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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장 22Km가 넘는 산티아고 순례길 첫째날 걷기를 끝내고 드디어 포르토마린에 입성 합니다. 시내에서 포르토마린 산 쥬앙 교회와 내일을 위한 물품 구입을 위해서 슈퍼에 들러 숙소를 향합니다.
구름이 많기는 하지만 선선한 바람이 부는 7월의 산티아고 순례길은 20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걸은 피곤함도 잊게 만들 정도의 풍경을 선사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포르토마린 시내로 이끌어 갑니다. 한참을 멍하니 쳐다보아도 좋을 노바 다리(New Bridge and Bridge Vella)와 언덕위 포르토마린 시내의 전경입니다.
미뇨강(río Miño)이자 벨레사 저수지(Encoro de Belesar)에 놓인 다리를 건넙니다. 미뇨강 유역에 댐을 건설하면서 생긴 인공 호수이니 미뇨강도 맞고 벨레사 저수지도 맞는 것이지요. 갈림길에서 반대편으로 걸었던 분들은 도로를 따라서 건너편으로 내려 오게 됩니다.
드디어 노바 다리(New Bridge and Bridge Vella)를 건넙니다.
노바 다리에서 바라본 강변의 모습. 바위 위에 쌓아 올린 돌담과 절벽에 자리한 나무들이 아슬 아슬 아찔 합니다. 저희가 내려온 언덕쪽 방향의 풍경입니다.
다리 위에서 바라본 저수지의 모습. 댐이 아니었다면 미뇨강은 이렇게 수량이 많은 강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수지 때문에 수몰된 것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 결과로 이곳 사람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삶의 방식도 있겠지요.
걷기를 하는 순례자들은 사진에 보이는 계단을 오르면 포르토마린 시내로 진입하게 됩니다.
아치형의 입구를 지나서 계단과 언덕길을 오르면 언덕위에 위치한 포르토마린 시내에 이르게 됩니다.
포르토마린(Portomarín) 상징물 앞에서 한컷을 남깁니다. 상징물 뒤로는 삼각형의 공간에 작은 공원이 하나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목적지인 포르토마린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오르막 언덕길로 이루어진 포르토마린은 허접한 체력을 가진 중년 부부의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난간에 새겨진 순례길 표식은 이곳이 순례자의 도시라해도 무방하다 할 정도임을 말해 주는듯 합니다. 그런데 언덕길을 오르며 1960년대에 댐이 생기면서 수몰될 집과 성당을 이곳 언덕 위로 벽돌 채 옮겨올 당시 이 곳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댐 건설로 정든 내집을 두고 이주하는 사례들을 종종 보기는 했지만 이곳처럼 벽돌채 옮겨 오지는 않았죠. 로마당시에 만들어져 중세에 재건축된 다리는 물에 잠긴채 있기는 하지만 갈수기에는 그 모습을 드러내곤 하니 그 존재감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구요. 집을 높은 언덕으로 옮겨 오기는 했지만 끊임없이 몰려오는 순례자들은 그대로이니 그들의 삶에 큰 차이가 없었을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합니다.
길을 오르다 보니 포르토마린 산 쥬앙 교회(Igrexa de San Xoán de Portomarín)의 측면을 만납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흔치 않은 건물로 교회와 성곽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는 포르토마린 산 쥬앙 교회(Igrexa de San Xoán de Portomarín) 입니다.
교회 상단은 마치 성곽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댐이 생기면서 수몰될 마을의 집들과 함께 교회를 벽돌 단위로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합니다. 교회 앞 광장 주변으로는 목적지에 도착한 사람들의 생기 있는 휴식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해냈다! 하는 기쁨과 흥분을 쉽게 목격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그중에 기억나는 한 일행은 어머니와 장성한 아들로 보이는 일행으로 광장 주변에 배낭을 내려 놓고 저희처럼 바게트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로 요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즉석에서 토마토를 잘라 샌드위치에 넣고 맛있게 먹는 두분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와 비슷한 여행 모습에 동지감을 느낀 부분도 있었고 내일 부터는 토마토를 샌드위치에 넣어야 겠다는 생각도 했었지요.
