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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주립박물관 관람을 끝내면 페르다나 공원을 거쳐 탄중 아루 해변으로 간다. 필립 공 공원에서 일몰을 감상하면서 코타키나발루의 모든 여정을 마무리한다.

 

1인당 15 링깃 하는 입장권을 구입하여 사바주의 문화 속으로 들어간다. 내국인은 2링깃이니 7배가 넘는 금액이다. 이런 것을 보면 내국인이나 외국인이나 차이가 없는 우리나라가 훌륭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까지는 10링깃이었다는데 그새 올랐다. 돈에 대한 가치 판단은 뒤로하고 일단 이들의 문화 속으로 들어간다.

 

이마고 쇼핑몰의 전통 공연에서 만났던 보낭(Bonang), 공(Gong)을 비롯한 다양한 악기들. 세계 어디를 가나 인류와 음악은 뗄 수 없는 관계인 모양이다.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만든 다양한 모자들. 베트남 모자 농처럼 생긴 것도 있고 약간 변형한 것도 있다.

 

다양한 형태의 바구니들. 길쭉하게 만들어 어깨에 메도록 만든 것이 우리네 바구니와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바주의 전통의상. 결혼식 의상이라고 한다. 말레이시아 전통의상 바주 꾸룽(Baju Kurung)과 차이가 있어 보인다. 사실 말레이시아 본토 사람이 같은 나라에 속한 사바주나 사라왁주로 오는 것도 외국인처럼 90일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지역감정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토나 이곳 사바주도 공항이나 현지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은 태반이 히잡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유물 발견 상황을 재현해 놓은 전시관. 사바주는 약 2~3만 년 전에 인류가 이주해 온 것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시대적으로는 구석기에 해당한다. 말레이시아는 신생 국가가 아니고 오랜 역사를 가진 나라이다.

 

화려한 항아리들은 다양한 의식에 사용하는 것이고 일상에 사용하는 물 항아리도 있다.

 

쌀 항아리와 약 항아리. 약품이나 향료를 담아두는 항아리는 역시 작다.

 

재미있는 중국 전설 이야기, "The Dragon of kinabalu", 키나발루의 용 이야기, https://worldstories.org.uk/reader/the-dragon-of-kinabalu/english/358에서 이야기를 자세하게 만날 수 있다. 14세기말 명나라 황제가 정화 장군(Admiral Cheng Ho)을 중심으로 주변국과 활발한 무역을 하게 되는데, 보루네오섬을 거쳐가던 정화 장군은 키나발루 산에 사는 용이 분홍진주를 갖고 논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황제에게 전하는데, 황제는 위핑(Wee Ping)과 위산(Wee San) 두 아들을 보내 분홍진주를 가져오라는 지시를 한다. 군사들과 보루네오섬 도착한 형제가 산을 오르며 분홍진주를 훔치려 하지만 매번 실패하다가, 빨갛게 달구어진 대포알을 분홍진주인 것처럼 용에게 쏘아서 용을 죽이고 분홍진주를 황제에게 바쳤다는 이야기다. 이 과정에서 형인 위핑은 거짓과 속임수로 아버지 황제에게 자신이 분홍진주를 가져온 것처럼 했지만, 동생 위산은 일관성 있게 정직했고, 브루나이 술탄의 사위로 지혜와 용기를 보이면서 술탄에 올랐다는 교훈적인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박물관 입구에 거대하게 자리한 고래뼈. 처음에는 어룡 화석인가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야섬에서 자연사한 것으로 발견된 고래의 뼈라고 한다. 길이가 18.6m에 이르는 엄청난 크기이다. 수염고래의 일종인 브라이드 고래라고 한다.

 

거미와 다양한 식물까지 밀림의 다양한 식생을 만날 수 있었다. 보통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앉을 장소가 없어서 관람하다 보면 몸이 지치는 경우가 많은데 이곳은 곳곳에 의자가 있어서 쉬어가며 관람할 수 있어 좋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보다 쉬다를 반복했다.

