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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17코스를 끝내고 하룻밤 쉬어갈 곳을 찾다가 18코스 경로 중에 있는 평화광장 인근에 숙소가 많아서 18코스 1.5Km 정도를 더 걸어서 평화광장 인근에 하룻밤 쉬어간다. 해안으로 깔끔한 산책로가 조성된 곳이다. 평화광장 이후로 해안을 따라 갓바위를 지나면 입암산 아래의 각종 박물관과 전시관이 자리한 목포문화의 거리를 통과한다. 이후로 시가지를 걸어 삼학도유원지에 닿는다.

 

목포를 한 바퀴 도는 서해랑길 18코스는 목포지방해양수산청 앞의 삼향교 다리에서 시작한다. 일단 다리를 건너지 않고 둑방 산책길을 통해서 해안으로 내려간다.

 

수로를 따라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은 목포미항초등학교 앞을 지난다. 농어촌의 수많은 학교들이 폐교하고 있는 가운데 아파트 단지 속에서 2003년에 개교한 초등학교이다. 미항이라는 이름을 학교에 붙인 이유는 세계 몇 대 미항, 국내 몇 대 미항으로 손꼽히지는 않았지만 자신의 고장을 아름다운 항구로 가꾸려는 의지의 표현이 아닐까 싶다. 목포는 신라 때부터 무안이라 불렸다고 한다. 부산, 인천에 이어 개항한 곳이기도 하다.

 

수로 옆 산책로를 걸어 해안에 이르면 수로 끝자락에 설치한 인도교를 따라서 수로 건너편으로 넘어가 길을 이어간다.

 

해안으로 나오니 좌측으로는 영산강 하구둑과 넓은 바다가 우리를 맞는다. 서쪽 하늘에는 짙은 먹구름이 다가오며 석양을 가린다.

 

"평화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은 인도교를 넘어서 해안 산책로를 이어간다.  목포시가 1990년대 후반부터 바다를 매립하여 건설한 하당신도시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인근 남악 신도시와 함께 수많은 마천루와 아파트가 들어선 곳이다. 그렇지만 목포시는 인구 20여만 명에서 감소 추세에 있다고 한다.

 

평화 광장 앞으로는 목포 춤추는 바다분수도 있고 스토리가 있는 연인의 거리라 하여 여러 조형물과 갖가지 푸드 트럭과 함께 유원지에나 있을법한 놀이들도 있었다. 찬바람이 세찬 하루였지만 그래도 날은 맑았는데 저녁이 되니 갑자기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숙소가 평화광장 인근이라 다행이었다.

 

오늘의 저녁 식사는 4,500원짜리 콩나물국밥이었다. 국물도 훌륭했다. 외식하면 양이 많아서 보통 과식하게 마련인데 콩나물국밥은 언제나 안심이다.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이었는데 사람들이 탁자마다 하나씩 시켜 먹는 미니족발 또한 매력적이었다. 

 

어제저녁 강하게 흩날리던 눈은 온데간데 없고 영산강 하구둑 위로 떠오르는 눈부신 아침 태양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온 세상을 황금빛으로 물들이고 있는 아침 햇살을 받으며 해안 산책길을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다.

 

해안 산책로 끝자락에 이르면 목포 갓바위를 만난다.

 

동쪽으로 떠오르고 있는 눈부신 태양은 스쳐 지나가기에는 정말 아름답다. 산책로 끝자락에 이르면 갓바위를 잘 볼 수 있도록 바다로 갓바위 탐방로를 만들어 놓았다. 태양에 조금씩 녹고 있는 서리를 조심조심 밟아가며 탐방로를 걸어간다.

 

오랜 세월 풍화와 해식으로 만들어진 자연의 작품이다. 바다 탐방로 덕분에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모습의 갓바위는 천연기념물 500호로 지정되어 있다.

 

갓바위를 지나온 길은 바다 건너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를 보면서 남농로 도로 쪽으로 나간다.

 

입암산 아랫자락에 자리한 목포 문화의 거리를 걷는 경로로 우선 남농로 도로를 따라가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앞을 지난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해양유물, 수중문화재의 조사, 연구, 보존, 전시를 담당하는 곳으로 목포와 태안을 거점으로 하고 있다. 목포해양유물전시관도 운영하는데 주변에 다양한 선박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1976년 신안 해저 유물 발굴이 계기가 되어 전국 곳곳 해역을 발굴하여 난파선과 각종 유물을 찾고 있다. 이를 통해 선박의 변천사, 해상 무역사, 어민의 생활 등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길건너로는 목포 자연사박물관, 문예역사관, 생활도자박물관, 목포문학관, 옥공예전시관 등이 이어지고 정면으로는 목포문화예술회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야말로 목포 문화의 거리라 부를 만하다 싶다.

