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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흥으로 넘어온 남파랑길이 지나온 한승원 문학 산책길은 장재도 앞까지 이어진다. 장재도 앞의 사촌 마을을 지난 길은 남상천이 바다와 만나는 길목에 있는 해안 방조제의 둑방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다. 중간에 방조제와 방조제를 잇고 있는 해창 마을을 지나고 방조제가 끝나면 원등 마을로 들어가 여정을 마무리한다.

 

한승원 문학산책길을 지나온 남파랑길은 전면의 장재도를 보면서 사촌 마을로 향한다.

 

멀리 장재도와 육지를 잇는 장재교를 보면서 길을 이어간다. 반대편으로는 장재도 남측과 용산면 상발리를 잇는 정남진 대교도 있다.

 

장재교 다리 입구에는 현대적인 감각으로 장재도를 알리는 문구들을 적어 놓았다. "우리는 지금 장재도", "여길 오길 잘했다". 우리도 공감한다. 남파랑길 걷기를 잘했다. 멀리 득량도를 뒤로하고 사촌 마을로 들어간다. 사실 지금은 장재교 다리 아래로 바닷물이 오가지만 한국 전쟁 이후 이곳에는 장재도와 육지를 잇는 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여파로 갯벌이 죽어가자 2006년 제방의 중심부 120미터를 걷어내고 대신 교각을 세워 해수를 유통시켰다고 한다. 그 결과 갯벌이 살아나서 역간척의 사례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장재도라는 이름은 부자가 살았던 섬이라는 의미인데, 옛날에는 부자를 장자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길은 사촌 마을 골목길을 통과하여 서쪽으로 이동한다. 마을 이름은 이름 그대로 모래가 쌓여있던 마을이라고 붙인 이름이다.

 

골목길에서 접시꽃을 만났다. 아욱과의 두해살이 풀이다.

 

다양한 색상으로 자태를 뽐내고 있는데, 같은 아욱과라서 그런지 잎은 아욱을 닮았고 꽃은 무궁화를 닮았다. 무궁화는 아욱과의 낙엽 관목이다. 무궁화를 약재로 사용하듯 접시꽃도 잎, 줄기, 뿌리 모두 약용으로 이용된다고 한다.

 

사촌 방조제길을 걸어간다. 1961년 황해도 피난민을 중심으로 소위 간척왕 김형서 중심으로 쌓은 방조제다. 평양 출신의 김형서가 처음으로 쌓은 방조제라는 의미가 있다. 먹고사는 것이 최우선이었던 그때만 해도 피난민, 막일로 살아가는 노동자, 일부 주민들이 간척으로 만들어진 일부 농지를 분배받으며 정착에 도움이 되었겠지만 매년 먹지 않는 쌀이 쌓이고, 쌀값으로 정부와 농민 간의 갈등이 매년 벌어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과연 간척을 했어야 했을까? 하는 시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제방을 사이에 두고 역간척으로 살아난 갯벌과 간척으로 만들어진 농지를 보는 느낌이 복잡하다. 

 

해창사촌 1차 방조제 끝자락에 이르면 간척왕으로 불렸던 김형서 씨가 세운 시혜비를 볼 수 있다. 피난민으로서 이곳에서 해창 마을과 사촌 마을을 잇는 방조제를 성공하면서 이후로 저수지와 더 큰 방조제를 쌓게 되고 장흥 남쪽 대덕읍의 광활한 간척공사를 마무리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간척지에서 은탑 산업 훈장을 받는 일이 일어난다. 1969년에는 피난민과 영세 농민을 도와 대규모 간척을 성공시켜 그들의 정착을 도왔다는 공로로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한다.

 

간척으로 없어진 갯벌과 작은 포구들, 이름 모를 유적지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도 있지만, 오로지 내 땅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으로 갯벌에 돌을 던지고 흙을 쌓았을 피난민과 영세 농민들을 생각하면 그들의 피땀이 오늘날 이 나라의 기반이 되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간척왕 김형서 씨가 세운 시혜비의 내용은 첫 간척 사업이었던 해창사촌 1차 방조제에 도움을 주었던 보성 성당과 천주교단에 대한 감사글이다. 

