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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 11코스는 무름 곶자왈과 안향동을 지나 무릉 외갓집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셰프의 한 끼도 맛보는 폼나는 길이었다.

 

무릉 곶자왈을 돌아 나와 이제는 인향동을 향해서 아름다운 숲길을 걷는다. 곶자왈의 한 축이 양치식물, 나무와 덩굴들이 만들어 내는 숲이라면 또 다른 한 축은 울퉁불퉁한 현무암 돌바닥이다. 돌 사이사이의 틈을 비집고 나오는 생명의 기운이 뿜 뿜 한다. 

 

인향동으로 향하는 넓은 숲길은 바닥이 좋아서 그렇까? 발걸음이 가볍다.

 

인향동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인향동, 좌기동, 평지동을 합하여 무릉 2리라 부른다. 올레길은 11코스와 12코스를 걸으며 인향동 마을 회관, 좌기동 마을 회관, 평지동 마을 회관 인근을 차례대로 지난다. 커다란 나무가 마을에 진입하는 나그네를 포근하게 반겨준다. 커다란 나무를 잘 보존하고 있는 마을을 보면 늘 부럽다. 차 다니는데 불편하다고, 길 좁다고, 콩 더 심겠다고 마을 입구에 있던 나무를 댕강 잘라내는 마을에는 정이 붙지를 않는다.

 

조금 먼 거리에서 처음 보았을 때는 잘 정비된 잔디인 줄 알았다. 마을에 상수도가 공급되기 이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용수로 사용하던 구남물이라는 연못이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아서 인근 마을에서도 물을 뜨러 왔었다고 한다. 지금은 수생 식물이 가득하여 멀리서 보면 마치 잔디처럼 보인 것이다. 수생 식물 사이로 개구리나 물고기가 다녀간 길만이 이곳이 연못임을 알려주고 있다. 연못 중앙에는 배롱나무가 붉은 꽃을 뽐내고 있고 연못 주위로는 수령 3백 년을 자랑하는 팽나무들이 연못의 역사와 함께하고 있었다.

 

커다란 그늘을 만들어 마을 주민에게도 나그네에게도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팽나무도 삭막한 창고 벽면을 조금씩 채우고 있는 담쟁이덩굴도 마을의 품격을 높여주고 있는 주인공이다.

 

인향동 마을 회관 앞에 있는 커다란 팽나무가 마을 어르신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시는 느낌이다.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고 믿는 나무를 당산 나무라 하는데 육지에서 느티나무가 그 역할을 많이 하고 있다면 제주도와 남부 지방은 팽나무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올레길은 벽면에 아기자기한 장식들을 붙여놓은 무릉인향로를 따라 걷는다.  마을 중간에 있는 커다란 팽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무릉인향로 마을길을 따라 걷다 보면 동일리 해안으로 이어지는 도로인 대한로를 가로지르게 되는데 그곳에 반가운 식당이 있었다. 앞서 신평리에서는 마음에 끌렸던 식당이 문을 닫아서 식사를 못하고 삼각김밥으로 대신했었는데 올레길 11코스 종점을 눈앞에 둔 우리는 교차로에 있는 식당에서 넉넉한 휴식도 갖고 앞으로 걸어야 할 올레길 12코스를 위한 충전의 시간을 갖기로 했다.

 

평소에는 가격을 보고는 그냥 지나쳤겠지만, 앞으로 걸어갈 올레길 12코스를 위한 투자라 생각하고 "강 셰프의 키친"이라는 곳에서 식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단순하지만 알찬 메뉴 구성이 망설임 없이 식사를 결정한 매경이기도 했다. 값어치를 하는 식사였다.

 

주문했던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에 서빙된 반찬과 샐러드부터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기에 충분했다. 음식 하나하나 설명해주는 셰프의 모든 말을 기록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고속 랩 같은 그분의 설명 중에 기억 남는 것은 제주에서 나는 로컬 푸드라는 것이다. 보기에 따라 투박해 보일 수는 있지만 정갈하고 맛깔난 음식 하나하나는 재료 본연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맛이었다. 메인 메뉴가 나오기 전인데 벌써 만족도는 상한가다.

 

옆지기는 돌문어 돌솥 비빔밥과 몸국 정식, 나는 소고기 몸 짬뽕을 주문했는데 두 메뉴 모두 엄지 척이었다. 식사 이후 올레길 11코스를 마무리하고 12코스를 이어서 걸어야 하는데 30Km에 육박하는 올레길 걷기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었던 것은 맛있고 든든한 식사를 하면서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제주에 가면 또 먹고 싶은 식사였다. 사람들은 차를 몰고 찾아와야 하는 맛집인데 올레길을 걷다가 우연히 만났으니 이 또한 행운이었다. 여전히 입안 가득 군침이 돈다.

 

인향동을 지난 올레길 11코스는 무릉 5 거리에서 무릉리를 향해 이동한다.

 

무릉 5 거리를 지나면 얼마 동안 1136번 지방로인 중산간서로를 따라 걷는다.

 

예전에는 올레길 11코스의 종점인 무릉외갓집이 큰 길가에 있었지만 지금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 있다. 무릉 2리 마을 보물이라는 안내판이 세워진 곳을 감싸며 좌회전한다. 마을 보물에는 올레꾼들의 쉼터 역할을 하는 "보리수나무 그늘집"과 "무릉 생태 학교"가 있다.

 

무릉 2리로 좌회전하는 길에 만나는 커다란 무릉외갓집 안내판. 옛날 "무릉동국민학교" 표지석이 가리키는 대로 지금은 폐교에 자리 잡은 마을 기업이다. 가입한 회원들에게 한 달에 한번 꾸러미로 마을의 농산물이나 과일을 배송해 준다고 한다. 마을 사람이 중심이 되어 만든 안정적 농산물 판매와 소득 보장을 고민한 결과물이다. "문화 농장"이라는 이름답게 폐교에 자리한 무릉 외갓집은 지역 농산물을 판매하는 시장인 동시에 전시나 공연 공간으로도 활용된다고 한다.

 

4.3 위령비와 향상회 공덕비. 이곳 좌기동 마을 발전을 위해 조직한 향상회라는 모임에서 사진 뒤로 보이는 왕개 동산을 매입하여 마을에 기증한 것을 기념하는 공덕비이고, 4.3 당시 왕개 동산에서 희생당한 마을 청년 다섯 명을 기리는 위령비이다. 마을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많은 곳은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밖에 없음을 생각하게 하는 장소다.

 

초등학교 폐교 자리에 무릉외갓집의 모습이다. 복합 문화 농장이라는 마을 기업의 정체성이 매력적인 곳이다. 드디어 올레길 11코스를 마무리하고 12코스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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