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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해변을 지난 올레길 12코스는 서귀포시 대정읍 신도리에서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로 넘어간다. 고산리에서 하룻밤 묵었다가 길을 이어간다. 고산리 마을길을 지나던 올레길은 수월봉을 지나 엉알길에 이른다.
신도리 해변에서는 파라 모터, 모터 패러 글라이딩, 동력 모터 패러 글라이딩 등으로 불리는 비행체를 타고 계신다. 윙윙하는 모터 소리를 내며 신도리 해변을 날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 집 근처 강변에서도 모터 패러 글라이딩을 하는 모습을 종종 보기는 했는데 바람 많은 이곳 서귀포 해변에서 보니 아슬아슬한 느낌도 있지만 하늘에서 감상하는 서귀포 해안의 아름다운 모습을 상상하면 나도 해볼까! 하는 충동이 가슴을 친다.
벌써 기억은 가물가물 해졌지만 젊은 시절 패러 글라이딩을 배워 보겠다고 강습을 한번 받아 본 적이 있다. 높은 산에 힘들게 올라가서 다시 걸어 내려오는 대신에 패러 글라이더를 메고 산 위에서 날아 내려오고 싶다는 막연한 상상 때문이었다. 현실은 상상이나 생각과는 큰 차이가 있는 법, 글라이더를 아무데서나 탈 수도 없다는 제약도 있고 패러 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활공장이 있어도 바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날수 없다는 제약도 있다. 그런데, 장소와 바람이라는 제약을 극복하는 것이 바로 모터 패러 글라이더이다. 등에 짊어지거나 비행기처럼 바퀴가 달린 기구에 부착한 모터 및 프로펠러의 힘과 캐노피의 양력으로 비행하는 것이다. 바람이 없어도 평지에서도 이륙할 수 있고 비행 중에 모터가 꺼지더라도 패러 글라이딩 하듯 양력으로 내려오면 된다.
신도리 해변은 올레길 12코스의 9Km 지점으로 오늘 우리가 쉬어갈 숙소까지는 3km가 남았다. 올레길 11코스에 이어서 걸은 보행 거리가 20Km가 넘은지도 한참 되었다. 이제는 휴식으로 몸이 충전되는 효과도 점점 떨어진다. 하멜 일행이 표류하다가 처음 상륙한 곳이라는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바로 옆으로는 뿔소라 공원이 마련되어 있고 공원 바로 앞 해변은 도구리알이라는 곳이다. 도구리알은 "돌로 만든 그릇"이란 의미로 밀물 때는 보이지 않다가 물이 빠지면 웅덩이의 형태가 나타난다. 뿔소라 공원은 돌고래도 관찰할 수 있는 장소라고 한다.
해가 지고 있지만 강렬하게 얼굴을 파고 들어오는 햇빛도 무더위도 한낮과 다를바가 없다. 해안길을 따라 걷다가 카페에서 쉬어 가기로 했다. 카페와 슈퍼, 펜션을 함께 운영하는 독특한 곳이었다. 카페 이름에 들어가 있는 도구리라는 이름이 포항에 있는 해변 이름과 비슷해서 그런지 친숙하게 느껴진 모양이다. 실상은 이곳의 도구리알과 연관된 것이었다. 놀멍 놀멍 가도 해지기 전에 들어가면 그만이니 아이스커피와 얼음물로 넉넉한 휴식을 가졌다.
신도 포구에 도착하면 올레길은 내륙으로 조금 들어가 길을 이어간다. 해안 도로를 따라서 서귀포시 신도리에서 제주시 고산리로 넘어가면 양식장이 이어지는 까닭이 아닐까 싶다.
신도리 마을길을 가로질러 들판 길로 나아간다.
대정읍 신도리 들판길을 가로질러 북쪽으로 걸어가는 길, 멀리 수월봉이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신도리 카페에서 넉넉한 휴식을 가져서 그럴까? 아니면 인근에 숙소가 있는 수월봉이 점점 더 가까워져서 그럴까? 몸은 땀범벅이고 발은 무겁지만 마음만은 가볍다. 거의 패잔병 수준으로 지친 옆지기를 끌고 갈 수 있는 수준이다.ㅎㅎ
올레길은 앞내창이라는 하천을 건너야 하는데 해안으로 나가서 건너는 방법이 있고 내륙으로 조금 더 들어가서 도로를 따라 건너는 방법이 있는데 올레길은 내륙 방향의 도로를 따라 앞내창을 건넌다.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경계를 이루는 앞내창을 건너서 이제 제주시로 진입한다.
오후 6시를 바라보는 시각, 해가 떨어지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주위는 점점 더 어둑해진다.
고산리 마을 정자를 지나 우회전하고 다시 한장동 마을회관 쪽으로 좌회전하여 올레길을 이어갈 수 있다. 이 동네에는 숙소들이 여러 개 자리하고 있어서 선택의 여지가 있었다. 올레길 11코스부터 12코스 12Km 지점까지 이어진 대장정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펜션에서 하룻밤 쉬어 간다.
우리 부부가 하룻밤 넉넉한 휴식을 취한 숙소는 "미리내 제주"라는 펜션이었다. 주인장 아저씨께서 보일러를 사용한 다음에는 꼭 꺼달라고 신신당부하셨던 곳이다. 주인장 아저씨는 땀에 절은 옷들을 빨 수 있도록 세탁기도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일요일 아침 조금 늦게 숙소를 나왔는데,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올레길에 대한 간단한 소개도 아끼지 않으셨다. 오늘도 쾌청한 하늘 아래 올레길 12코스를 이어서 걷는다.
1백 미터가 넘지 않는 78미터의 수월봉도 봉우리이니 오르막을 오른다. 둥근 시설물은 수월봉에 위치한 고산 기상대의 기상 레이더이다.
수월봉으로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신도리와 고산리의 전경이다. 제주시와 서귀포시의 경계는 무의미하다. 가까운 고산리 해안으로는 양식장 지붕이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백여 미터의 숲길을 지나면 수월봉에 있는 고산 기상대를 만나게 된다.
수월봉에서 바라본 남쪽 풍경에서 산방산과 모슬봉이 이제는 조금씩 희미해진다.
관측 범위가 반경 500Km에 이르는 S-Band 레이더가 이곳 고산 기상대와 성산포 기상대에 설치되어 있다고 한다.
수월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광활한 대정읍 들판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간다.
수월봉을 내려가는 길은 차도 올라올 수 있는 넓은 길이다. 앞으로 남은 길이 모두 이런 내리막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하게 하는 길이다. 아쉬움에 씁쓸하게 입맛을 다시게 하는 길이다.
수월봉을 내려가는 길에서 만난 차귀도와 엉알길이 그야말로 절경이다.
영산 수월봉이라 적힌 표지석 옆에 전기 자전거 광고판이 있는데, 때마침 여러 사람들이 저곳에서 전기 자전거를 빌리고 있었다. 면허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사람에 한해서 대여하기 때문에 대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 둘은 수월봉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짧게 회전하면서 주인장에게 자전거 실력을 보이고 있었다. 그 친구들은 우리가 엉알길을 걷는 과정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친구들이다. 자전거를 타더라도 사진 찍고 구경하면서 이동하니 걷는 사람과 속도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
사전 지식과 아무런 정보와 준비도 없이 입을 다물지 못했던 절경, 엉알길, 그 입구로 들어간다. 엉알길은 큰 바위, 낭떠러지 아래 길이라는 의미다. 기대 없이 정보 없이 만나서 더욱 아름다웠던 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엉알길은 입구에서부터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속살로 올레꾼을 맞는다. 와! 하는 탄성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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