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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흥 초등학교 앞에서 출발하는 남파랑길 88코스는 화흥리 마을길을 가로질러 임도를 오르다가 가파른 등산로를 통해서 완도 최고봉인 상왕봉에 오른다.

 

어제 화흥초등학교 앞에서 87코스를 끝낸 다음 군내버스를 타고 완도읍내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한 우리는 다시 군내버스를 타고 화흥초등학교로 이동하여 88코스 여정을 시작한다. 완도 군내버스는 2023년 9월부터 완전히 무료로 운행되고 있다. 남파랑길이 지나는 여러 군 지역에서 1천 원으로 버스를 이용하는 곳이 많지만 완전 무료 버스는 처음이다. 교통 카드를 꺼낼 필요도 없다. 버스 내부에 있는 단말기도 완전히 전원을 꺼 놓은 상태였다. 출발 시간도 정확하고 비용도 무료이니 정말 고마웠다.

 

커다란 편백나무와 히말라야 시다가 우뚝 서있는 화흥초등학교 옆을 통해서 남파랑길 88코스를 시작한다.

 

학교 울타리에는 학생들의 여러 작품들이 걸려 있었는데 "우리 집 완도 전복"이란 시 앞에서 과연 완도로구나! 하는 감탄을 하게 된다. 완도의 전복 생산량이 우리나라의 73%에 이른다고 하니 전복하면 완도, 완도 하면 전복 맞다. 매일의 밥상에서 찬거리로 전복이 올라간다는 것도 부럽다.

 

화흥초등학교는 그림처럼 교내에 골프 연습장을 갖추고 있다. 대학교에서 수업을 위해 연습장을 갖추고 있는 것은 본 적이 있지만 초등학교 교내에 골프 연습장이라니, 그것도 시골 초등학교에 있는 골프 연습장이라니 놀랍다. 그런데, 이 학교가 PGA 투어 우승자 최경주 선수의 모교라는 것을 알게 되면, 아하, 그렇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전교생에서 무료로 골프 레슨을 제공하고 학부모와 지역민에게도 골프 교실을 운영한다고 하니, 나름 좋아 보인다. 골프 유학을 이곳으로 오는 아이들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서서히 기세를 잡아가고 있는 배추밭과 화흥리 마을길을 따라 웅장한 상왕봉 계곡을 향해 걷는다.

 

완도의 가을에는 석산이라고도 부르는 꽃무릇이 절정이다. 화려한 꽃만큼 향기도 있으면 좋겠지만 꽃향기는 없다.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임도로 향하는 길, 어느 집 울타리의 나팔꽃이 아른 아침 존재감을 뽐낸다. 영어로 모닝글로리(Morning Glory)라고 하는데 동남아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 사람들의 입맛에 잘 맞는 음식 중의 하나가 공심채인데 공심채를 모닝글로리라고도 부르지만, 공심채와 나팔꽃이 꽃은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식물이라고 한다. 공심채를 모닝글로리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지칭이다. 사람 눈에는 나팔꽃이 계속 피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새벽에 꽃을 피워 다음날이면 시들고 또 다른 꽃이 피는 것이다. 젊음이나 아름다움은 찰나라는 화무십일홍이 어울리는 꽃이다.

 

울타리로 풍성하게 넘어온 유자도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여름의 태양을 받아 열매를 결실하고 무거워진 열매 때문에 가지를 아래로 늘어뜨리고 있지만, 나무의 고단함 보다는 여유로움과 보람이 느껴진다. 

 

상왕봉을 향해서 마을길을 걸어온 길은 길 중간에서 임도로 진입한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고요함 속에 상왕산 임도의 오르막길을 걷는다.

 

임도 인근으로 산불의 흔적이 있었는데, 앙상하고 삭막한 모습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몰려온다. 다만, 불이 크게 번지지 않아 보여 다행이었다.

 

비록 임도이지만 캄캄한 동굴로 보일만큼 울창한 숲길이다.

 

지그재그로 올라가는 임도 중간에 이런저런 봉우리들이 보이지만 오봉산의 어떤 봉우리인지를 분간하기는 어렵다. 오봉산은 심봉, 상왕봉, 백운봉, 업진봉, 숙승봉을 이르는데 백운봉, 업진봉, 숙승봉은 상왕봉 너머 북쪽으로 더 가야 있으므로 임도에서 보이는 것은 심봉이나 상왕봉 중의 하나로 추측할 뿐이다.

 

임도 옆에 칡덩굴 사이로 하얀 꽃이 피었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인 등골나물이다. 줄기를 말리면 향기로운 등나무 꽃 냄새가 난다는데 확인할 길은 없다. 꽃을 보면 꽃봉오리는 봐줄 만 한데, 활짝 핀 꽃은 이리저리 튀어나간 모양새로 그리 예뻐 보이지는 않는다.

 

숲은 후박나무와 같은 나무들로 이루어진 울창한 난대림이다.

 

따스한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오르막 임도를 이어간다. 오르막길인 만큼 땀은 비 오듯 쏟아지지만 걷기 좋은 숲길이다.

 

삼밧재에 도착한 길은 임도를 벗어나 상왕봉 방면의 등산로로 진입한다. 임도를 따라 계속 이동하면 완도자연휴양림으로 갈 수 있다. 길은 상왕봉을 지나 완도 수목원으로 내려간다.

 

상왕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처음부터 거칠다.

 

철계단과 바위길을 이어 오른다.

 

아직 정상에 오르지 않았지만 숲사이로 남해 다도해의 절경을 살짝살짝 보여준다. 길은 험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어떤 광경이 펼쳐질지 기대가 된다.

  

바위산을 오르다 보니 화흥리 방면의 전경이 아래로 펼쳐진다. 멀리 구계등 해변과 완도호도 시야에 들어온다. 간척지 논들은 황금들판이다.

 

우람한 남근 바위 앞에서 잠시 미소 짓다가 길을 이어간다.

 

기암괴석 사이로 지나는 길, 안전장치들이 없으면 힘겨웠을 길을 어렵지 않게 오른다.

 

거친 길에 몸은 조금 힘들지만, 바위와 숲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길이다. 깃털 구름이 가득한 남해 바다 풍경은 이곳을 오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다.

 

난대림과 기암괴석, 새털구름, 발아래로 펼쳐진 황금들판과 푸른 바다 눈호강에 몸에 흐르는 땀은 이미 잊은 지 오래다.

 

상왕봉을 지척에 둔 바위에 오르니 완도 앞바다가 탁 트인 전경으로 다가온다.

 

새털구름 아래 황금들판과 푸른 바다, 점점이 떠 있는 섬들까지 확 트인 풍경은 멀리 완도 읍내까지 한눈에 보여준다.

 

상왕봉 표식을 따라 산 정상부 숲길을 돌아가면 상왕봉에 이른다.

 

드디어 644미터의 상왕봉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봉화대도 있었다고 한다. 유리 난간이 있는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경남 사천의 각산 정상부에 있던 전망대가 생각났다. 아무것도 걸리지 않는 전망도 즐기고 땀을 식히며 넉넉히 쉬어 간다.

 

완도 동편은 읍내와 신지대교로 이어진 신지도와 고금도, 우리가 지나온 청해진 유적지까지 눈에 들어온다.

 

서쪽은 오늘 여정을 시작한 화흥리 방면의 전경으로 완도방조제가 만든 넓은 평야와 호수가 보이고, 바다 건너로 남파랑길을 마무리할 해남 땅도 보인다. 남파랑길도 이제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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