 

코뿔소와 코끼리 화석. 2019년 사바주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수마트라 코뿔소가 죽었다는 뉴스가 있었다. 사바주가 주 서식지인 피그미코끼리도 서식지가 줄어들며 멸종 위기종이라고 한다. 산업화, 도시화와 자연 보존이 공존하기 어렵다는 것을 이곳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남중국해를 둘러싼 해양 역사와 보루네오섬에 미친 서구의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브루나이 술탄국과 술루 술탄국으로 이어져오던 보루네오의 북부의 세력권은 18세기 스코틀랜드의 항해가인 알렉산더 달림플(Alexander Dalrymple)이 술루 술탄과 조약을 맺는 것으로 인연이 시작되지만 19세기에 들어서 라부안 섬과 사바를 차례로 영국에 양도하면서 영국의 영향권 아래에 들어가게 된다. 우측 두 번째에 있는 인물은 제임스 브룩(James Brooke)으로 아버지로부터 받은 거액의 상속금으로 배를 구입하여 모험을 떠난 사람이다. 그러다가 지금의 사라왁에 도착했는데 당시 해적과 반군으로 혼란스러웠던 브루나이 왕조가 그에게 도움을 청했고 브룩은 해적 소탕과 함께 반란을 진압한 공로로 사라왁 주에 대한 통치권을 넘겨받아 말레이시아로 편입될 때까지 사라왁에서 3대에 걸친 백인 왕조를 유지했다고 한다. 세 번째 인물은 미국인 토머스 브래들리 해리스(Thomas Bradley Harris)로 미국 영사가 10년간 조차지로 받은 지금의 사바 키마니스(Kimanis) 지역에 엘레나(Ellena)라는 식민지를 건설하려고 했으나 잘 되지 않았다고 한다. 사진에서 네 번째 인물은 돈 카를로스 쿠어테론(Don Carlos Cuarteron)으로 스페인 출신의 항해사였다가 후에 성직자가 된 인물로 지금의 코타키나발루 인근으로 첫 카톨릭 선교사로 부임받은 사람이다. 사바주와 사라왁주에 카톨릭 신자가 많은 배경이 아닌가 싶다. 말레이시아 인구의 9% 정도가 기독교인이고 코타키나발루에 성당과 교회도 여럿이라고 하지만 말레이시아의 기독교 박해는 심심치 않은 일이라고 한다.

 

영국령 북보르네오 회사에 대한 원주민들의 저항 역사,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이어진 일본의 지배, 그리고 일본의 패망 이후로 이어진 영국의 식민 지배까지 이곳 사람들의 아픈 역사를 볼 수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1963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영연방 회원국이다. 말레이시아 국기와 사바주 주기가 나란히 걸려있다.

 

7만 5천 년 구석기로 올라가는 사바주의 선사시대 역사와 영국의 지배 시기까지 이어진 헤드 헌팅 풍습을 소개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수많은 부족이 살았던 보루네오 섬은 적 전사의 머리를 승리의 전리품으로 챙겨 가거나, 심지어 혼인식의 지참물로 사람의 머리를 가져갔다고 한다. 박물관에서는 나무 조각을 걸어 놓았지만 아직도 시골에 가면 조상들이 모아 놓은 사람 해골을 걸어 놓은 집들이 있다고 한다. 사라왁의 이반(Iban) 사바의 무릇(Murut), 카다잔의 두순(Dusun)이 대표적인 부족이다. 초기 서구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을 것 같다. 이반 부족의 경우는 전투의 결과물로 사람 머리를 자른 다면 이곳 사바주의 무릇 부족은 그야말로 그냥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성인 의식으로 사람을 죽이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아 주변 부족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결혼 때 사람 머리가 없으면 결혼할 수 없었고, 젊은 남자는 그냥 정기적으로 사람을 죽였다고 한다. 그들 나름의 생존 방법이었겠지만...... 

 

박물관 관람을 끝내고 나오니 어제처럼 먹구름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원래 계획은 걸어서 탄중 아루 해변으로 나가는 것이었지만 날씨도 꾸물꾸물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엄두가 나질 않는다. 그랩 택시를 불러서 페르다나 공원으로 향한다.

 

페르다나 공원으로 이동하는 중에 택시에서 찍은 사바 주립 이슬람사원(Masjid Negeri Sabah) 유명한 블루 모스크, 핑크 모스크는 아니지만 나름의 멋이 있다. 골드 모스크라고도 부르는 모양이다. 말레이시아 헌법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고 하지만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고 있다. 이슬람교가 60% 조금 넘고 불교가 20% 정도인데 주립 모스크는 있어도 주립 성당이나 주립 교회는 없는 게 현실이다. 골드 모스크도 주립이고 핑크 모스크도 사바 주립 대학에 있는 모스크이다.

