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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파랑길 41코스부터 47코스까지를 4일 동안 걷는 여정의 시작은 강릉의 끝자락인 주문진 해수욕장이다. 금요일 오후에 집에서 출발하여 자동차 없이 오로지 두발과 배낭만으로 길을 이어가는 여정이다. 금요일 오후 아직 해가 있을 때 41코스 일부를 걸어 양양으로 넘어가 하룻밤 묵은 후 본격적으로 41코스 나머지와 42코스를 걷는 계획이다. 강릉 끝자락의 향호 호수를 한 바퀴 돌면 양양군 지경리를 지나 원포리에 이른다.

 

KTX를 타고 서울역으로 올라가 다시 서울역에서 강릉행 KTX 이음을 타고 강릉에 도착하여 강릉역 앞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타면 닿을 수 있는 주문진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강릉 시내버스를 타고 강릉역에서 주문진 해수욕장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했지만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내린 사람들은 우리 부부였다. 우리가 내린 "주문진 해변" 정류장 바로 다음이 강릉 시내버스의 종점인 "향호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문진 해변에서 걷기를 시작한 때는 오후 5시 15분을 가리키고 있는 시간이었다. 해변에서는 수련회를 온 것인지, 아니면 산악회에서 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한 그룹의 사람들이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구호도 외치고, 나름 신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듯했다. 혼자도 좋고 둘도 좋지만, 열댓 명의 그룹이 모여 마음을 모으는 것만큼 에너지가 넘치는 것을 어디서 또 찾을 수 있을까 싶다. 여행의 시작에서 만난 사람들의 에너지를 가슴에 품고 걷기를 시작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가 봄 해변의 낭만을 끌어올린다. 한주 동안의 일을 모두 잊고 이제는 해파랑길을 따라 그저 누리고 즐기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렇게, 해파랑길 41코스의 발걸음을 시작한다.

 

방탄소년단이 "You never walk alone"이라는 앨범 재킷을 촬영했던 곳이다. 앨범 표지에 등장하는 정류장의 모습으로 날이 흐리고 파도가 치니 더욱 감성적으로 보이는 듯한다.

 

주문진 해수욕장을 지나면 향호에서 나오는 물길을 따라 향호 둘레길 걷기를 시작한다. 향호라는 이름은 삼척시 근덕면의 맹방해변처럼 매향 풍습, 즉, 향으로 사용할 향나무를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 묻는 풍습에 기원한다. 

 

길은 7번 국도가 지나가는 다리 아래를 통과하여 이어진다. 향호 호수를 곁에 두고 나무들 사이를 걷는 호젓한 산책길이다.

 

향호도 경포호나 영랑호와 같은 동해안의 유명 호수들처럼 모래톱이 만을 막아서 생긴 석호다.

 

향호의 물이 동해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다리들과 향호 산책로를 감싸고 있는 나무들. 유명 관광지를 찾은 관광객들도 없고 동네에 살면서 산책 나온 주민들도 없는 호젓함을 제대로 누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호수와 바다는 그저 한가닥 모래톱으로 나누어져 있을 뿐인데, 향호를 보는 것과 바로 옆 동해를 보는 느낌은 너무도 다르다. 물의 색깔, 물의 흔들림, 물의 냄새조차 구별이 된다. 차이를 깨닫는 것에 깊은 통찰이 있고 넓은 아량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향호 주위를 돌아가는 길, 길은 아기자기하게 이어진다.

 

비에 젖은 향호 산책길은 데크길도 수초들도 아름답다. 작년 한창 자태를 뽐냈을 수초들을 정리해 놓으니 정말 깔끔했다. 사람 손이 가서 좋은 것은 이런 것 아닐까?

 

구름 가득한 흐린 하늘도 호수와 어울리니 한 폭의 수묵화 작품이다. 물과 묵으로만 만들어지는 수묵화 농담의 매력이 있다.

 

향호 산책길을 걷다가 호수변에 끝자락에 위치한 식당에서 넉넉한 저녁 식사를 했다. 이름도 독특한 "칠공주 불고기" 식당이다. 공사장에서 일하시다 오신 분들도 있었고, 동네 어르신들은 익숙하신 듯 알아서 반찬도 챙기시고 주인장과 적절한 소통도 하셨다. 식사도 좋았지만 반찬들이 맛있는 곳이었다. 시간과 장소가 맞아서 들어간 식당이었지만 지역 맛집이었다. 가격도 맛도 좋은 엄지 척 식당이었다.

 

식당 앞 소나무는 등나무 덩굴이 나무를 덮었다. 소나무와 등나무가 하나가 되어 연리지가 되었다는 사랑나무 이야기가 있는 것은 들어 보았지만 과연 저 나무들은 연리지가 될까? 아니면 하나가 덮어서 하나가 죽든지 아니면 하나가 포기할지...... 멀리 강릉 시내버스의 종점인 향호리 버스 정류장이 보인다.

 

향호리 버스 정류장을 지나면 향호 삼거리에서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통해서 7번 국도를 건넌다. 길을 건너면 좌회전하여 잠시 도로변을 걷는다.

 

도로변 길을 걷다 보면 강릉시에서 양양군 현남면으로 넘어간다.

 

"산 좋고 물 좋은 양양이라네!"라는 표지석 앞에서 크게 한번 웃었지만 양양 여행에 대한 기대를 갖는다. 양양 지경리 해수욕장으로 진입한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도 아름답지만 지경 해변을 가득 채운 오후의 구름은 아름다운 풍경화의 핵심 주인공이다.

 

아름다운 풍경이 가득한 양양 지경 해변 앞에서 옆지기는 파노라마로 한번 찍어봐! 한다. 아무리 좋은 기술도 직접 보는 것만큼의 감동을 담을 수 없는 것은 알지만 옆지기의 채근을 핑계 삼아 파노라마 컷을 한번 남겨 본다. 최고의 절경은 장소와 함께 시간이 만들어 내는 것 아닌가 싶다. 지경리에 있는 설화 모텔에서 하룻밤 쉬어간다.

 

다음날 아침 해파랑길의 매력인 동해로 떠오르는 은빛 햇살을 마주한다. 하늘이 쾌청하게 맑은 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파도 위로 비추는 은빛 햇살은 눈이 부실 정도로 강렬하다.

 

파도가 예쁘게 들어오는 해안을 따라 지경 해변을 지나 원포리 해변을 향해서 길을 이어간다.

 

해변에는 해당화가 새초롬하게 꽃을 피웠다. 장미과의 낙엽 관목이다. 열매를 약용으로도 식용으로도 사용할 수 있는 것에 늘 주변에 심고 싶은 나무라서 그런지 만나면 늘 반갑다.

 

지경 해변을 지나면 좌회전했다가 지경 사거리 앞에서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지경리와 붙어있는 양양군 현남면 지리 일원에는 초대형 복합 리조트가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리조트 공사가 없다면 쭉 직진해도 되겠지만, 리조트 공사 현장을 우회해서 원포리로 향한다.

 

다시 해변으로 나오니 원포 해변과 함께 멀리 남애항도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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