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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 Annapurna Base Camp, 4,130m)에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Machhapuchhre Base Camp, 3,700m)를 거쳐 데우랄리(Deurali, 3,230m)까지 다시 돌아가는 길은 6.5Km에 이르는 길로 완만한 오르막이었던 것만큼 걷기에는 정말 좋았습니다. 가파른 계단 걷기였다면 힘들었을 텐데 완만한 내리막이다 보니 지면에서 발만 떼면 중력의 힘으로 저절로 발이 앞으로 가는 경쾌한 길이었습니다. 당연히 속도도 빨랐습니다. 올라가는데 5시간이었지만 내려오는데 3시간이었으니 거북이걸음 치고도 빠른 편이었습니다.

 

정오를 조금 지난 시간에 하산을 시작한 저희는 어제저녁부터 복통과 설사로 속도 좋지 않았고 하산 길의 걷기 속도가 빠른 상태여서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MBC, Machhapuchhre Base Camp, 3,700m)에서의 간식이나 점심 식사도 건너뛰고 데우랄리를 향해서 끊임없이 걸었습니다. 이제 큰 목표는 달성했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가는 것만 남았다는 성취감이 좋지 않은 몸 컨디션에도 불구하고 다리가 풀려 터덜터덜이나마 걸어 내려갈 수 있게 한 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가는 길에 자주 만난 이름 모를 풀이 하나 있었는데 잎모양은 민들레처럼 약하게 생겼어도 잎 하나가 스틱 무게를 견딜 정도로 튼튼했습니다. 큰일을 끝냈다! 하는 마음의 여유가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합니다. 

 

데우랄리 근처에 도착하니 새로운 산장을 짓는 모습도 눈에 들어옵니다. 올라갈 때는 그저 발걸음을 옮기는 것에 여념이 없었는데 하산길에서는 이들이 어떻게 산장을 짓는지도 유심히 바라보게 됩니다. 역시 주 재료는 산에 지천인 돌이고 우리나라에서 샌드위치 패널로 창고나 전원주택을 짓는 방식과 비슷하게 쇠기둥으로 주요 골조를 세우고 나머지를 채워가는 방식이었습니다. 

 

드디어 언덕 아래로 데우랄리 산장이 보입니다. 산장 앞 빨랫줄에는 저희가 아침에 널어놓았던 빨래도 보입니다. 뱀부 산장에서 빨래를 했었지만 오후면 밀려오는 오는 안개 때문에 빨래가 잘 마르지 않았었습니다. 빨래한 지 3일째 되는 오늘 아침에는 산장 앞마당에 있는 빨랫줄에 널고 ABC로 출발했었던 것입니다. 빨래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고 무사해서 다행이었고 오전에 햇빛을 보았는지 거의 다 말랐더군요. 데우랄리 위쪽으로는 이제 안녕입니다.

저희가 산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후 3시 정도였는데, 미국의 유명 흑인 배우인 모건 프리먼을 닮은 주인아저씨는 중국인 커플과 방이 있니 없니 하며 한참 실랑이 중이었습니다. 오늘 아침 숙소를 떠날 때 단체 손님 예약 때문에 방을 비워야 한다고 하시더구먼 빈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분들하고 볼일을 끝낸 주인장에게 다녀왔다고 말씀드리니 안나푸르나를 보았냐고, 뷰가 어떤지 등을 물으시더니 데스크 바로 옆에 있는 쪽방을 내주었습니다. 데스크가 식당 하고 같이 있으니 저녁 내내 사람들의 시끌벅적한 소리를 들어야 하는 그런 방이었습니다. 그 방을 처음 안내받았을 때는 헉! 어떻게 이런 곳에서 쉬지? 했지만 생각을 바꾸어 보면 미리 말씀드린 덕택에 그런 방이라도 남겨 놓으셨다가 내어 주신 것도 고마운 일이었고 식당과 붙어 있어 시끄럽기는 해도 다른 방보다 덜 추운 장점도 있었습니다. 방이 없어 히말라야 쪽으로 내려가는 중국인 커플 입장에서 저희를 보면 마치 새치기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아침에 보니 방이 없어 식당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곳에 있는 많은 산장들은 식당 벽 쪽으로 한 사람이 누워 잘 수 공간을 아예 만들어 놓고 있기 때문에 시끄럽고 프라이버시가 없는 단점에도 불구하고 산장에서 방을 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식당에서 자는 것도 방법입니다. 한국에서 여행 계획을 할 때는 방이 없으면 식당에서 잔다 길래 식당 의자에 쭈그려 앉아 자는 건가? 하는 의문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불편하기는 하지만 잘 공간도 있고 이불도 제공되는 것입니다.  

 

아침 출발 당시 데스크에 맡겨놓은 배낭을 받아서 짐도 정리하고 빨래도 걷고, 내일 하산을 위한 물도 정수제로 준비해 놓았습니다. 저희는 매일 500ml 보다 약간 큰 용기로 3개씩 물을 받아서 정수제를 넣어 식수를 마련했었습니다. 어제저녁부터 복통과 설사로 고생한 원인이 뱀부 도착 직전에 길가에서 정수하지 않은 물을 마신 것이라는 데로 둘의 의견이 모아지니 물을 준비하는데 더 마음이 가더군요. 하산길에서는 물이 떨어지더라도 길가로 흐르는 물은 절대로 마시지 않겠노라고 다짐을 했습니다.  

오후 5시가 조금 안 되는 시간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는데 팬케이크에 꿀을 뿌려 먹는 것이 의외로 먹을만했습니다(340루피). 프라이드 포테이토(440 루피)를 시켰는데 기대하기는 소금기 있는 프렌치프라이를 기대했던 것인데 나온 것은 현지 감자를 튀긴 것에 케첩을 범벅한 것이었습니다. 추워하는 옆지기를 위해 핫 초코(130 루피)와 함께 먹었는데 결국 감자는 남겨서 나중에 길에 돌아다니는 견공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어제의 설사의 여파인지 여전히 입맛이 없었습니다. 

저희가 식사를 끝내고 이불속에 넣을 뜨거운 물(140 루피)을 받아 아주 일찍 잠자리에 들어가니 문 밖으로는 저녁 시간을 맞아서 시끌시끌했고 어떤 사람은 문 밖에서 방문을 열어 보려고 하더군요. 식당 내부에 딸린 방이고 데스크 바로 옆이니 데스크에 오는 사람마다 호기심이 생길 만도 했습니다. 내부의 걸쇠 위치도 알고 자기들끼리 장난스럽게 나누는 대화의 내용이 그리 기분 좋은 소리는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얼마간 뒤척거리다가 잠이 들었는데 몸이 피곤하니 그런 상황에서도 나름 잘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에도 입맛은 되살아 나지 않아서 주인장에게 쌀죽(400 루피)을 부탁해서 둘이서 쌀죽 한 그릇으로 아주 가볍게 요기만 하고 데우랄리의 샹그릴라 게스트 하우스를 출발했습니다. 둘이서 이틀을 묵는데 3,080루피였으니 주인장 입장에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고객이었을 것입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으니 하는 수가 없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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