야고보 사도의 조각상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내려 가면 순례길을 따라 걸어 갈 수 있습니다.
포르토마린 시내의 모습을 보면 이층집, 삼층집들이 연달아 붙어 있게 집을 지으면서 아래에 기둥이 세워진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페즈 바스케스라는 이름이 많은데 이 사람은 D. BENIGNO QUIROGA 로페즈 바스케스(López-Vázquez)로 스페인 전력회사 FENOSA의 엔지니어로 성당을 계곡 아래에서 언덕 위까지 이전하는데 기여했던 인물인 모양입니다. 새로운 포르토마린 마을 생성에 핵심 역할을 했던 인물인 것이지요. 자료를 찾아보니 1963년 당시 댐 건설로 인한 마을 이주와 관련하여 전력 회사 페노사(FENOSA)와 마을 사람들간에 많은 갈등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관리 감독이었던 로페즈 바스케스가 많은 집들의 문제점들을 해결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성당 한쪽에 정치인이나 성직자가 아닌 건설 실무자인 그의 흉상이 서 있는 것이겠죠. 무엇이든 마음과 정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돌 하나 하나의 순서와 위치를 꼼꼼하게 추적해서 언덕 아래 계곡에서 언덕 위 현재 위치까지 옮겨온 이 사람들의 열정에 경의를 표하고 싶습니다. 이 마을이 1960년대에 처했던 상황과 비슷한 처지이지만 이곳과 비할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가치를 지닌 우리나라의 귀중한 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울산 반구대 암각화입니다. 지금까지 지구상의 알려진 가장 오래된 포경유적으로 포경 장면을 비롯해서 300여가지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고 합니다. 이곳과 비슷한 시기인 1965년에 완공된 사연댐 때문에 수위가 올라가는 시기에는 암각화가 물에 잠겨 풍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암각화가 발견된 1971년 이후 지금까지 그 누구도 책임있게 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죠. 성당 옆에 세워진 흉상의 주인공인 로페즈 바스케스와 같은 인물이 있었다면! 하는 상상을 해봅니다.
성당 건물이 계곡 아래에서 이곳까지 옮겨오는 과정을 유추해 볼 수 있는 흔적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돌 하나 하나에 번호를 붙여서 옮긴 이들의 정성이 느껴지는듯 합니다.
교회에 얽힌 아름다운 이야기들, 교회 광장에서 만난 모자 순례자 일행등 아름다운 마을 만큼이나 포르토마린 산 쥬앙 교회(Igrexa de San Xoán de Portomarín, http://www.concellodeportomarin.es/)를 오래 기억 할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포르토마린. 슈퍼에 들러 내일 먹거리를 준비하고 숙소를 향합니다.
오후 3시쯤에 슈퍼(Supermercado Claudio)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주인장 할머니께서 마침 불을 끄고 나가시려는 순간이었던 모양입니다. 저희를 보시곤 조금은 유쾌하지 않으신 표정으로 체념하신듯 실내 조명을 한두개 켜셨죠. 아마도 오후 2시~4시 사이에 스페인의 낮잠 시간인 시에스타(la siesta)를 가지실 마음이셨나 봅니다. 괜히 미안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내일 걷기에 필요한 생수, 점심 도시락에 필요한 바게트 빵과 샌드위치 햄, 토마토, 소시지 등등을 서둘러 골라서 계산대에 가져 갔습니다. 슈퍼는 대형 체인점 슈퍼가 아닌 까닭에 뭔가 부족한 듯했지만 내부에 정육점도 있고 있을 물품은 모두 구비해 놓은듯 보였습니다. 넉넉히 구매했는데도 1만원이 넘지 않는 저렴한 가격이었습니다. 위의 그림은 계산후 받은 영수증입니다. 요즘은 대부분 포스(POS)에서 상세한 계산서가 나오지만 예전에는 사진과 같은 영수증을 받고는 했죠. 정말 간만에 받아보는 영수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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