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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로 들어온 남파랑길 86코스는 달도를 거쳐 완도대교를 건너면 완도 본섬으로 들어간다. 완도 초입 원동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한 다음 해안길을 걸어 황진리 포구에 이른다.

 

구 남창교를 건너서 해남에서 완도군으로 진입한 남파랑길은 완도 본섬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완도와 육지 사이에 있는 달도를 돌아서 간다. 완도 군외면에 속한다. 섬의 모양이 배의 닻처럼 생겼다고 닻섬이라 부르다가 달도가 되었다고 한다. 13번 국도 우측길로 염수마을 방향으로 이동한다.

 

길은 염수마을, 달도 마을을 차례로 지나 달도 테마공원으로 향해야 한다. 

 

그런데, 전봇대에 살짝 붙어 있는 표식을 보고 따라가다가 그만 길을 잠시 헤매고 말았다. 길은 달도 마을 입구를 살짝 지나서 석재상 앞에서 우회전해야 했다.

 

잠시 엉뚱한 길을 걸어서 달도 마을회관과 골목길을 통해 국도 인근까지 갔지만 국도로 진입할 수 있는 길은 없었다. 골목 초입에도 이전 남파랑길의 표식이 남아 있어서 잘 가고 있구나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어쨌든 달도 마을의 아름다운 돌담이 있는 골목길을 만난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다시 달도 마을 입구로 돌아와 지도앱으로 위치를 확인하여 원래의 길로 걸을 수 있었다. 석재상 앞에서 우회전하여 해변으로 내려가면 달도 테마공원을 만날 수 있다. 한적한 정자에 앉아 바닷바람을 맞으며 잠시 쉬어간다.

 

공원 한편에는 불멸의 영웅 호남대장군 이순신에 대한 일대기와 이야기를 적어 놓은 벽도 있었다. 해안으로 나가니 완도대교 방향과 반대편에 망뫼산 약샘이 있는데 이곳은  호남대장군 약샘이라고도 불리는 곳으로 썰물 때 물이 빠지면 마실 수 있는 바다에 있는 샘물이다. 망뫼산 땅속으로 흘러내린 물이 바닷가에서 솟아오른 것이라고 한다. 정유재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 샘물을 마시고 구토와 설사가 나았다고 호남대장군 약샘이라고도 부르는 것이다. 완도대교 방향으로 달도 해안선을 따라 이동한다.

 

깔끔하게 정비한 달도 테마공원의 해안 산책로를 걸어 완도대교 방향으로 이동한다.

 

달도 테마공원을 지나면 달도 끝자락에 위치한 양식장을 돌아 완도 대교 방향으로 이동한다. 완도 해변에는 제주도만큼이나 많은 양식장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 시작이라 할 수 있겠다. 규모가 상당하다.

 

달도 끝자락의 양식장을 돌면 멀리 완도대교가 보이기 시작한다.

 

완도대교와 바다 건너 원동리의 모습. 오늘밤 하루 쉬어갈 곳이다. 지금의 완도대교는 2012년에 새로 지어진 것으로 이전의 다리는 철교였다. 완도가 처음 육지와 연결된 것은 1968년으로 1963년부터 5년간 한국전쟁 당시 폭격을 맞은 임진강 철교를 분해해서 이곳으로 옮겨와 재조립하는 방식으로 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이전의 다리는 새로운 다리가 생기면서 철거되었다.

 

포구에서 낚싯대를 드리운 사람들이 부럽다. 언젠가 글쓰기도 싫고, 운동도 싫고, 여행도 싫고, TV도 싫어지면 남도로 내려와 음악 들으며 조용히 낚싯대를 드리고 싶은 생각은 마음속 깊숙하게 저장해 둔다.

 

달도를 걸으면서 과연 다리로 진입하는 길이 있을까 싶었는데, 도로 둑방에 계단길을 만들어 놓았다. 계단을 올라 완도대교로 진입한다. 완도를 한 바퀴 돌고 89코스를 걸을 때는 이 길을 반대로 내려가야 한다.

 

완도 대교 위에서 바라본 남쪽 바다 풍경. 남쪽의 횡간도, 노화도, 보길도, 소안도 등 완도의 남서쪽에 위치한 섬들도 모두 완도군에 속한 섬들이다. 완도 원동리 쪽은 물결이 잔잔해 보이는데 해남 쪽 해안선을 따라 흐르는 물살은 거칠어 보인다.

