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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포만방조제를 통해서 송지천과 현산천을 차례로 건넌 서해랑길 2코스는 두모마을을 지나 백포 해안길을 걷는다. 현산면 백포리를 짧게 지나는 길이다. 백포 해안길을 지나면  화산면 안호리로 넘어가 중정마을을 거쳐 대지마을, 사포마을, 좌일마을을 거쳐서 관동방조제를 지나 여정을 마무리한다.

송암마을에서 다시 시작하는 서해랑길 2코스는 송지천 하구의 수문을 지나 백포만방조제로 들어선다. 백포만방조제는 일제강점기에 축조된 방조제이다.

 

서해랑길은 방조제 아래 농로를 통해서 이어간다. 지금이야 넓은 평야를 별생각 없이 걷지만 방조제를 만들 당시 맨손으로 방조제를 축조했을 선조들의 피땀을 생각하면 그 노고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가을색이 완연한 들판 길을 걷다가 방조제 끝자락에서 방조제 위로 올라선다.

 

아침 바다는 밀물 때인지 물이 가득 들어왔고 방조제 끝자락의 현산천 하구는 넉넉한 갈대밭이 철새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현산천은 두륜산 자락의 만안리에서 발원하여 현산면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와 이곳을 통해 바다로 나가는 하천으로 현산천 하구의 아침 풍경은 철새가 주인공인 평화로움 그 자체이다.

 

백포만방조제의 배수 갑문을 지나 두모마을로 들어간다. 해남군 끝자락의 송지면을 떠나서 현산면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두모마을을 지나다 보면 "효열부 나주임씨 정려"라는 효열비각을 만난다. 15세에 시집을 가서 남편이 일찍 병사했으나 친정의 회유에도 불구하고 평생 맹인인 시아버지를 모시고 살았다는 이야기다. 18세기 인물을 기리는 비각이 여러 차례의 중건을 거쳐 지금 까지 보존되고 있는 것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만, 사실 두모마을은 "해남의 탯줄"이라고 불리는 별명을 가질 만큼 신석기시대부터의 선사 시대의 유물이 발견된 유서가 깊은 마을이다. 백포만방조제가 축조되기 이전에는 섬이었던 곳이다.

 

짧게 스쳐간 두모마을을 지나면 백포 해안선을 따라 걷는다.

 

백포리는 백방산 아래에 있는 포구라 하여 백포라 했다는 말도 있지만 멀리서 보면 굴과 꼬막 껍데기가 쌓여서 하얗게 보여 백포라 했다는 말도 있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면 독특한 자화상으로 유명한 유두서 선생의 해남공재고택을 만날 수 있다.

 

백포마을이라고 해변 일부러 껍질을 뿌렸는지, 자연적으로 깔린 것인지는 몰라도 백포 해안은 조개껍질로 하얀 해안선을 이루고 있었다. 

 

길 한쪽에서 독특한 식물을 만났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인 실유카이다. 실육카, 사란이라고도 하며 관상용으로 많이 심지만 인디언들은 식용으로 사용했고 잎에서 섬유를 추출하고 뿌리를 약재로 쓴다고 하니 관심이 간다.

 

두모마을로 들어서며 송지면에서 현산면으로 들어섰던 길은 백포 해안 끝자락에서 다시 화산면 안호리로 넘어간다. 수문을 지나면 좌회전하여 중정길로 들어선다.

 

밀물로 물이 가득 들어온 백포만 바다는 마치 잔잔한 호수와 같다.

 

쓰레기 무단투기 경고문에 태국어가 적힌 것은 처음 본다. 고궁 같은 곳의 안내문에 영어를 병기하는 경우는 많이 보았지만 경고문에 태국어가 적혀 있다니 이곳의 다문화 가정과 외국인 근로자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현실이었다.

 

해안을 따라가던 길은 우회전하여 중정마을로 향한다.

 

중정마을 뒷산에서는 철기시대의 고분이 발견되어 당시의 유물이 출토될 정도 유서가 깊은 마을이다.

 

중정마을 정자를 감싸고 있는 나무가 인상적이다.

 

중정마을을 통과한 길은 북쪽 국도 방향으로 이동한다.

 

중정마을을 지나 국도를 건너면 도로 건설과정에서 발견된 해남 안호리, 석호리 유적에 대한 설명과 함께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이곳에서 이른 점심을 먹으며 쉬어간다. AD 3세기부터 4세기, 마한 시대의 많은 고분과 함께 다양한 유물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휴식 후에는 쉼터 우측의 길을 따라 석호리 대지마을로 향한다.

 

대지마을로 향하는 길에서는 대인 저수지를 감싸며 내려간다.

 

대인저수지를 지나 대지마을로 내려온 길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고 마을 앞에서 좌회전하여 마을 외곽을 돌아간다.

 

대지마을 외곽을 돌아 해안 방향의 들판으로 나가는 길, 서해랑길 2코스의 종점까지 4Km 정도를 남겨두고 있다.

 

길은 송평로 도로를 가로질러 평호리의 들판을 걷는다.

 

평호리 들판길을 걷다 해안에 이르면 우회전하여 사포마을로 향한다. 

 

사포마을에 이르면 마을 진입 도로를 가로질러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사포마을이라는 이름은 모래가 있는 포구라고 사포라 했다고 한다.

 

사포마을을 빠져나오는 농로에서 만난 밭에서는 마늘이 푸릇푸릇하고 봄동이 꽃처럼 잎을 활짝 펼치고 있다. 중부지방은 서리가 내려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다. 봄동은 통상 12월 중순부터 출하한다고 한다. 고소한 봄동맛을 상상하니 군침이 돈다.

 

좌일길 도로로 나온 길은 도로를 따라 내려가며 석호리 좌일마을을 지나 관동방조제에 닿는다. 좌일마을 앞 깨끗한 정자에 앉아서 잠시 쉬어가는데 마을 어르신 한분이 내려와 말을 건네신다. 사람들이 지나가면 이곳에서 쉬어가기도 하고, 마을에서 자고 가기도 한다고......

 

관동리와 평호리를 연결하는 780미터의 방조제로 1967년에 완공되었다. 2코스를 걸으며 만났던 다른 방조제들은 일제강점기에 축조되었으니 그나마 최근에 만들어진 방조제이다. 

 

방조제 북쪽으로는 바다 건너 우리가 서해랑길 3코스로 가야 할 관두산(177m)이 자리하고 있고 방조제 안쪽으로는 넓은 습지와 함께 넓은 관동들판이 펼쳐진다.

 

방조제 안쪽 습지에서는 저어새, 청둥오리, 고니와 같은 철새들이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다. 새들하고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음에도 인기척을 느끼면 금세 날아가는 새들을 보면 내가 위협한 것도 아닌데 괜히 미안해진다. 저어새는 부리로 열심히 물을 휘젓는다. 얕은 물에서 부리를 저어 먹이를 잡는다고 이름도 저어새이다. 

 

관동방조제 끝자락에서 2코스를 마무리하고 3코스를 이어간다. 종료 지점에는 산악회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버스 한 대가 산악회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저렇게 다니면 이동에 대한 부담이 없어 편하기는 하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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