하면 배추, 예전 같으면 배추를 트럭에 싣고 내리는 과정에서 배추를 던지고 받는 모습이 일상이었지만 이제는 시대가 바뀌어 지게차가 그 일을 대신하고 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가, 배추 생산 농가에서 지게차로 쉽게 배추를 상하차 할 수 있도록 만든 틀을 보니 와우!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소비자들의 배추 소비 성향도 바뀌어 이미 절임 배추가 신선 배추보다 높은 선호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니, 농가에서도 밭에서 수확한 배추를 바로 출하하지 않고 사진처럼 절임 배추로 가공하기 위해 일단 농가로 가져온 것이다. 세월 흐르듯 내 주위의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

 

어떤 벽화는 그야말로 작품 수준이다. 심지어 외부 담벼락이 아니라 마당 쪽 벽에도 빨간 꽃 그림과 함께 시를 적어 놓았는데 주인장의 마음이 아닌가 싶었다. 나태주 시인의 "사랑에 답함"이다.

예쁘지 않은 것을 예쁘게
보아주는 것이 사랑이다
좋지 않은 것을 좋게
생각해 주는 것이 사랑이다
싫은 것도 잘 참아주면서
처음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나중까지 아주 나중까지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들판에는 벼수확 후 후작으로 심은 보리가 푸릇푸릇 생기를 내뿜고 있다.

 

길은 한동안 산정천 둑방길을 따라 해변으로 나간다. 산정천 상류에는 물이 시작하는 달마산이 남북으로 길게 자리하고 있다. 들판으로는 바람이 얼마나 세차게 부는지 서해랑길 리본이 수평으로 누웠다.

 

해변을 향해서 서쪽으로 이동하는 길, 오후의 눈부신 태양에 흔들리는 갈대가 운치를 더한다.

 

산정천 하구의 수문을 지나 다시 산정천을 건넌다. 하구는 바닷물이 들어오는 기수 구역이라 갈대밭이 빽빽하다. 이런 갈대밭을 통과하며 물이 조금이나마 정화되어 바다로 나갈 것이니 이런 곳에는 꼭 필요한 공간일 것이다.

 

산정천 수문을 지난 길은 잠시 내장리로 이어지는 내장길 도로를 걷지만 이내 우회전하여 들길을 통해서 우근리 마을로 향한다.

 

우근리 마을길을 지나는데 거위 한 마리가 집 앞에서 꽥꽥거리며 우리를 가로막는다. 거위는 예로부터 지능이 높고 주인을 잘 따라서 개대신 키우기도 했다는데, 저 거위는  아마도 낯선 사람이 등장하니 집 앞에서 보초를 서며 경고를 하는 모양이다. 부리에 쪼일까 조심하며 지나왔는데, 지나친 이후에도 한동안 목을 쭉 빼고 꽥꽥거린다. 참으로 신통한 동물이다.

 

마을에서 나온 길은 들판을 가로질러 우근 방조제로 향한다. 썰물 때라 물이 빠져서 넓은 갯벌이 드러났다.

 

우근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이곳에 만든 우근방조제로 인해 형성된 마을로 우근이라는 마을 이름은 방조제를 만든 일본인의 성이었다고 한다.

 

우근 방조제의 수문을 지나면 다시 동쪽으로 길을 잡으며 우근마을을 빠져나간다.

 

들판길로 나온 2코스는 우근마을 입구에서 좌회전하여 수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3Km 정도 북쪽으로 들길을 걸으면 송암 마을에 이른다.

 

겨울철의 들길 걷기는 지루하고 심심할 수 있지만 길가에 남겨진 생명의 흔적에 생기가 살아난다. 봄에는 보랏빛 꽃을 피웠을 멀구슬나무에 하얀 열매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난대성 식물이라 남도나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나무이다. 남도에서는 댈롱개나무, 몰꼬시나무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방충제로 이용되기도 했고 최근에는 신약 물질로 주목하고 있다고 한다.

 

우근리 들판을 지나 학가리 들판을 지나는 길은 태양광 패널과 함께 하는 길이다. 일제강점기 우근방조제와 백포만방조제가 만들어지면서 많은 농지와 염전이 생겼는데 그중에 대부분의 염전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그림처럼 태양광 발전소가 들어섰다. 해남이 일조량이 풍부한 지역이다 보니 발전 효율이 높다고 한다. 2021년 에너지 공단 통계를 보면 전남지역의 태양광 발전이 전국에서 단연 1위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전남 지역에서도 해남군이 단연 1위의 태양광 발전량을 보이고 있고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해남에 수도권에 몰려있는 데이터센터를 구축해서 재생에너지를 공급할 계획이라는 뉴스도 있다.

