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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 마을을 출발한 길은 농로 걷기를 계속하며 북쪽으로 이동한다. 과역면과 남양면을 가르는 수로를 지나면 고흥반도의 목덜미에 해당하는 남양면으로 넘어간다. 대곡리로 넘어온 길은 국도 아래를 굴다리로 통과하여 노송 마을을 지나며 고흥로 도로변의 메타세쿼이아 길을 지난다. 고흥로를 걷던 길은 국도가 지나는 대곡교 아래를 지나서 국도 옆길을 따라가며 대곡리에서 남양리로 넘어간다. 남양리의 농로를 걷던 길은 다시 국도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여 남양 마을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도야 마을을 벗어나 두원면과 남양면을 이어주는 방조제 방향으로 이동한다. 방조제가 들어서면서 만들어졌을 논들은 모내기가 한창이다. 마을을 벗어나서 돌아보니 도야마을을 감싸고 있는 옥녀봉 자락이 유독 더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다는 느낌이다.

 

길은 방조제 인근에서 수로를 끼고돌아 두원면 끝자락으로 이동한다.

 

바다 쪽으로는 배수갑문이 길을 막고 있는 수로를 건너면 두원면에서 남양면 대곡리로 넘어간다. 수로를 건너며 내륙 쪽을 보면 국도가 지나가는 노송교도 보이고 더 멀리로는 월악산이 버티고 있다. 

 

남양면 대곡리로 넘어온 길은 우회전했다가 다시 작은 동산을 끼고 좌회전하여 농로 따라 동북쪽 국도 방향으로 이동한다. 전면으로 고흥 반도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는 15번 국도도 보이고 멀리 우리가 통과할 국도 아래 굴다리도 눈에 들어온다.

 

굴다리로 국도 아래를 통과하면 노송 마을 전경과 함께 메타세쿼이아길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이 버스가 다니는 고흥로 도로로 나오면 좌회전하여 메타세쿼이아가 심긴 고흥로 도로를 걷는다. 교차로에 작은 농장을 지나는데 단출한 소 가족을 만났다. 어미소는 낮잠 삼매경인데  큰 송아지들은 우리를 보고는 놀란 눈으로 우리를 바라본다. 

 

필자가 이런 메타세쿼이아길을 처음 만난 것은 아이들과 함께 했던 담양 여행에서였다. 우람한 줄기에 붙어 있던 이끼가 아직도 깊은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만큼 오랜 세월과 크기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곳도 훌륭하다.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 사람이 다닐 공간이 거의 없다는 것이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좋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풍경을 만나니 괜히 마음도 들뜨는 것 같다. 메타세쿼이아라는 이름은 일본인 식물학자가 일본에서 발견된 화석을 보고 체로키 인디언 부족의 문자를 발명한 세쿼이아(sequoia)를 따서 붙인 것이라 한다. 그런데 화석 발견 이후 쓰촨 성의 한 산림 공무원이 발견한 나무가 메타세쿼이아임이 알려지게 되었고 미국에서도 살아있는 메타세쿼이아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한다. 화석이 먼저 발견된 나무, 멸종위기종이었지만 사람에 의해 퍼진 나무, 세상에서 가장 큰 나무이다.

 

나무 아래 일부 구간에는 큰금계국이 자리하고 있는데, 꽃 때문에 사람은 걸어갈 공간도 없다. 흙이 조금이라도 있는 곳은 모두 자신의 영역으로 만들어갈 터이니 논 쪽으로 보이는 족제비싸리나 소먹이 풀로 키우던 풀씨가 날아와 자리 잡은 곳은 과연 큰금계국의 영역 확장을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 가로수길은 몇 년 후에는 더 좋은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고 기대가 된다.

 

가로수길 끝에는 보랏빛이 도는 갈퀴나물이 영롱한 색깔을 자랑하고 있다. 그런데, 갈퀴나물도 여러해살이 풀이니 큰금계국이 퍼지는 것을 견뎌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이곳도 몇 발자국 너머로 노란 큰금계국이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우리 땅에서 자라던 다양한 들풀은 큰금계국으로 통일되고, 억새와 강아지풀이 자라던 곳에는 외래종 핑크뮬리가 대체되면 조경적, 관리적, 관광적 시각으로는 좋아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라지는 우리의 식물들처럼 우리의 문화와 생각도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이 다가온다.

 

길은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에서 좌회전하여 개천 둑방길을 따라 내려가면 국도가 지나는 대곡교 다리 아래를 통과한다.

 

국도 아래를 통과하면 우회전하여 국도 옆길을 걸어 올라간다. 남양면 대곡리에서 남양리로 넘어가는 길이다.  

 

남양리로 들어왔으니 74코스도 얼마 남지 않았다. 길은 방조제 쪽으로 돌아서 농로를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간다.

 

길은 농로를 가로질러서 평야 너머 산 아랫자락에 자리한 마을 쪽으로 가야 한다. 이 동네는 모내기가 거의 끝난 모양이다. 대부분의 논이 모가 자리를 잡아서 잔디처럼 푸르다.

 

항아리처럼 내륙으로 깊게 들어온 지형인 이곳은 온통 갯벌이다. 물이 완전히 빠져서 그런지 물 한 방울 구경할 수 없다. 남쪽으로는 우리가 지나왔던 과역면의 도야 마을 방제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바다로 뚫려 있지만 바닷물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이곳을 간척하겠다고 나선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을 하게 하는 곳이다.

 

길은 산 아랫자락을 돌아가는 농로를 통해서 마을 안으로 조금씩 들어간다.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는 길, 전면으로 보이는 우리가 오며 가며 지나왔던 국도를 향해서 길을 이어간다.

 

고개를 넘어가는데 보리밭이 눈길을 끈다. 보리의 색이 많이 보던 것과는 달랐다. 자색 보리인 모양이다. 흑색보리, 녹색보리도 있다고 한다. 5대 작물의 하나이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보리이지만 우리나라에서 보리는 찬밥 신세인 것 같다. 없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곡식이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중고등학교 시절 도시락의 혼식 여부를 검사하던 시절도 있었다. 선생님이 도시락을 검사하는 날이면 친구 도시락에서 보리를 가져다가 자신의 도시락에 보리 몇 알 올려놓는 웃지 못할 풍경도 있었다.

 

국도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여 남양 마을로 들어간다.

 

굴다리를 통과한 길은 고흥로 도로로 올라가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이동한다.

 

드디어 남양 버스 정류장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인근에는 남양 면사무소도 있고 면사무소 쪽으로 가면 안내판처럼 고흥 남양리 산성도 있다. 산 정상 부분 5백여 미터를 4미터의 폭으로 백제 시대에 돌로 쌓은 산성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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