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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트레킹을 계획하면서 뱀부에서도 데우랄리에서도 숙소를 잡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군데 모두 하루에 걷는 거리를 길지 않게 조절하고 아침 일찍 출발하는 방법으로 오후 2시 이전에 산장에 도착하다 보니 무리 없이 숙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저희가 묵은 숙소는 샹그릴라 게스트 하우스(Shangrila Guest House)로 미국의 흑인 배우를 닮은 인상 좋은 아저씨가 주인장이었습니다. 이틀 밤을 묵어도 되냐고 했더니 문제없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는 내일 산장에 배낭을 놓고 빈 몸으로 ABC까지 다녀올 계획이었기 때문입니다. 미리 이틀 밤을 묵겠다고 말씀드려서 다행이었지만 다음날 아침에 아저씨에게 가니 단체 손님 때문에 방을 옮겨야 한다고 하더군요. 부랴 부랴 짐을 싸서 데스크에 배낭을 맡기고 출발했다는......
주인장 아저씨는 아무리 생각해도 미국의 유명한 흑인 배우인 모건 프리먼을 닮은듯 합니다. 마치 히말라야의 대부 인양 산장을 지나거나 묶는 가이드와 포터들은 아저씨에게 존경의 인사를 했습니다. 저희가 속이 좋지 않아 음식을 많이 시키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 첫날 정산 때는 표정이 별로 좋지 않으셨지만 쌀죽을 끓여줄 수 있냐고 요청하니 메뉴에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선뜻 내오셨습니다.
방을 잡고 짐을 풀고 나니 옆지기는 바로 침대행입니다. 옆지기는 촘롱이후로는 씻는 것 하고는 담을 쌓았습니다. 고지대에서는 샤워를 자제하라고는 하지만 몸에 밴 땀과 함께 침대에 눕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마뜩잖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찬물 사워를 감행했는데 정말 오싹했습니다. 찬물이 몸에 뿌려지면서 몸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오르고 입에서는 어후 어후 하는 신음이 절로 절로 나오더군요. 그래도 일단, 사워를 하고 나니 상쾌하게 쉴 수 있었습니다.
뱀부에서 손빨래하고 미처 마르지 않은 빨래들을 빨랫줄에 널었지만 오후 2시라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산장 주변을 감싸고 있는 안개 때문에 잘 마를 것이라는 기대는 어렵더군요. 결국 빨래는 다음날 아침 다시 볕이 잘들 가능성이 높은 곳에 널고 ABC를 다녀와야 했습니다. 빨래를 널고 산장 주위를 돌아다녀 보니 여전히 MBC를 목표로 계속 걸어 가시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산장 바로 옆은 모디 계곡(Modi Khola)이라 계곡의 물소리가 들리는 산장이었습니다.
산장에 일찍 도착해서 다른 외국인들은 맥주도 마시고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시간을 갖지만, 저희 둘은 바로 침대행이었습니다. 뜨거운 물을 받아다가 침낭과 이불속에 넣어 옆지기가 잠을 잘 잘 수 있도록 했지만 고도가 높아질수록 난방이 없는 산장의 추위는 혹독했습니다. 그나마 산장에서 주는 이불이 두꺼운 것이라 다행이었습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들은 추위를 잘 대비해야 합니다. 이른 시간부터 누워 쉬다가 저녁 시간이 되었는데 이때부터 속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음식도 잘 먹고 물도 정수제를 통해서 안심하고 잘 마셨는데 복통과 함께 설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것이 고산병 증세인가? 하며 당황스러웠지만 준비해 간 정로환을 먹고 하룻밤 자고 나니 나름 진정되었습니다. 문제는 다음날 같은 현상이 옆지기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것도 한참 걷는 중에 설사를 했으니 사람이 많은 구간이었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난감한 상황일뻔한 상황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거의 없을 때 조용한 장소를 찾아 해결해서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둘이서 공통적으로 발생한 상황을 고도차나 고산병으로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고, 설사의 원인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의심 가는 것은 바로 물이었습니다. 어제 촘롱에서 뱀부로 오는 길에 뱀부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 촘롱에서 준비한 물이 모두 떨어진 상태가 되었는데 길가로 샘물처럼 흘러나오는 물을 마신 것입니다. 파이프를 통해 나오는 물이라 깨끗하겠지! 하고 마신 것이 실수였던 것입니다.
저녁을 먹어야 하는데 필자는 복통에 설사이고 옆지기는 오는 길에 히말라야 산장에서 먹은 간식 덕택에 시장기도 없다고 해서 저녁은 건너뛰기로 했습니다. 산장은 숙박비보다는 식당 운영으로 돈을 버는데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았으니 다음날 아침 정산하는 아저씨의 표정이 좋지 않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데우랄리 산장에서의 기억은 찬물 샤워의 아찔함과 안갯속에서 빨래 널기, 복통과 설사가 준 혼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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