 

서산으로 지고 있는 석양이 태양광 패널과 갈대 사이에서 묘한 그림을 만들어낸다.

 

길을 걷다 보니 송지면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염전을 만난다. 한국전쟁 이후 송지면과 문내면을 중심으로 넓은 갯벌을 이용하여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이 많았지만 경제성이 떨어지면서 대부분의 염전이 태양광 발전소로 전환했다. 해남 절임배추의 명성이 높아지면서 절임배추 생산을 소금 생산 기반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에 태양광 관련 규제가 부가되기도 했지만 염전의 폐쇄 흐름은 막을 수 없는 모양이다. 아무튼 그런 상황 가운데서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이곳 염전의 소금은 명품 소금으로 이름이 난 모양이다.

 

건축 폐자재로 지은 소금 창고의 빈티지한 모습과 노을을 비추고 있는 염전 풍경을 뒤로하고 길을 이어간다.

 

석양에 황금빛으로 물들고 있는 해안길을 따라 수문을 지나면 송지면 학가리에서 가차리로 넘어간다. 가차리라는 마을 이름은 마을의 지형이 배모양이라고 붙인 것이라고 한다.

 

가차리로 넘어와도 태양광 패널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한다. 눈부신 황금빛 석양은 검은색 태양광 패널에도 색을 입히고 있다.

 

한참을 들판을 걷던 서해랑길은 송암마을에서 잠시 77번 국도변으로 나온다.

 

1코스 이후 2코스의 절반 정도를 걸은 우리는 송암마을에서 농어촌 버스를  타고 해남 읍내로 나가서 하룻밤 휴식을 취하고 다시 송암마을로 돌아오기로 했다. 해남에서 "송지 어란, 땅끝, 사구" 방면으로 가는 버스들은 모두 송암마을을 거치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지 않고 해남으로 가는 버스를 탈 수 있었고, 다음날 아침에 해남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들은 예정된 시간표대로 정확히 출발했다. 필요한 사람을 위해서 해남터미널에서 "송지 어란, 땅끝, 사구" 방면으로 가는 버스 시간표를 메모해 둔다. 해남터미널에서 송암마을까지는 40여분, 땅끝마을까지는 60여분이 소요되는 것을 생각하면 돌아오는 버스의 시간을 대충 가늠할 수 있다.

06:00 박정(서정, 산정, 신평), 06:25 어란(금강, 산정), 07:20 어란(금강, 삼마, 산정), 08:00 사구(금강, 산정, 땅끝) 09:05 어란(금강, 산정), 09:30 사구(금강, 산정, 땅끝), 10:20 사구(금강, 산정, 땅끝), 11:15 어란(미황사(달마고도), 산정) 11:30 사구(금강, 산정), 12:40 어란(금강, 산정), 12:50 박정(향교, 금강, 산정), 13:40 사구(금강, 산정, 땅끝) 14:05 어란(미황사(달마고도), 산정), 14:30 사구(금강, 산정, 땅끝), 15:20 사구(금강, 산정, 땅끝) 16:10 사구(금강, 산정, 땅끝), 16:50 어란(금강, 산정), 17:00 박정(미황사(달마고도), 산정), 17:40 *동절기 17:20 사구(금강, 산정, 땅끝) 18:00 *동절기 17:50 어란(금강, 산정), 19:10 *동절기 18:50 사구(금강, 산정, 땅끝), 20:00 *동절기 19:40 사구(금강, 산정, 땅끝)

 

이번 해남 걷기 여행 내내 우리의 점심 도시락, 김밥을 책임져 주었던 박가네 김밥. 김밥이 2,500원, 된장찌개가 6천 원, 뚝배기불고기가 7천 원이었으니 가격도 착했지만, 맛도 훌륭했다. 저녁 8시에 문을 일찍 닫는 것이 아쉬웠지만 새벽 5시 문을 여니 하루 일정을 시작하며 부담 없이 김밥을 챙겨 갈 수 있어서 좋았다. 요즘 시대에 이런 가게가 있을까 싶다.

 

다음날 아침 농어촌버스를 타고 해남터미널에서 송암마을로 돌아오는데 마침 장날인지 버스가 북적북적하다. 버스가 두 정거장 정도를 가면 고도리라는 정류장이었데 여기에서 많은 어르신들이 버스를 내리고 양손에 짐을 한가득 들고 있는 또 다른 어르신들이 도우미의 도움을 받아 버스에 타셨다. 고도리 일대에서 열리는 해남읍 5일 시장이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1일과 6일에 열리는 오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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