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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로 들어온 서해랑길은 진도타워를 거쳐 해안선을 따라 진도 남동쪽으로 내려간다. 진도타워가 있는 산을 넘으면 둔전방조제까지 해안 도로를 따라서 이동한다. 민가는 조금 떨어져 있고 해안으로는 양식장이 많은 곳이다.

 

6코스 초반 진도타워가 있는 망금산을 넘어가야 하는데 높아야 고도 120미터이므로 큰 부담 없이 넘어갈 수 있다.

 

진도타워로 가는 가파른 언덕길을 오른다. 6코스와 7코스를 모두 걸어야 하는 날인 만큼 7시 전에 걷기를 시작했다. 이른 시간에 날씨까지 흐려서 더 어둑어둑하다.

 

날은 아직 어스름하지만 그 속에서도 페튜니아가 삭막한 계절을 밝힌다. 피튜니아(petunia)라고도 부르는 남아메리카 원산의 식물로 우리나라에서 월동은 못하지만 꽃이 오래 피기 때문에 가로변 장식으로 많이 심는 식물이다.

 

해남 땅에서 우수영으로 가면서 처음 보았던 진도타워를 눈 바로 앞에서 만난다. 이곳 망금산(115m) 정상에 자리한 진도타워는 원래는 녹진전망대가 있었다고 한다. 2013년 명량해전 승전을 기념하며 개관했다고 한다. 지상 7층의 60여 미터 건물인데 문을 여는 시간이 9시 이므로 내부는 생략하고 주위 경관을 둘러보리로 했다.

 

벽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 참전했던 진도 출신의 주요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나라에 목숨을 바쳐 싸운 인물들의 집안을 보면 대를 이어 그 뜻을 이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명량(鳴梁)을 기술한 한자가 눈에 들어온다. 명량은 울돌목을 한자로 표기한 것으로 울 명(鳴), 대들보 량(梁)이다.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울음소리 같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여기에 와서 거친 물살을 직접 보지 않았다면 울돌목은 뜰채로 숭어를 잡을 수 있는 곳의 기억이 가장 강했었을 것 같다.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진도타워를 보면 그 모습을 좀 더 제대로 볼 수 있다.

 

어느새 어둠과 여명이 걷히고 이른 아침의 주변 풍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앞으로는 쌍둥이 진도대교, 우측으로는 울돌목 바다 끝으로 현도와 녹도가  자리하고 있다.

 

서해랑길은 이순신 명량대첩 승전광장의 조형물 뒤쪽으로 이어진다.

 

망금산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바다 전경으로는 굴섬과 넙섬, 그리고 그 뒤로 우리가 걸을 둔전방조제와 고군면 오류리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세월이 오래되어서일까? 역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그저 시험을 위한 암기만 했던 결과일까? 강강술래를 적을 혼동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활용했다는 것을 이곳에서 제대로 배운다. 정유재란 당시 토성을 쌓고 마을 부녀자들로 하여금 남장을 해서 산봉우리를 반복적으로 돌게 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은 풍년을 기원하며 부녀자들이 했던 민속놀이를 병술에 사용한 것이다.

 

가파르게 내려온 길은 해남에서 넘어온 송전탑 아래를 통과한다.

 

길은 울돌목 무궁화동산으로 이어진다. 다양한 품종의 무궁화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무궁화가 절정인 시기에 지나면 좋을 듯한데 울산 태화강에서도 울돌목에서도 무궁화 꽃이 모두 진 계절에 공원을 지난다.

 

국내외 80여 종의 무궁화 수만 그루가 자리하고 있는 곳이다.

 

무궁화 꽃이 활짝 피는 시기인 7월부터 10월 사이에 이곳에 온다면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무궁화동산 진입로를 통해서 해안으로 나간다.

 

해안으로 나온 길은 명량대첩로 해안 도로를 걷는다. 가끔 지나는 트럭만 있을 뿐 차량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다.

 

그 유명한 진도 대파를 실물로 영접한다. 경사가 있는 구릉지에 비닐 피복을 하고 심은 방식이 육지에서 보아 왔던 방식과는 조금 달라 보였다.

 

최근에는 햄버거 TV 광고로도 더 유명해진 진도 대파는 전국 생산량의 30~4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 대파의 최대 산지이다. 보통 2월에 모종을 시작하고 4월에 본밭에 정식하여 겨울이면 수확한다고 하니 수확을 앞두고 있는 대파밭이다. 중국산 대파도 수입한다는 뉴스도 있던데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겠다 싶다.

 

해안 도로를 걸으며 뒤돌아 보니 진도 타워도 점점 멀어져 간다.

 

넙섬 앞의 해안도로를 지나 멀리 바라본 풍경에서는 고군면 오류리의 반도가 동쪽으로 툭 튀어나와 있는 모양새다.

 

해안도로를 걷던 서해랑길은 신동습지보호구역 안으로 들어간다. 해안 산책길을 돌아 다시 해안 도로로 나오는 경로이다.

신동 습지보호구역은 진도군의 유일한 습지보호구역으로 이곳 군내면 신동마을에서 고군면 오류리까지의 바다가 대상이라고 한다. 1970년대에 수행한 진도군 곳곳의 간척 사업으로  농토는 많이 늘어났지만 그만큼 좋은 습지는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진도군은 전체 농토의 40%가 간척지로 16세기 후반 고산 윤선도의 조부께서 첫 민간 간척을 시작한 곳이기도 하다. 수십 년에 걸친 진도 굴포만의 간척 공사는 윤선도에 이르러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하며 작은 공원을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데크길을 만들어 놓았는데 쌀쌀한 날씨이지만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물이 들어오는 시간인데도 이곳의 갯벌은 상당히 넓게 펼쳐져 있다.

 

잠시 공원을 들렀던 길은 다시 해안 도로로 나와서 길을 이어간다.

 

일주도로는 통상 도로를 따라가면 섬을 한 바퀴 돌 수 있는 도로를 의미하는데 제주도의 일주도로가 대표적이다. 진도대교에서 시작하여 세방낙조를 거쳐 진도대교로 돌아오는 120Km의 길이다.

 

길은 둔전방조제로 이어진다. 방조제 외부의 갯벌에도 물이 들어오면서 흐린 날씨에 화려한 아침 햇살은 없지만 거울 같은 은빛 바다를 만든다.

 

둔전방조제가 축조된 것이 1956년이니 한국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새로 생긴 농지에 실향민 120 가구를 이주시켰는데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안농마을이라고 한다. 새롭게 만들어진 마을이다 보니 위성사진으로 보면 마을의 집들이 바둑판처럼 가지런한 것이 다른 마을 하고는 차이가 있다. 전쟁의 상흔을 품고 있는 곳이다. 압록강까지 밀고 올라갔던 국군이 중공군의 개입으로 후퇴하면서 주민 일부도 배를 타고 목포로 철수하게 되었는데 그중 700여 가구가 진도에 배정되었고, 그중에 황해도 송화군에 살던 주민들을 둔전방조제 사업에 투입하면서 따로 마련한 민간 수용소가 안농마을이었던 것이다. 지금은 지붕 개량도 하고 마을 리모델링도 했지만 아무것도 없던 그 시절 맨손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갔을 그분들의 애환을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방조제 끝자락에는 야자수도 있는 작은 공원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잠시 쉬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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