 

지금 우리와 함께 걷고 있는 도로 이름이 남농로인데 길 건너에 이 이름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남농 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바로 진도 첨찰산 자락의 운림산방을 지나면서 접했던 인물이다. 운림산방은 추사 김정희의 제자인 소치 허련이 말년에 작품 활동을 하던 곳으로 그의 아들이 다른 사람에게 팔았던 것을 손자인 남농 허건이 다시 사들여 복원 후 진도군에 기증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남농 허건이 선대의 유물 보존과 한국 남화의 전통 계승 발전을 위하여 건립한 미술관이 바로 남농 기념관이다. 그는 평생 모아 온 작품들을 목포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길은 문화예술회관 앞으로 육교를 통해 길 건너편으로 넘어간다.

 

육교를 통해 도로를 건너면 목포문학관에 이르는데 그 앞에는 목포 출신의 여류 소설가 박화성의 흉상과 그의 시 "씨 뿌리는 여인아' 시비를 만날 수 있었다. 11살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 천재 소녀로 여성 최초의 장편소설 "백화"를 집필하고 일제 강점기 목포를 무대로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그려낸 여러 소설을 집필했다.

 

목포문학관 앞에 걸린 시들을 읽으며 지나가는데, 시 한 편에 발길이 멈춘다. 콩을 말려본 사람이 공감하는 시, 따스한 햇살을 받으며 읽기 좋은 시였다. 김영천 님의 "더러는 그냥 앉아 있기도 하는 이유"라는 시이다.


오늘은 그냥 뜨거운 햇볕 아래 
오래오래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잘 익은 콩깍지가 
마침내 톡, 터지며 폭발하듯
내 안의 생각들이, 어떤 이미지들이
잘 익어 폭발할 때까지
무작정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그러면 함부로 굴러 떨어진 알갱이들이
새로운 씨앗이 되어 
또 얼마나 많은 생각들과 이미지들이 되어 떠오를지 모른다고
나는 내심의 기대와 기쁨을 감추며
그냥, 그냥 앉아 있기로 했습니다 
부디, 구름이 서둘러 지나가고
은총 같은 햇볕이 쨍쨍 비추이길 바랍니다 
반질거리는 말들이, 
빛나는 생각들이
봉숭아씨앗 터지듯 한 자나 날아오를 기세입니다

 

길은 언덕배기의 길을 내려가 다시 남농로 도로를 따라 걷는다.

 

도로를 따라 걷는 길은 제일중학교 교차로에서 삼학도 방향으로 좌회전하는데, 교차로에 걸린 목포 갓바위 문화 타운 표지판을 보면서 방향을 거꾸로 해야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  글쎄, 요즘은 모두 지도앱과 내비게이션이 있으며 저걸 보고 헷갈리겠어? 하는 수다를 나누며 길을 건넌다.

 

길은 삼학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하여 삼학도 공원에 이른다. 시가지 좌측에는 목포 남항이 자리하고 있다.

 

삼학도로 넘어가는 삼학교 다리 앞에는 해변맛길 30리라는 길 이름도 등장했다. 서쪽으로는 멀리 우리가 가야 할 유달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삼학교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풍경은 대불 공단 위로 눈부신 태양이 중천을 향하고 있다. 길은 삼학교를 지나 바로 우회전하여 공원 산책길을 걷기 시작한다.

 

날은 쌀쌀했지만 날이 맑아서 그런지 이른 아침부터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계셨다.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 씨를 기리는 난영 공원 인근도 지난다. 어릴 적부터 자주 흥얼거리던 노래이다.

사공의 뱃노래 가물거리면
삼학도 파도 깊이 스며드는데
부두의 새악시 아롱 젖은 옷자락
이별의 눈물이냐 목포의 설움

 

멀리 김대중노벨평화상기념관을 바라보며 삼학도 공원을 가로지른다.

 

바다 위에서 사용하던 플라스틱 부이로 익살스러운 화분을 만들어 놓으니 이 또한 발길을 붙잡는다.

 

유일한 한국인 노벨상 수상자 김대중, 군사 정권 하에서 그가 받았던 온갖 고난과 치욕, 대통령이 된 후에도 끊이지 않았던 모욕과 조롱을 생각하고, 그 대척점에서 권력을 누리던 이들이 여전히 힘을 휘두르는 현실을 생각하면 씁쓸한 생각이 든다.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가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앞에서 휠체어를 타고 눈물을 흘리던 그의 모습이 떠오른다.

 

이곳은 목포항 1 부두로 항구에는 인천과 제주를 오가던 카페리호가 정박해 있었다. 세월호 이후에 처음으로 인천과 제주를 오가던 배였는데 운항을 중단했고 이제는 목포와 제주 간 항로에 투입할 예정이라고 한다.

 

부두까지 나왔던 길은 다시 삼학도 공원 안으로 들어가서 공원 산책로를 걸어간다. 세 마리 학이 내려와 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는 삼학도는 지금은 공원 안으로 물길이 있어 섬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70년대 초까지 이루어진 간척 공사로 섬은 잘려나가고 모두 육지화되었던 곳이다. 큰 배가 접안할 수 있는 항구를 만들겠다는 계획의 일환이었다. 이후 시민들의 복원 열망에 따라서 1999년부터 복원 사업이 시행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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