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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춘리에 도착한 남파랑길 25코스는 시내 구간을 걸어서 거제면 한복판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부춘저수지를 지나는 길에서 늦가을의 정취를 느끼며 바다와는 다른 감성을 가슴에 담는다.
부춘 저수지를 지나 마을길을 걸으며 이곳이 과연 섬 맞나? 하는 농촌 풍경을 접하며 길을 이어간다. 우리나라 제2의 섬이지만 제주도와는 완전히 다른 환경을 가진 거제도의 속살을 만난다.
부춘이라는 마을 이름은 부자 마을, 즉, 부촌에서 왔다는 이야기가 허황된 것이 아니라는 증거는 마을을 흐르는 실개천을 보면 알 수 있다. 높은 노자산 자락에서 끊임없이 물을 공급하니 농사가 잘 될 것이고, 농사가 잘 되면 부한 마을이 되는 것은 당연 지사가 아닐까? 사람에게 물은 생명줄이라는 것은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아도 어렵지 않게 증명될 사실이기는 하다.
부춘천 건너 쉼터에서 뜨거워진 발을 잠시 식히고 간다. 오망천 삼거리는 이곳을 거쳐 내려가는 부춘천이 산양천과 합류하여 바다로 흘러 내려가는 도중에 5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이다. 조금 있으면 우리가 지나가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보호수로 관리하고 있는 2백 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지나 길을 이어가면 요양병원 앞에서 율포리 초입에서 만났던 율포로 도로를 다시 만나서 오망천 삼거리까지 도로를 따라서 도로변을 걷는다.
요양병원 앞의 잎과 꽃이 없는 연밭도 논을 가득 채운 하얀 굴껍데기도 다른 곳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도로 옆 연밭은 만나기 쉽지 않고, 논에 비료로 굴껍데기 조각을 뿌리는 것은 통영이나 거제라서 볼 수 있는 풍경인 까닭일 것이다.
요양 병원을 지나 만나는 마을의 지붕은 온통 파스텔톤이다. 이곳은 삼거림 마을이다.
산양, 밤개, 오송정으로 통하는 마을이라 삼거림이란 마을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을 버틴 스레트 지봉에 파스텔톤의 페인트를 칠한 누군가의 마음은 무엇일까? 하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아마도 거제시가 마을 단위로 색채 디자인을 정해서 통일적인 색채를 갖도록 수행한 사업 때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나쁘지 않았다. 색채와 함께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에도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수행하면 좋을 듯하다. 이런 사업을 수행하면 새롭게 지어진 집들은 다른 가옥들과는 동떨어지는 색채를 갖게 되는 소외가 발생하니 이를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율포로 도로를 따라가는 길, "통영" 표지판이 등장하는 것이 이번 여정이 끝나면 거제를 빠져나간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앞선 길 표지에 등장했던 오망천 삼거리에 도착했다. 다리를 넘어서 좌회전하면 엄청난 평야 지대를 지나게 된다. 이곳이 섬 맞아? 하는 질문이 절로 나오는 평야지대다.
오망천 삼거리라고 하지만 지도에서 보면 하천의 이름은 산양천이다. 산양 마을을 거쳐 내려오는 하천이니 산양천이라 부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예전부터 오망천이라 불렀다고 한다. 넓은 들을 바라보는 양지바른 곳이라 하여 산양마을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오망천교를 넘으면 편의점이 하나 있는데 편의점 앞의 의자와 탁자는 고양이들이 놀이터인 곳이었다. 그곳에 앉아 따뜻한 꿀유자차와 커피를 마시면서 쉬어가는데 우리와 인사도 나누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중년 커플이 우리를 보더니 편의점으로 오지 못하고 길가 벤치에 앉아 휴식을 취한다. 왠지 미안한 느낌이 들었지만, 휴식을 끝낸 우리는 "수고하세요!" 하는 인사말과 함께 다시 그들보다 앞장서 길을 이어간다. 시합은 아니었지만 같은 길을 걷는 커플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쟁 아닌 경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비슷한 체력이라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길은 산양천을 따라서 하천변을 계속 이어서 걷는다. 실물 자전거를 장식물로 세워놓은 정원도 있었지만 딱히 맘에 들어오는 그림은 아니었다.
산양천을 따라 걸어가는 길, 이 하천이 흘러드는 바다는 한산도와 추봉도가 천혜의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는 한산만 바다이다. 이순신 장군이 처음으로 설치한 통제영이 위치한 곳이 바로 한산도이고 한산도 앞의 넓은 들판을 가지고 있는 곳이 이곳이라는 생각을 하니 묘한 생각이 든다.
산양천 하천변을 걷던 남파랑길은 농로를 가로질러 오수리 마을로 향한다. 오수리는 해안 쪽으로 간척 사업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중단된 상태라고 한다. 평야 너머로 바다가 보이지는 않는다.
가을걷이가 끝난 논을 가로질러 간다. 거제면 오수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거제도에서 이런 평야 지대를 걷다니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광경에 그저 기계적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오수천을 건너서 오수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
오수 마을 끝자락에 들어선 새 건물들을 보니 이곳에 불어오는 변화의 바람을 조금은 느낄 것도 같다.
오수 마을을 지난 남파랑길은 죽림길을 따라 해안으로 나간다. 멀리 산 위로는 거제도를 들어올 때 보았던 건물이 보이는 것 같다. 아마도 시리봉 정상부에 자리 잡은 골프장과 아파트 단지가 아닌가 싶다.
죽림길 도로를 따라 해안으로 나가는 길 멀리 거제면 읍내가 도시의 분위기를 물씬 뿜어낸다.
죽림길 도로를 따라 걷던 길은 우회전하여 남동리 제방길을 걷는다.
남동리 제방길을 걸으니 남해안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독특한 풍경이 펼쳐진다. 제방 좌측은 썰물에 드러난 갯벌이고 우측은 갈대가 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습지이다.
좌측은 엄청난 굴 종패 양식장이고, 우측은 노란 갈대밭이다.
엄청난 조가비줄들을 매달아 놓은 굴 종패 양식장을 보고 있자니 도시에서 먹는 굴의 정체를 확인하는 느낌이다.
고성과 통영을 지나며 부위에 매달려 물속에 잠긴 굴 양식장만 보다가 나무 지주대에 걸린 조가비줄을 보니 새로운 느낌이다. 석양에 물들어 가는 굴 종패 양식장은 우리에게는 감성을 끌어올리는 풍경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삶을 일구어 가는 터전일 것이다.
제방길을 걸어가는데 중년 부부가 작은 배를 타고 양식장을 누비며 조가비줄을 하나씩 하나씩 돌보고 계셨다. 줄 하나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이 분들의 자산을 생각하면 태풍이라도 올라오면 얼마나 조바심이 나실까! 하는 상상을 하게 한다.
제방 한편에 쌓여 있는 나무들을 보니 이 분들의 노동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힘든 노동의 현장이겠지만 우리는 석양이 비추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는 기억으로 남기고 길을 이어간다. 간척지를 만들어 농지로 공업단지로 사용하는 것이 좋을지 지금처럼 습지로 남는 것이 좋을지 몇 년 후의 이곳의 풍경이 궁금해진다.
완전한 갯벌이 드러난 곳에서는 석양 아래에서 또 다른 부부가 조개를 캐느라 여념이 없다. 갯벌과 아파트가 함께 있는 풍경도 그리 흔치 않은 풍경이기도 한데 생각해 보면 인천 송도에서 비슷한 풍경을 본 것 같기는 하다.
남동리 제방을 지나 도심 지역으로 들어가면 거제 파출소 앞에서 25코스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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