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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마을에서 땅끝탑으로 이동하여 삼천리를 훌쩍 넘기는 기나긴 서행랑길을 시작한다. 시작점으로 이동도, 땅끝탑에서 송호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길도 갈두산 아랫자락으로 조성된 깔끔한 산책로를 걷는다. 

 

이른 새벽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에서 해남으로 가는 6시 20분 고속버스를 타니 땅끝마을을 들러 사구미로 가는 08:00 버스를 탈 수 있었다. 교통카드는 탈 때만 찍으면 된다. 고속버스에서 내려 농어촌 버스를 탈 때까지 화장실도 다녀오고 점심용 김밥도 구입할 정도로 시간 여유가 있었다.

 

버스는 한 시간 정도를 달려 땅끝마을에 우리를 내려다 주었다. 남파랑길을 끝내면서 만났던 땅끝마을과 땅끝 전망대 풍경이 따스한 아침 햇살과 함께 우리를 반겨준다. 땅끝마을 정류장에 내려 해변으로 이동하면서 잠시 공중 화장실에 들렀는데, 해남의 공중화장실은 조금 과장을 보태서 호텔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정말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동남아 여행을 다녀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가 깨끗하고 볼일 보는 동안 음악을 틀어주는 해남의 공중 화장실은 최고였다. 해남의 첫인상일 텐데 화장실 덕분에 좋은 인상을 남긴다.

 

땅끝공원과 땅끝 전망대로 오르는 모노레일 정류장을 지나서 해변으로 나간다.

 

이른 아침 해변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것은 해남군의 캐릭터 땅끝이와 희망이 뿐이다. 멀리서 보면 해남 배추를 형상화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자세히 보면 캐릭터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은 한반도 지형이다. 

 

땅끝항 부두에는 보길도로가는 카훼리가 출발을 준비하고 있다. 땅끝항에서는 "어부사시사"의 윤선도가 여생을 보낸 것으로 유명한 보길도를 비롯하여 노화도, 흑일도, 넙도로 가는 배가 운행 중이다.

 

겨울 아침의 서늘한 공기를 가르며 해안 산책로를 걷다 보면 길은 어느덧 남파랑길의 종점이자 서해랑길의 시작점인 땅끝탑에 도착한다. 절뚝거리는 발로 땅끝 전망대에서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남파랑길을 끝낸 것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서해랑길을 시작하기 위해 이곳을 다시 찾으니 감회가 새롭다. 

 

남해 바다의 끝자락이자, 서해의 시작점에서 서해랑길 1코스를 시작한다.

 

땅끝탑 해안으로는 2023년에 설치된 당할머니 조각이 바위 위에 세워져 있었다. 민간 무속 신앙 이야기로 이곳 갈산마을에 큰 규모의 당집이 있었는데 갈산마을뿐만 아니라 서남해안 일대에서 영험하기로 소문이 났었다고 한다. 파도와 싸우는 어부들도 아이를 낳지 못하던 여인들도 길을 지나던 나그네들도 제사를 드리고 예를 갖추었다고 한다.

 

동쪽으로는 백일도 위로 눈부신 아침 태양이 잔잔한 은빛 물결을 만든다.

 

남파랑길과 서해랑길 리본이 형제처럼 나란히 매달린 계단을 올라서 서해랑길 걷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주황색과 노란색으로 이루어진 서해랑길 리본을 따라 좌회전하여 연리지 나무와 오토캠핑장 방향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해안 데크길을 걷다 보니 어디서 인가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려온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찔한 바위 절벽 위에 있는 쉼터에서 산책 나오신 것으로 보이는 분들이 담소 중이었다. 해안 절벽을 따라 이어진 데크길의 정체를 알 수 있는 광경이었다. 우리는 편하게 데크길을 걷고 있지만 이 길을 만드신 분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연리지는 뿌리가 다른 나무의 가지가 서로 엉켜 하나의 나무처럼 자라는 걸 말하는데, 이곳에는 두 개의 연리지가 있는데 모두 때죽나무라고 한다. 봄이면 하얀 꽃과 함께 매력적인 향기를 내뿜는 때죽나무처럼 송호리에 살던 처녀, 총각과 관련한 사랑 이야기가 서려있다. 마을총각이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갔다가 소식이 없자, 처녀가 짝이 떠나간 바닷가에 굴을 파고 사랑을 기다리다 생을 마감했는데, 총각이 돌아와 이 소식을 접하고는 또 다른 굴을 파고 처녀를 그리다가 생을 마감했다는 슬픈 이야기다.

