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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진항을 떠난 해파랑길 40코스는 주문진 등대를 향해서 언덕을 오른다. 언덕을 내려오면 오리진항과 소돌항을 거쳐 소돌 해변과 주문진 해변에 이르면서 40코스와 강릉 바우길 12구간을 마무리한다.

 

주문진 등대를 향해서 견치석으로 높이 쌓아 올린 석축 옹벽 길을 천천히 걸어 오른다. 개의 어금니를 닮아서 견치석이라 부르는 옹벽 재료는 전체적으로 보면 사각뿔 모양이다. 산소의 옹벽 쌓기는 이 정도 높이로 쌓지는 않는데, 높이 경사도를 극복하려니 힘든 공사도 극복했으리라......

 

길을 천천히 오르는데, 힘겹게 언덕을 오르시는 어르신을 한분 지나쳐야 했다. 가볍게 인사를 하며 지나치지만 뻘쭘한 분위기는 어쩔 수 없다. 등대로 가는 길에 그려진 벽화는 예쁘지만, 과연 이런 그림은 어르신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아름다운 청춘 시절을 떠올리실까? 아니면 "아이고, 남사 스러라. 저걸 어떻게 매일 본다나!" 하실까?

 

마을 언덕에서 바라본 주문진항의 모습. 

 

깔끔한 골목길로 그 옛날의 낭만을 느끼며 길을 이어간다. 건물벽도 담벼락도 깔끔하게 도색을 해놓은 마을이다. 등대 주위의 마을을 새뜰 마을이라고도 하는데 한국 전쟁 당시 피난민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라 한다. 전봇대에는 빨간색, 흰색 두줄 표시로 트레킹 경로임을 나타내고 있다.

 

시멘트 담장 위에 설치한 새 조형물이 멀리 수평선을 배경으로 나름의 멋을 뽐낸다. 어느덧 걷다 보면 주문진 등대 입구에 도착한다. 길은 등대를 지나 반대편 해안으로 내려간다.

 

일제 강점기 강원도 최초로 세워진 주문진 등대. 한국전쟁 때 파괴되었다가 1951년 다시 세워졌다.

 

주문진 등대에서 바라본 주문진항과 강릉항 방면의 전경이다. 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쉬어간다.

 

등대 공원에 있는 바다의 수호신이라는 작품과 바다의 멋이라는 작품.

 

해파랑길은 등대를 지나서 해안로로 내려간다. 등대 너머도 구릉이 집들로 가득하다.

 

해안로로 내려오면 해안로 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앞쪽으로는 작은 마을 어항인 오리진항이 있고 멀리로는 소돌항 방파제가 눈에 들어온다.

 

길은 소돌항 안쪽으로 들어간다. 원래는 우암진항으로 불렀는데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소돌항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우암이나 소돌이나 같은 의미로 마을 모양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이라고 소돌항이라 부른다. 

 

소돌항은 어민들이 잡아온 것을 관광객들에게 바로 판매하는 어항으로도 유명하지만 해안의 기암괴석과 그에 얽힌 이야기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름하여 아들바위 공원이다. 신라시대 전쟁에 나간 아들을 위해 기도하던 어머니가 전사한 아들 대신 아이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와 1990년대 아이가 없던 부부가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아들 바위에서 관계를 맺고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원래는 삼치가 많이 잡힌다고 삼치 바위였는데 1990년대 소문이 퍼지면서 아들 바위로 바꾸게 되었다고 한다. 공원에 세워진 파도라는 노래비도 있는데 5백 원 동전을 넣으면 노래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29세의 나이에 지병으로 생을 마감한 가수 배호의 "파도"라는 노래이다. "안개 낀 장충단 공원~~~"하는 노래의 주인공이다. https://youtu.be/ulqLiya2ekI 링크를 따라가면 파도라는 노래를 들을 수 있다. 분위기 있는 노래다.

 

부딪쳐서 깨어지는 물거품만 남기고
가버린 그 사람을 못 잊어 웁니다
파도는 영원한데 그런 사랑을
맺을 수도 있으련만
밀리는 파도처럼 내 사랑은 부서지고
물거품만 맴을 도네

그렇게도 그리운 정 파도 속에 남기고
지울 수 없는 사연 괴로워 웁니다
추억은 영원한데 그런 이별은
없을 수도 있으련만
울고픈 이 순간에 사무치는 괴로움에
파도만이 울고 가네

 

기암괴석들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는 소돌 해안 일주 산책로를 걷는다. 산책로는 소돌항 인근에서 시작하여 아들 바위 주위를 돌아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오지만, 해파랑길은 바다 전망대에서 소돌 해변으로 빠져나간다.

 

해안은 온통 기암괴석들의 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가끔씩 보이는 인공 구조물들이 오히려 경관을 해치는 형국이다.

