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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 저수지를 떠난 올레길 12코스는 녹남봉을 지나 해안을 향해 신도 바당 올레에 이른다.

 

무릉리를 지나서 신도리에 진입한 올레길은 도원 연못, 신도 생태 연못, 신도 저수지라고도 불리는 작은 습지 옆을 지난다. 장마철인 지금은 물이 많지만 물이 항상 있는 곳이 아닌 모양이다. 

 

무릉리 들판길을 걸어온 우리는 신도 생태 연못에 있는 쉼터에서 잠시 쉬어 간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쉬어 가세요"라고 하는 "와리지마랑 놀멍놀멍 쉬엉갑써양"하는 공원 안내판에 적힌 제주어 대로 시간에 쫓기지 않고 놀멍 놀멍 쉬어간다. 그런데, 멀리서 보니 무릉리부터 우리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했던 젊은 커플이 정자 안에서 편안한 자세로 쉬고 있다. 우리도 그늘에서 편안하게 쉬고 싶은데, 저분들 때문에 쉽지 않겠다...... 하는 마음으로 쉼터 근처에 도달하니 고맙게도 그분들은 몸을 추스르고 길을 이어 녹남봉으로 향한다. 공원 앞으로 보이는 낮은 언덕이 녹남봉이다. 정자가 아주 깨끗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러면 어떠랴! 벌러덩 누워 충분한 휴식을 취해 본다. 

 

충분한 휴식 후에 공원 앞을 지나는 무릉 도원로 도로를 따라 걷다가 우회전하여 녹남봉 오름을 오른다.

 

오름이라고는 하지만 1백 미터 높이의 작은 언덕으로 부담 없이 지날 수 있는 곳이다..

 

녹나무가 많았었다고 녹남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침목 계단을 오르다 보면 금방 정상에 닿을 수 있다.

 

1백 미터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오르막길은 역시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모자를 벗고 걸어도 얼굴로 흘러내리는 땀은 어떻게 주체할 수가 없다. 숲이 태양의 직사광선은 막아주지만 습한 숲 속 공기에 뜨거운 숨이 더해져 땀은 비 오듯 한다.

 

녹남봉 정상에 오르면 쉼터와 함께 주위 전망을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도 마련되어 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방면의 전경이다. 우리가 앞으로 걸어가야 할 곳으로 멀리 수월봉의 고산 기상대도 눈에 들어온다.

 

멀리 산방산이나 모슬봉과 같은 오름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의 주인공은 대정읍의 넓은 들판이 아닌가 싶다.

 

월라봉처럼 녹남봉에도 일제 강점기에 일제가 주민들을 동원해서 만든 진지 동굴이 남아 있다. 잘 정비된 길을 따라서 녹남봉 분화구를 돌아간다.

 

녹남봉 분화구 안쪽은 다른 오름처럼 감귤밭과 기타 농지로 사용되고 있다. 녹남봉 분화구를 돌아온 올레길은 신도 1리 마을을 향해서 하산길에 나선다.

 

녹남봉에서 신도 1리 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길이 이어진다. 

 

녹남봉을 내려온 올레길 12코스는 신도 1리 마을길을 통해서 옛 신도 초등학교로 이동한다.

 

신도 1리 마을길을 걸어 옛 신도 초등학교에 도착하니 울창한 등나무 쉼터를 만나서 넉넉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예전부터 학교 운동장 벤치는 등나무 벤치가 정석이었다. 많은 비가 내리면 울창한 등나무 벤치도 어쩔 수 없지만 햇빛을 피하기에는 딱이다. 봄이면 꽃까지 즐길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오후의 강렬한 태양만 막아주어도 감지덕지다.

 

옛 신도 초등학교는 폐교되었지만 이곳에는 이전의 초등학교 분위기를 그대로 살린 도자기 체험 문화 공간, 산경 도예가 자리하고 있다.

 

산경 도예를 빠져나오면 도로를 가로질러 해안 방향으로 이동한다.

 

신도리 마을길을 걷다 보면 "올레길 할망 숙소"라는 브랜드를 걸고 있는 민박집도 만날 수 있다.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의 방 한두 개를 저렴한 가격으로 올레꾼에게 내어주는 것이다. 신도 고인옥 할망네가 이곳이다. 

 

올레길은 일주서로 큰 도로를 가로질러 해안을 향해 서쪽으로 서쪽으로 향한다.

 

마늘 주산지인 대정읍 들판은 8월 말부터 시작되는 마늘 파종 준비가 한창이다. 기계화가 많이 되었다고 하지만 사람 손이 많이 필요한 제주의 농가들도 육지의 다른 농촌 지역처럼 외국인 근로자에 상당한 부분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많은 외국인이 무사증으로 입국한 미등록 외국인 근로자라는 것이다. 단속하면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미등록 외국인을 쓰는 것이 더 편리한 아이러니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곳의 밭벼는 이삭이 벌써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추석이면 누런 벼를 추수할 수 있을 것 같다. 겨울이면 푸른 마늘밭으로 변모할 대정읍의 들판을 가로질러 신도리 해변으로 나아간다.

 

모슬포와 동일리 해변을 마지막으로 올레 11코스와 12코스를 거치며 내륙을 걸었던 올레길은 드디어 바다로 나왔다. 신도 바당 올레다. 해가 서쪽으로 지고 있는 오후 시간이므로 앞으로는 태양을 정면으로 받으며 걸어야 한다. 신도 포구까지 노을 해안로라는 이름의 해안 도로를 따라 걷는데 오후 5시를 바라보는 시각, 석양이 비추는 은빛 물결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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