 

아담한 빅토리아 호수(Victoria Lake)를 품고 있는 페르다나 공원(Perdana Park)에 도착했다. 젊은 한국인 커플이 인증숏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고 나머지는 산책하거나 운동하는 사람들이었다. 공원 너머로 있는 멋있는 건물은 사바 주립 도서관 신관이다.

호수 옆을 걷다가 철제 벤치에 벌러덩 누워 잠시 휴식을 취한다. 공원 옆으로 공립 도서관이 있었는데 공원이 깔끔한 것은 좋았지만 철조망으로 공원 주위를 막아 놓은 것이 아쉬웠다.

 

페르다나 공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탄중 아루 해변으로 걸어서 이동한다.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며 운동하는 사람들을 돌아보는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은 우리와 다르지 않아 보이는데, 온도가 높아서 그런지 뛰는 사람들의 몸은 왠지 무거워 보인다. 

 

옆지기가 독특한 모양과 색깔의 나무 열매를 하나 집어 들었는데 마치 천연 보석처럼 보인다. 공원 길건너에는 SK 탄중아루라는 학교가 있는데 넓은 운동장에서 아이들이 축구 경기에 한창이다.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가 바로 축구이고 1970년대만 해도 말레이시아에서 개최하던 메르데카컵은 아시아 3대 축구대회였고 우리나라 국가 대표팀도 여러 번 우승한 경력이 있는 대회다. 어릴 적 메르데카컵 경기 중계를 보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드디어 탄중 아루 해변(Pantai Tanjung Aru)에 도착했다. 입구에 그랩 포인트 표식도 있다. 노점상들의 규모가 상당하다. 야시장이 오후 5시부터 10시까지 열리는데 이른 저녁 시간인데 벌써부터 장사 준비에 분주하다.

 

다양한 메뉴를 팔고 있었지만 옆지기에게 마음껏 사 먹어도 좋다고 해도 선뜻 손이 가지 않는 모양이다. 아이쇼핑만 하다가 해변으로 나간다.

 

탄중 아루 해변을 누군가는 세계 3대 석양이라고 하지만, 순위를 매기는 것은 다분히 주관적이거나 이벤트적이고, 해변 그대로만 놓고 보아도 아름다운 해변 맞다. 붉게 타는 석양 대신 구름이 많은 저녁 하늘이지만 나름의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다만, 남중국해의 바닷물에 발 담그는 사람은 있어도 해수욕하는 사람은 없는 게 특이해 보인다. 

 

탄중 아루 해변은 해가 지는 시간에 맞추어 석양을 감상하려는 사람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우리는 한적하게 석양을 즐기기 위하여 바로 옆 남쪽으로 자리한 필립 공 공원(Prince Philip Park)으로 향한다.

 

깔끔하게 정리된 필립 공 공원은 해변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나무숲과 쉼터가 있는 매력적인 장소였다. 관광객들은 야시장이 있는 탄중 아루 해변에 몰려 있고 이곳은 현지인들의 편안한 휴식처였다.

 

공원 입구에서 만난 커다란 도마뱀 한 마리가 공원을 어슬렁 거리더니 시커먼 도랑물 속으로 풍덩 들어간다. 도심의 냄새나는 도랑에서도 도마뱀을 만났는데 도마뱀들은 오염된 물에서 살아도 괜찮은 모양이다.

 

필립 공 공원은 나무 그늘도 매력이고 곳곳에 쉼터와 벤치도 있고 한걸음만 나서면 모래 해변이니 정말 매력적이었다.

 

서쪽으로 하늘이 점점 붉어진다.  그렇지만 보슬비를 뿌리던 구름이 하늘이 가득 가리고 있어서 화려한 석양은 기대하기 어렵겠다 싶다.

 

노점이 있는 탄중아루 해변 쪽은 사람들이 하나둘 해변으로 모이기 시작하지만, 이쪽 공원 앞 해변에는 홀로 해변을 걷는 현지인이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

 

서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 해변에서 직선으로 서쪽으로 가면 말레이시아 본토에 닿는다. 하늘 가득한 구름을 뚫고 석양이 얼굴을 내보이려 하지만 한참을 기다려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역부족이 아닌가 싶다.

 

구름 너머의 석양을 뒤로하고 코타키나발루의 모든 여정을 마무리한다. 몸 상태를 잘 관리했으면 더 좋았겠다 하는 아쉬움 남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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