 

연리지 리본함이 있었는데 하나는 인쇄된 문구가 적힌 리본이 있는 리본 함이고, 다른 하나는 직접 글을 작성할 수 있도록 배려한 리본 함이다. 많은 경우 상술로 대나무 조각을 매달거나 패를 다는 것이 보통인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렇게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 새롭다.

 

매달린 연리지 리본을 지나니 리본을 매단 사람들의 마음이 전해지는 것 같아 마음이 푸근해진다. 임진강역부터 해남 땅끝까지 내륙으로 이어지는 코리아트레일도 서해랑길과 함께 한다.

 

길은 불무청 쉼터를 지난다. 이곳에 길을 내다가 옹기 편이 있는 가마굴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불무가 대장간에서 사용하는 풀무에서 왔으나 대장간 흔적은 없다는 이야기, 길을 좀 더 올라가면 송종마을이 있는데 금광도 있었고 1970년대까지는 석탄도 상당량 채굴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지금은 앞바다에는 양식장이 가득하고 뒷산에는 땅끝 전망대로 관광객을 모으고 있는 진도에서 금도 캐고 석탄도 캤었다는 이야기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데크 산책길을 벗어나면 갈산길 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이동한다.

 

갈산길에서 독특한 나무 열매를 만났다. 이름하여 말오줌때나무이다. 나무 이름에 말 오줌이 들어간 것처럼 가지나 열매에서 냄새가 난다고 한다. 고추나무과의 낙엽 관목이다. 조금은 재미있는 우리말 이름과 달리 영어 이름으로 Korean Sweet Heart Tree라고도 부르는데 아마도 검은 열매를 싸고 있는 붉은 껍질이 하트 모양이라 붙인 이름인 모양이다.

 

통영이나 고성 앞바다의 양식장을 보면서도 와! 하는 탄성이 나왔지만, 이곳 앞바다는 그야말로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바다가 양식장으로 가득하다. 해남군은 송지면과 화산면, 황산면에 이르는 해안으로 김 양식을 많이 한다. 해남군은 전국 물김의 25%를 생산하고 있고 김 가공공장도 전국 최대 규모라고 한다.

 

길은 갈산마을을 거쳐 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서해랑길 표식은 2.4Km를 왔다고 하지만 우리는 땅끝마을에서 시작했으니 3.5Km가 넘는 길이다.

 

갈산마을을 지나며 커다란 동백나무 몇 그루를 만나며 마을분들이 나무를 잘 가꾸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마을 안내도를 보니 갈산마을은 "붉은 동백숲"을 자랑하는 마을이었다. 서해랑길이 동백숲을 살짝 스쳐 지나온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갈산항과 땅끝탑 아래 해안에 있었던 당할머니 조각상과 연관이 있는 갈산당집을 찾아보며 마을을 뒤로하고 길을 이어간다.

 

길이 땅끝오토캠핑장을 만나는 지점에 이르면 좌측으로는 아름다운 송호리 해수욕장의 전경이 펼쳐진다. 땅끝오토캠핑장은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곳으로 가격도 저렴하고 바로 앞으로 아름다운 해변이 있으니 날이 따뜻해지면 이곳으로 차박 하러 와도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송호리 해수욕장은 해변으로는 우람한 소나무들이 줄지어 자리 잡고 있고, 해변으로는 하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는 정말 매력적인 해변이었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공중화장실의 청결도는 그야말로 최고이고, 성수기에 개방하는 샤워장이 무료라는 것이다. 이런 곳이 집 가까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나중에 다시 오고 싶은 곳으로 찜해둔다.

 

소나무 숲 앞으로 설치해 놓은 고정식 파라솔과 쓰레기 하나 없는 깨끗한 해변은 이국적인 느낌까지 든다.

 

아름다운 해변 풍경에 탄성을 연발하며 해수욕장 끝자락을 향해 길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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