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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의 계획은 도구 해수욕장까지만 걷고 시내로 빠져서 포항역으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예약해 놓은 기차 시간까지 시간 여유도 있었고 무엇보다 Go/Stop의 결정권을 가진 옆지기가 "Go"를 외친 덕택에 해파랑길이 본격적으로 시내 구간을 걷는 부분까지 더 걷기로 했다. "해병대 BOQ" 버스 정류장까지 걸었는데 저녁 시간이었지만 청림동 길을 걷지 않았다면 후회할 뻔했다. 이후 송도 해수욕장까지 걷는 16코스 나머지 시내 걷기 부분은 생략했다.

 

도구 해수욕장 이후에는 모래 언덕 위에 조성된 데크길을 통해 길을 이어간다. 해병대 상륙훈련장 방향으로 길을 이어간다.

 

해병대 상륙훈련장 방면으로 가는 산책로는 늦은 시간이나 훈련이 있을 경우에는 폐쇄된다. 이런 경우에는 시내 길을 통해 돌아가야 하는데 다행히 우리가 지나가는 시간에는 훈련이 없었다. 커다란 장갑차가 오가는 훈련이 있으면 위험할 텐데 훈련이 없을 때 이렇게 개방해 주는 것만도 고마울 뿐이다. 군 시절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걸어본다.

 

모래 언덕 경사면에는 소나무들이 자라고 있고 산책길은 언덕 위를 걷는다.

 

모래 언덕 위로 깔끔하게 조성된 산책길을 걷는다. 바다 쪽으로도 육지 방향으로도 막힌 없는 뷰를 가진 산책길이다.

 

세월이 더 흘러서 이 소나무들의 키가 훌쩍 커지면 숲이 울창해서 바다 풍경을 혹시 못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소나무 너머의 푸른 바다를 감상하면서 걸을 수 있다. 이곳에서 군 생활을 하던 추억 중에 하나는 여름철 이 해변에 모든 부대들이 나와서 조개 잡기 대회를 했던 기억이다. 허리 정도의 깊이만 들어가도 발을 디딘 모래 바닥이 울렁울렁 저절로 움직일 정도 조개가 많았었다. 얼마 후에는 물이 오염되어 입수가 금지되어 다른 지역으로 훈련을 받았었다.

 

아련한 군시절 추억을 뒤로하고 길을 이어간다.

 

산책로 한쪽으로는 비닐하우스가 많이 설치되어 있는데 겨울이 제철인 시금치의 여왕이라는 포항초를 재배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군 시절 추억을 떠올리면 이곳을 지날 때면 모래밭에 키우는 부추밭을 많이 지나야 했었다. 과메기와 함께 포항초 시금치와 부추는 포항의 대표적인 특산물이다.

 

모래사장과 바다 너머 멀리 호미곶의 끝자락이 아물 아물거린다. 저 길을 뚜벅뚜벅 걸어왔다 생각하니 스스로를 토닥토닥해줄 만하다.

 

모래 언덕 위 산책길에 이르면 만나게 되는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 안내판. 안내판에서는 해파랑길 15, 16코스가 내륙으로 표시되어 있지만 현재는 해파랑길과 대부분 길을 같이 가기 때문에 해파랑길 13, 14, 15, 16 코스를 걸으면 장기면 두원리에서 이곳 청림동까지 이어지는 호미반도 해안 둘레길을 자연스럽게 모두 걷게 된다.

 

시내길로 나오면 청림 운동장을 거쳐서 31번 국도를 만날 때까지 직진하면 된다. 하루를 마감하는 태양이 이번 여행을 마무리하는 우리들을 격려하는 듯하다.

 

포항역으로 이동하기 전에 가는 길에 만난 백반집에서 고등어 추어탕과 생선구이로 이른 저녁을 넉넉하게 챙겨 먹었다. 필자는 처음 먹어보는 것이었는데 나름 먹을만했다. 고등어 살을 가지고 얼큰하게 끓이는데 추어탕에 넣는 산초 가루를 추가하면 비린내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고등어 통조림으로 끓이는 레시피도 있고, 부산 한 음식점에서는 해장국으로 4천에 파는 서민적인 음식이다. 이곳에서도 고등어 추어탕의 가격은 저렴했다. 