 

방조제를 지난 길은 산을 돌아서 해창 마을로 들어간다.

 

해창 마을로 가려면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산속에 조용하게 자리 잡은 해창 마을은 세곡을 수집하여 배로 운반하기 위한 조운창이 있던 곳으로 장흥의 삼창 중의 하나인 중요한 곳이었다고 한다. 예전에 포구였던 곳은 간척으로 그 흔적도 없어진듯하다.

 

해창 마을 정류장으로 나오니 빨간 장흥 군내버스가 제 갈 길을 간다. 오늘은 장흥 시내로 가서 쉴 예정이므로 저 버스를 타고 나갈까? 하는 유혹도 있었지만, 옆지기님이 뚝심 있게 그냥 마저 걷자고 하신다.

 

해창 마을 바로 옆에 작은 섬이 있었던 모양이다. 길은 해창마을과 섬을 연결한 백여 미터의 둑방길을 지나 섬 외곽길을 통해 해창 2차 방조제로 넘어간다.

 

해창 2차 방조제의 수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고향을 떠난 피난민들, 아무 기반도 없던 영세 농민들과 노동자들이 제방을 쌓아 만든 농지를 분배받았을 때 얼마나 큰 감격이 있었을까 상상해 보면 내 가슴도 감격으로 뛰는 것 같다.

 

서쪽으로 이동하는 방조제길에서 북쪽으로 보이는 산은 사자산(668m)이다.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목적지인 원등 마을이라 생각했는데 원등 마을이 아니라 지천 마을이었다. 큰 나무가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곳에서 잠시 쉬어 가기는 했지만 온통 농로뿐인 들판에서 원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있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지도앱이고 지도앱은 원래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주었다. 원래의 남파랑길과 이어지는 또 다른 농로가 있었다.

 

길은 남상천 둑방길을 걷는다.

 

남상천 둑방길을 지나면 덕암지천길 도로를 만나 좌회전한다.

 

 

원등 마을에서 여정을 마무리하고 숙소가 있는 장흥 시내로 돌아간다. 원등 마을도 장흥 군내버스가 지나는 곳이지만 버스가 많지 않다. 다행인 것은 북쪽으로 4백여 미터 이동하여 77번 국도로 나가면 장흥 시내 가는 버스가 많이 지나므로 많이 기다리지 않고 장흥 시내로 갈 수 있었다.

 

숙소는 탐진강변에 있는 진송관광호텔이었는데 연식은 오래되었어도 친절도도 편의 시설도 만족스러운 숙소였다. 예약된 방은 창문을 활짝 열어두어 냄새가 빠지도록 배려해 놓았고, 방으로 올라가면서 어디를 가라고 일일이 추천해 주었다. 짐을 두고 일단 탐진강을 넘어 시장을 구경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정남진 장흥 토요시장으로 이곳을 방문한 날이 토요일이 아니라 시장을 열까 했는데 상설시장도 있어서 다행이었다.

 

탐진강은 전남의 3대 하천 중의 하나일 정도로 큰 강으로 장흥댐을 출발하여 장흥을 가로질러 강진만을 통해 남해로 나가는 강이다. 예양교 다리를 건너면 보이는 풍경은 그 유명한 장흥 한우를 파는 가게들이 이어진다. 한우, 키조개, 표고버섯 장흥 한우 삼합에 입맛을 다신다.

 

토요 시장이란 말에 가지 말까! 했었는데 막상 오니 상설시장도 있었다. 물론 토요 시장에 오면 분위기가 다르겠지만......

 

옆지기님의 쇼핑 백미는 보리수 열매였다. 아주머니는 술을 담가먹기도 하고, 그냥 먹어도 되고 했는데 걷기 여행 중인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생과로 먹는 것이었다. 그런데 입에 넣는 순간, 떫은 감을 먹는 것보다 더한 떫은맛에 인상을 찌푸린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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