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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4코스를 끝내고 이어서 걷는 5코스는 원문마을에서 시작하여 혈도 간척지를 감싸고 서남쪽으로 돌아 내려가는 길이다. 오르락내리락 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완만한 들길을 걷는다. 원문마을을 출발하면서 18번 국도 공룡대로를 가로질러 북서쪽으로 이동하며 송정마을회관과 원동리 마을길을 지나면 다시 18번 국도를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오고 장포마을을 지나 학동마을에 닿는다.

 

4코스를 끝낼 무렵 우리는 원문마을에 가면 식당이나 마트가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 비를 주적주적 맞으며 흐린 들길을 걸었으니 따뜻한 국물에 맛있는 점심을 기대하는 것은 인지 상정이었다. 여행을 계획하면서 이곳이 읍내일 것이라고 생각한 필자의 착각이 이런 허망한 기대에 보탬이 되었다. 우수영 쪽으로 가는 버스가 지나는 곳이니 식당이나 편의점이 있을 거라고 막연한 기대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현실은 아무것도 없었다. 다행히 김밥이 있어서 버스 정류장에서 바람을 피하며 요기는 했지만 쌀쌀한 날씨에 몸을 녹여줄 국물을 옆지기에 상납하지 못한 것이 아쉬운 순간이었다.

 

원문마을을 떠난 5코스는 18번 국도 공룡대로 아래를 굴다리로 통과하여 들길로 나가는 것으로 여정을 시작한다.

 

대단위 간척지는 아니지만 예전에는 바닷물이 들어왔을 논과 구릉지 사이의 농로를 따라서 구불구불 길을 이어간다. 논이 아닌 곳은 배추 아니면 대파를 키우고 있다.

 

들길을 걷던 길은 국도 쪽으로 향하지만 국도 앞에서 우회전하여 얼마간 국도와 나란히 걷는다. 봄철 모내기 무렵이면 들판에 물을 공급하던 높은 수로도 국도와 나란히 간다.

 

길은 신월마을을 통과하며 국도를 뒤로하고 다시 북쪽 들판으로 나간다.

 

서해랑길 5코스는 등산 코스도 없고 길이가 12Km이니 확실히 마음에 부담이 적다. 신월마을을 지나 송정마을을 앞두고 있는 지점, 1.6Km를 걸었다.

 

촉촉한 들길에서 멀구슬나무의 열매를 만났다. 초여름 남파랑길을 걸으면서 처음 만났던 연보라색의 꽃과 매력적인 향기를 내뿜던 나무였다. 따뜻한 남도에서나 만나볼 수 있는 아름다운 꽃이었는데, 잎과 꽃이 모두 사라진 이 계절에도 올망졸망 열매로 나그네의 마음에 위안을 건넨다. 약으로 쓴다는데 찾는 사람도 새도 없는 모양이다.

 

길은 어느덧 송정마을을 통과한다.

 

배추 수확철에 비까지 내리니 콘크리트 농로는 황토투성이가 되었다. 배추 수확이 끝난 밭에는 트럭이 힘겹게 들어갔다가 나온 흔적이 역력하다. 덕분에 우리는 신발에 달라붙은 흙을 털어내느라 가다 멈추었다를 반복한다.

 

용암마을을 지나며 명량로 도로를 가로질러 계속 서쪽으로 이동한다. 구릉지의 밭들을 지나므로 배추를 원 없이 보며 걷는 길이다.

 

끝없는 배추밭이 이어지니 이제는 배추가 아닌 밭을 만나는 것이 반갑다. 수확기를 앞두고 있는 양배추밭이다. 제주 올레길에서만 만날 수 있었던 양배추밭을 남도에서도 만나다. 북제주가 우리나라 양배추 생산량의 30% 가까이를 생산하지만 해남과 진도도 평창과 서산에 있어 7%~8%의 생산량을 차지하는 양배추 주산지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한 밭에서는 양배추와 김장배추를 같이 심어 놓았다. 실수로 모종이 섞인 것인지, 일부러 같이 심은 것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밭 한쪽에서는 전기 트럭을 몰고 오신 여성 농민께서 인근 밭의 무언가를 점검하고 계셨다. 예전 같으면 남편의 조력자 역할에 그쳤겠지만, 이제는 고령화와 일손 부족이라는 환경에 직접 농업 경영 나서는 여성 농민이 많아져 전라남도의 경우 여성 농업인의 비율이 남성 농업인의 비율보다 높다고 한다. 실제로 트럭을 몰고 다니시는 어머님은 예사이고, 남파랑길과 서해랑길을 걸으며 트랙터를 직접 운전하시는 분들도 여러 번 목격했다. 세상은 계속 변하고 있다.