 

31번 국도를 만나면 우회전하여 도로변을 따라 걷는다. "청포도와 칭찬의 고장 청림동"이라는 마을 안내판이 이채롭다. 냉천은 오천읍 진전 저수지에 발원하여 우리가 지나온 산책로 끝자락 근처 바다로 흘러 나가는 하천으로 한때는 오염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정비 사업과 복원 노력으로 최근에는 바다 물고기 황어도 관찰되고 수달도 관찰되었다고 한다.

 

이런 세상에! 포도나무가 가로수인 도시는 처음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 가는 시절......" 고등교육을 받은 웬만한 한국인이라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시 구절이 아닌가 싶다. 이육사 선생이 일제 탄압을 피해 송도에 내려와 사셨을 때 이곳 청림동과 도구리로 이어지는 넓은 포도밭을 보고 시를 지었다는 것이고 그것을 배경으로 청포도 길을 조성한 것이다. 이육사 청포도 문화 축제도 개최한다고 한다. 베니 베라드라는 품종은 홍포도인데 길을 따라가면서 다양한 품종을 심어 놓았다.

 

길 건너에는 해군 6 항공 전단 항공 역사관과 몰개월 비행기 전시장이 있다. 역사관이야 건물 내부지만 위의 그림처럼 몰개월 비행기 전시장은 도로변에서 누구나 쉽게 관람할 수 있도록 항공기들을 전시해 놓았다. "몰개월"은 이 근방에 있던 동네 이름으로 1960년대 월남 파병을 위해 군인들을 훈련시키던 장소라고 한다. 전쟁의 상흔이 스며있는 곳이다.

 

우앙! 12월 한겨울에 청포도가 매달려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포도나무 가로수길은 신박하다. 이쯤에서 이육사의 "청포도"를 다시 한번 읽어야 하지 않겠는가! 다시 읽어도 정말 아름다우면서도 광복을 고대하는 시인의 마음이 가슴으로 전해져 오는 시이다.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

이 마을 전설이 주저리주저리 열리고
먼 데 하늘이 꿈꾸며 알알이 들어와 박혀

하늘 밑 푸른 바다가 가슴을 열고
흰 돛단배가 곱게 밀려서 오면

내가 바라는 손님은 고달픈 몸으로
청포를 입고 찾아온다고 했으니,

내 그를 맞아, 이 포도를 따 먹으면
두 손은 함뿍 적셔도 좋으련.

아이야, 우리 식탁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 수건을 마련해 두렴

 

초가지붕이 얹어진 집은 이육사 선생의 생가는 아니고 청포도 테마 거리의 일부로 벽화와 함께 조성해 놓은 장소다. 선생의 생가는 안동에 있다. 선생의 본명은 이원록으로 대구 형무소 수감 당시 수인번호 264가 필명을 짓게 된 동기가 되었다고 한다. 수차례의 투옥 끝에 해방을 보시지 못하고 1944년 감옥에서 생을 다했다고 한다.

 

"해병대 BOQ" 버스 정류장에서 9000번 급행 버스를 타면 포항역까지 바로 갈 수 있다. 도구 해수욕장에서 걷기를 멈추고 청포도 테마길을 걷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큰길 도로변을 걷는 길이지만 정말 좋은 길이었다.

 

버스를 타고 형산강 다리를 건너면서 바라본 포스코 공장들의 조명. LED 조명의 모습이 화려하면서도 퇴근길 집으로 돌아가는 직장인의 느낌이 들면서 한편으로는 이곳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애환도 생각하게 한다. 포스코와 포항시는 2016년부터 최근까지 6Km가 넘는 세계 최장의 야간 조명을 설치했다고 한다. 해가 지면 매시각 정각에 3만 개의 LED 조명으로 다양한 색상의 불빛쇼를 연출한다. 이렇게 이번 걷기 여행도 안전하게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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