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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카라의 바그룽 버스 터미널(Baglung bus station)에서 첫차를 타고 나야풀(Naya Pul)에서 버스를 내리니 오전 8시가 되었습니다. 거의 2시간 30분이 걸린 셈입니다. ABC, MBC, 푼힐, 간드룩 트레킹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보니 이제 히말라야 트레킹이 시작되는구나 하는 실감이 납니다.
저 멀리 산과 논, 밭이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 우리가 저길 을 가야 하는구나! 하며 잠시 마음을 가다듬어 봅니다.
나야풀 버스 정류장에는 음식점들이 몇 개 있었는데, 한 식당에 들어가 라면이 있냐고 물으니 있다고 해서 계란이 있는 라면을 시켰는데 계란을 같이 끓인 것이 아니라 프라이를 해서 얹어 놓았더군요. 아무튼 한국 라면 맛은 어디 가나 마찬가지이지만 가격은 하나에 400루피로 결코 싼 가격은 아니지요. 두 개 시켜서 일단 아침을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라면을 주문한 다음부터 식당을 떠날 때까지 주인장 아주머니와의 흥정 아닌 흥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지프 가격이 얼마냐는 질문으로 시작된 흥정은 지프 한대를 통째로 빌릴 때 4,000 루피에서 시작한 가격은 다른 사람과 함께 지프를 이용할 때의 가격으로 이어지고 2,000루피까지 떨어진 가격에도 옆지기가 그냥 걸어 올라가자고 하니 주인장이 눈치를 보더니 1시간 후면 버스가 오니 버스를 타라고 합니다. 결국은 포기한 것 같이 보이던 주인장이 얼마 후에는 간드룩 가는 버스가 방금 지나갔다고 하네요.
푼힐 전망대로 가는 갈림길인 비렌탄티 방향으로 걷습니다.
나야풀에서 비렌탄티로 가는 길은 흙바닥의 시장통이었습니다.
비렌탄티로 가는 시장길은 크고 작은 가게들이 즐비한 우리네 시골 시장과 다를 바가 없었지만 닭과 개가 유유자적 걸어 다니는 풍경은 이곳만의 독특함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얼마간 걷다 보니 멀리서 버스 한 대가 멈춰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이왕 가는 것 버스가 그곳까지 가기만 한다면 계획에 없던 일이지만 버스를 타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빠른 걸음으로 버스로 달려가서 간드룩으로 가냐고 물어보니 나이 들어 보이는 차장 아저씨가 맞다고 해서 올타꾸나하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식당 아주머니는 버스가 지나갔다고 했지만 그 버스를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다니,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습니다. 이미 포카라에서 나야풀까지 로컬 버스를 타고 이동했던 경험 때문에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지만 간드룩으로 올라가는 이 버스는 또 다른 경험을 예고하고 있었습니다. 버스비는 나중에 차장 아저씨가 탄 곳과 내릴 곳을 감안해서 달라고 하는 대로 주면 됩니다. 나야풀에서 간드룩까지는 1인당 300루피씩 받았습니다. 간드룩에 거의 다 도착할 무렵에 비용을 받았습니다.
저희가 버스를 올라탄 이후에도 버스는 시장 입구에서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 물건을 구매해서 간드룩 이후로 아마도 산장들에게까지 공급하는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간드룩으로 가는 버스에는 사람만큼이나 많은 물건이 실렸습니다. 감자를 비롯해서 사육용 병아리와 병아리 사료, 가게에서 팔 물건들 등 품목도 다양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사람은 타지 않고 물건만 실어서 차장에 약속한 곳에 물건을 내려주기도 했습니다.
오전 8시 40분 조금 넘어서 출발한 간드룩행 버스는 거의 두 시간이 걸려서 간드룩에 도착했지만 버스가 산을 오르는 과정에서 차장 아저씨는 거의 문에 매달려서 짐을 싣거나 내렸고 가끔은 버스비도 받는 등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포장되지 않은 좁은 길을 올라가려니 반대편에서 차가 내려오면 눈치껏 비껴 주거나 했는데 지프들이라고 예외가 아니기 때문에 지프로 올라가나 버스로 올라가나 시간은 별 차이가 없어 보였습니다.
버스를 타면 나야풀에서 얼마 가지 않아 다리를 건너서 교차로인 비렌탄티에 이릅니다. 이곳에 팀스와 ACAP를 검사하는 체크포인트가 있지만 차장 아저씨가 마치 가이드들이 하듯 저희의 TIMS와 ACAP를 받아가셔서 알아서 도장을 받아다 줍니다. 편하게 앉아 있으면 되니 고맙더군요.
버스를 타기로 선택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등산 경로가 대부분 비포장 도로와 겹치기 때문에 오가는 많은 차들과 공사 현장을 거쳐서 걷는 것은 하지 않기를 정말 잘한 것이었습니다. 대신 버스 차창을 통해서 보는 나름의 풍경도 있었고 무엇보다 시간을 당겨서 하루를 절약하여 이후 산행에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간드룩까지는 시간만 맞다면 차량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차창 밖으로 들어오는 계단식 논들과 비탈에 자리한 집들의 풍경은 탄성을 자아내게 했습니다. 물론 이후에는 워낙 많이 보기 때문에 감흥이 조금 떨어지기는 하지만 아름답고, 신기한 풍경입니다.
버스가 간드룩에 도착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흰 눈을 쓰고 있는 안나푸르나의 압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저곳 아래에 있는 ABC까지 가는 일정이 설렘으로 다가옵니다.
간드룩 버스 터미널의 모습입니다. 중간에 브레이크 문제로 얼마간 멈추어 서서 급한 수리를 하기도 하면서 공사현장을 지나 절벽을 타고 버스가 올라온 간드룩은 고원 지대처럼 넓게 펼쳐져 있었습니다. 한쪽으로는 짐을 나르는 당나귀들이 쉬고 있었고 고도 2천 미터 가량의 언덕에는 많은 집들과 산장들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원래의 계획은 나야풀에서 걸어서 이곳까지 와서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어 가는 것이었는데 간드룩 도착 시간이 10시 45분 정도이니 이곳에서 하루를 보내기는 아깝고 일정을 하루씩 당겨서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오늘 촘롱을 목표로 걷는 것이지요. 야간 버스에 두 시간이 넘는 두 번의 로컬 버스로 많이 피곤할 줄 알았는데 맑은 날씨가 저희를 응원해서 그런지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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