 

원동마을을 향해 서쪽으로 향하는 길, 멀리 진도로 이어지는 송전탑이 보이기 시작한다. 벌써 5코스가 끝나가고 있는 것인가? 하는 김칫국 상상을 해본다.

 

길은 원동마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마을 아랫자락을 살짝 지나서 다시 들판으로 나간다.

 

오락가락하는 빗속을 뚫고 걸어가는 들길, 시야에 들어오는 18번 국도도 반갑고, 아직 멀지만 진도로 넘어가는 송전탑이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이 좋다.

 

길이 송전선과 국도 인근으로 가면 이제 서해랑길 5코스는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남쪽으로 이동하며 굴다리를 통해 다시 18번 국도 공룡대로 아래를 통과하여 들길을 이어간다.

 

국도 아래의 굴다리를 통과하면 만나면 전경은 광활한 혈도 간척지 풍경이다. 명량해전 당시 일본 수군의 배 133여 척을 거의 전멸시키다시피 격퇴시켰으므로 3천~4천이 넘는 왜군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그들이 흘린 피가 만으로 흘러들어 땅까지 핏빛으로 물들였다 해서 혈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960년대에 나라가 아닌 개인이 차관을 들여와 간척지 조성했는데 지금은 태양광 발전소 설립을 두고 농민, 주민, 토지 소유자, 발전 공기업 간에 갈등이 상당하다고 한다.

 

구릉지의 언덕을 걸어 내려가는 길, 좌측으로 광활한 혈도 간척지를 보면서 걷는다. 일본군의 피가 흘러와 피섬이 되었다는 역사가 있는 곳, 이제는 바다가 변하여 땅이 되었지만 다시 바다로 만들자는 역간척의 제안이 있는 곳, 동양 최대의 태양광 단지를 만들고자 하는 시도가 있는 곳, 이곳의 미래의 모습은 과연 어떨지 모르겠다.

 

구릉지로는 배추밭, 그 아래 혈도간척지로는 광활한 평야가 펼쳐진 독특한 풍경을 눈에 담으며 걷는다.

 

완만한 구릉지로 이어지는 구불구불한 농로는 직사각형의 바둑판같은 논과는 다른 감성을 전해준다.

 

급한 볼일을 해결할 수 있었던 장포마을회관에서 볼일도 볼 겸 잠시 쉬어간다. 외부 화장실이 있는 마을 회관이 많지 않고, 있어도 잠그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열어 두셨다. 빗길에 신발에 묻은 흙자국을 화장실에 남기는 것이 미안했다. 마을 이름처럼 예전에는 포구였던 마을은 이제는 바다가 없다.

 

장포마을을 지나면 멀리 송전선이 가는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언덕 위 배추밭에서는 일군들이 모여서 배추 수확에 여념이 없는데, 우리는 진흙탕 길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잠시 주춤했다. 다들 차를 몰고 다니니 물을 빼낼 여유도 없었나 보다. 잠시 주춤하다 도로 경계석을 조심스레 밟으며 길을 통과했다. 멀리 학동마을이 보이기 시작한다.

 

학동마을에 들어서는데 울타리목으로 심은 나무에 포도송이처럼 생긴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상록 활엽수인 광나무이다. 나무 자체에 염분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나무라고 한다. 여정목, 정목, 서시목이라고도 부른다. 열매는 여정실이라 해서 약으로 쓴다. 몸에 좋다면 욕심이 생기는 사람 마음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남쪽 지방에서나 키울 수 있는 나무라서 욕심에도 한계가 있다.

 

길은 어느덧 학동마을에 들어선다. 왠지 푸근한 느낌이 드는 마을이다. 마을 회관 앞에 있는 정자에서 잠시 쉬어간다.

 

마을을 지나며 아무리 따뜻한 지방이라도 11월 말에 장미라니, 감탄사 연발이다. 울타리의 장미를 보면 5월이라 해도 믿을 것 같다.

 

학동마을을 빠져나온 길은 언덕을 넘어 남쪽으로 계속 길을 잡는다. 5코스 종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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