 

완도대교를 건너면 다리 반대편처럼 계단길이 있었지만 풀숲이라 안전하게 완만한 산책길로 내려간다.

 

완도대교 다리 아래에 작은 공원이 있는데 남파랑길 86코스는 이곳에서 동쪽에 있는 국도 아래의 굴다리 방향으로 이동하고, 남파랑길 89코스는 반대편 서쪽 해안에서 이곳을 통해 완도대교로 올라간다. 우리는 원동리 모텔에서 하룻밤 쉬어간다. 인근에 모텔과 편의점, 식당들이 있어 편리했다.

 

다음날 아침 13번 국도 아래를 통과하는 굴다리를 통해서 국도 아래를 지난다. 굴다리를 통과하면 작은 공원 외곽으로 산책길을 따라 이동한다. 아침 이슬에 신발이 촉촉해지는 길이다.

 

7월부터 붉은 꽃을 피웠을 배롱나무의 꽃도 이제 끝물이다. 꽃이 백일 간 피고 지고 한다고 해서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데 여름 한철 화려함을 자랑했던 꽃들도 이제 지는 꽃들이 더 많아 보인다. 길은 산책길을 지나 도로로 올라선다.

 

길은 큰길을 가로질러 청해진로 도로를 따라가다가 중리마을 정류장을 지나 좌회전하여 해안으로 나간다. 주위는 여명으로 조금씩 밝아진다.

 

여명이 밝아오는 중리마을 앞바다의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고요함과 두근거림이 함께하는 풍경이다. 오늘의 완도 일출 시간이 오전 6시 13분이었으니 일출 후 10분이 지났다. 오늘 하루도 강렬한 태양을 예고하는 동쪽의 태양을 보면서 길을 이어간다.

 

푸른 초장 너머로 여명이 깔린 바다를 배경으로 이른 아침부터 해안길을 걷는 어떤 부부의 모습이 자연스레 한 폭의 그림이 된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걸작이 경이롭다.

 

중리마을 포구를 뒤로하고 동쪽을 향해서 완도의 최북단 해안 둑방길을 걷는다.

 

구름 뒤로 쏟아지는 태양의 강렬함을 보면서 구름에게 부탁해 본다. 조금만 더 태양을 가려주지 않으련? 구름이 작은 산이 태양을 가려줄 때 한걸음이라도 더 걷자 하며 발걸음을 분주하게 움직인다.

 

얼마나 걸었을까? 완도대교도 한참 멀어졌다. 길은 중리마을 해안 끝자락에서 내륙으로 들어간다. 중리 마을 뒷산을 넘어서 황진리로 가는 길이다.

 

길은 도로를 가로질러서 계속 직진하여 오르막을 오른다.

 

황진리로 넘어가는 오르막길에는 고개 정상부에도 민가가 있었다.  

고개를 넘어 황진리로 내려간다. 언덕에 오르니 이마에는 땀이 흘러도 풍경을 일품이다.

 

언덕을 내려오면 다시 청해진로 도로를 만나는데 도로를 따라 걷다가 황진리 정류장을 지나 좌회전하여 해안으로 나간다. 황진리 마을 이름을 접하면 바로 떠오르는 것은 "청산리 벽계수야"를 노래했던 기생 황진이였지만, 황진리는 사람이 아니라 황장목(黃腸木)과 연관되어 있다. 금강소나무나 금강송은 자주 들었지만 황장목은 생소한 편인데, 나무속에 송진이 가득 베어 속이 붉고 단단하여, 썩지 않는 최고급 소나무를 지칭한다. 궁궐을 짓거나 왕의 관을 만드는 데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완도에 황장목이 많아서 국유림으로 관리했고 이 마을을 통해서 황장목을 진상했다고 붙은 마을이름이다. 금강송은 일본 학자가 붙인 분류이름이라고 한다. 2019년 치악산 국립공원은  "금강소나무 숲길"을 "황장목 숲길"로 변경했다.

 

황진리 마을길을 걸어 해안으로 나가서 둑방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한다. 산 위로 떠오르는 태양이 눈부시다. 

 

물이 들어오고 있는 시간, 황진리 앞바다는 호수와 같다. 한 시간이 지나면  만조다.

 

조선시대에는 이곳으로 완도 곳곳에서 수집한 황장목을 끌고 왔을 것이고, 그것을 다시 한양까지 운반했을 것이니 당시만 해도 상당히 중요한 포구였겠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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