 

투구 같기도 하고 맹수의 얼굴 같기도 한 암석들은 어떤 유명 조각가가 내가 만든 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감탄이 절로 나왔다. 파도와 바람과 비가 깎아놓은 환상적인 작품들이다.

 

소돌 해안 산책로는 평일이었음에도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소돌 해안 산책로의 마지막은 바다 전망대로 아들 바위 공원을 내려다보는 뷰도 좋고 소돌 해변과 주문진 해수욕장을 바라보는 뷰도 훌륭했다.

 

북쪽으로는 주문진 해수욕장을 지나 멀리 양양 해변으로 이어진다. 하얀 모래사장, 낮은 곳의 바다 색, 깊은 곳의 바다 색이 다르다. 아름다운 바다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아들 바위 공원의 모습이다. 해안 바위의 훼손을 막겠다고 설치한 방파제가 인간의 조바심을 보여주는 것 같아 못내 아쉽다.

 

소돌해변과 주문진 해변은 서로 이어져 있는 해변이다. 바다 전망대를 내려와 소돌 해변을 걷는데 인도 바로 옆에 캠핑카를 세워놓고 한창 점심 식사 중인 중년 부부가 있었다. 스쳐가면서 본 그들의 점심 메뉴는 생선회였다. 가볍게 인사를 하면서 지나치는데 드시고 가라고 성화시다. 집에 가야 할 일정도 있고, 생면부지 사람들이 하는 식사 자리에 얼싸구나 하면서 앉을 일은 아니었다.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거리가 상당히 떨어진 상태에서도 오라고 계속 손짓하는 그분들을 보며, 인생 이야기 나누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그분들의 마음은 공감이 되었다.

 

40코스의 종점인 주문진 해변에 들어섰다. 주문진의 주문은 물건을 주문하다고 할 때 사용하는 주문과 같은 한자로 실제 주문진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물품을 주문받아 운반하는 나루터"라는 의미라고 한다. 일제 강점기 부산에서 원산으로 가는 중간 기착지로 개발된 항구였다.

 

주문진 해수욕장 안내판에는 관동 8경이 아닌 강릉 8경을 안내하고 있다. 오죽헌, 경포대, 강릉 단오제, 소금강, 정동진역 해돋이, 선교장, 대관령 자연 휴양림, 경포 도립공원으로 1997년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공모 결과로 선정한 것이다. 강릉 걷기를 끝내는 지점에서 강릉 8경을 돌아보게 된다. 경포대, 강릉 단오제, 정동진역 해돋이, 경포 도립공원은 해파랑길에서 지나왔던 장소들이다. 

 

여름이면 사람들로 북적일 주문진 해변은 아직은 고요하다. 

 

해파랑길 40코스는 "추억과 낭만이 있는 곳" 주문진 해수욕장 중간에서 끝나고 41코스가 시작된다. 강릉 바우길 12구간도 여기에서 마무리된다. 이번 여정 마지막 스탬프를 찍고 이제 집으로 향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리가 택한 방법은 시내버스를 타고 강릉역으로 이동하여 KTX를 타는 것이다. 스탬프 함이 있는 곳에서 해안 반대 방향으로 쭉 나오면 넓은 주차장을 지나서 "주문진 해변" 버스 정류장에서 시내버스를 탈 수 있다. 문제는 강릉역에서 주문진 해변으로 올 때는 직통으로 바로 오는 버스들이 많다. 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위의 사진처럼 300, 302, 314번 버스를 타면 환승 없이 주문진 해변에 올 수 있다. 다음 여행 때는 그렇게 41코스를 시작하면 된다. 그런데 같은 버스가 강릉역 방향으로 갈 때는 경로가 달라져서 환승을 하거나, 인근 정류장에서 내려 도보로 이동해야만 한다. 우리는 강릉역에서 약 900미터 떨어져 있는 "롯데캐슬 아파트" 정류장에서 하차하여 천천히 걸어가기로 했다. 시내버스에서 기차표를 예매했는데 시간 여유가 많았다.

 

"롯데캐슬 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린 우리는 강릉역으로 이동하다가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빵순이 옆지기는 지친 발걸음에도 신이 나서 제과점에 다녀왔다. 우리 부부는 무인 주문기가 설치된 밥집에서 고기 한상 거나하게 먹었다. 

 

얼마나 거나하게 먹었는지 강릉역까지 걸어도 배는 꺼질 기미가 없었다. 기차에서 노곤하게 편안한 휴식을 누리며 집으로 가기에 딱 알맞을 만큼이었다. 강릉역은 다른 역과 달리 열차 출발 시간이 다 되어야 플랫폼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고 그 전에는 플랫폼으로 갈 수 없었다. 당연히 플랫폼 밖 역사에서 기다려야 했다. KTX로 오가는 해파랑길은 몸이 확실히 편하기는 하다. 이제 41에서 50코스까지 딱 10개 코스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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