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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다이아몬드형의 고흥반도를 도는 여정도 서남쪽 끝자락을 향해 가고 있다. 남파랑길 70코스는 백석 마을에서 시작한다. 마을을 벗어나 큰 도로로 나오면 77번 국도 변을 걸어 오마 방조제에 이른다. 오마 방조제는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우선 풍양면과 도덕면 오동도를 잇는 방조제의 둑방길을 걷는다. 오동도에서는 도로를 걷고 이어서 오동도와 오마도를 잇는 방조제의 둑방길을 걷는다. 오마도에 들어가면 은전 마을을 지나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을 오른다. 공원에서 내려오면 마지막으로 오마도와 도양읍 봉암리를 이어주는 방조제의 둑방길을 걷는다.

 

농번기를 앞두고 지난주에 이어 연달아 고흥으로 내려왔다. 떠나가는 봄을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순천과 고흥을 거쳐 군내 버스를 타고 백석 마을까지 들어왔는데, 역시 고흥의 군내 버스들은 시간표를 잘 지켜 주었다. 길은 백석 마을을 벗어나 77번 국도 천마로로 나온다. 77번 국도는 부산에서 시작하여 경기도 파주까지 L자 형으로 이어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도로라고 한다. 긴 도로이니 중간중간에 크고 작은 도로로 연결되는 모양이다. 팔영산 아래에서 해창만 방조제까지는 팔영로였고 마복산 아래에서 오마 방조제까지는 천마로 이다.

 

국도로 나오면 갓길을 걸어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지난주에 이어 여전히 이곳은 모내기로 분주하다. 

 

동적 마을 입구를 지나 넉넉한 갓길을 오른다. 도양, 녹동으로 가는 도로 표지판이 등장했는데 오마 방조제를 지나는 길이다. 동적 마을 앞의 고개 이름을 장고치라 부르는 모양이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옆지기께서 발걸음을 멈추고 채집에 열심이시다. 탐스럽게 생긴 빨간 산딸기를 만나셨다. 덩굴딸기, 뱀딸기, 곰딸기 등 여러 종류가 있으나 먹을 수 있고 제초제를 뿌릴 염려가 없는 곳의 산딸기는 무엇이든 환영이다. 입안 가득 오물거리시는 옆지기님이 행복해 보인다. 비타민 C가 많다고 한다.

 

오마 방조제 앞바다는 바다와 하늘을 구분하기 어려운 푸르름 일색이다. 조각구름이 장식처럼 몇 개 걸려 있는 맑은 하늘은 오늘의 여정이 태양 아래 걸코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한다. 길은 우측으로는 풍양면과 방조제로 연결된 오동도가 눈에 들어온다.

 

풍양면 매곡 마을의 포구 너머로 오동도와 이어지는 오마 방조제가 시야를 가득 채운다. 1962년부터 3년간 수많은 한센인들의 희생이 있었고 완공은 1988년이었다. 

 

길은 8백여 미터의 1호 오마 방조제로 진입한다. 진입로에서 만나는 큰금계국의 꽃말이 "상쾌한 기분"이라지만 오마 방조제의 사연을 알면서 이 꽃을 만나니 꽃빛에서 한센인들의 슬픔이 느껴지는 듯하다.

 

노란 꽃이 가득한 것보다는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과 함께 있는 큰금계국이 아름다워 보인다. 조화로움은 자연이나 사람이나 아름다움을 만드는 기본 요소라는 생각을 해본다.

 

큰금계국이 길을 장식하고 있는 1호 오마 방조제 둑방길을 걷는다. 높지 않은 둑방길 바로 옆으로 천마로 국도도 함께 간다. 

 

걸을수록 오동도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트랙터도 경운기도 없던 시절 손수레와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이 둑을 쌓을 때는 이 길은 천리길 같지 않았을까? 그렇게 힘든 고생을 하며 둑을 만들고는 결국 그 과실은 누리지 못했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방조제로 만들어진 광대한 담수호와 평야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우리나라 바닷가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지만 그 이름도 알아주지 않는 갯메꽃이 분홍색 꽃을 피웠다.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아무것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땅에 뿌리를 내리는 그 생명력에 감탄을 하며 세상에는 버릴 것이 없다고 이 식물도 진통, 이뇨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1호 방조제를 지나 오동도로 들어가니 단풍나무에 붉은빛의 열매가 맺혔다. 단풍나무의 꽃은 보이지 않을 정도지만 꽃이 진자리에 나온 열매가 붉은빛이 도는 것이 마치 꽃처럼 보이기도 하고 나비처럼 보이기도 한다. 나무에서 떨어지면 헬리콥터의 날개처럼 빙빙 돌며 바람에 실려 멀리까지 날아간다.

 

오동도와 2호 방조제를 지나서 오마도에 들어오면 도로를 벗어나 우측 길로 통해 은전 마을로 들어간다.

 

은전 마을의 뒷산을 올라서 산 능선을 따라서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으로 가는 길이다.

 

마을 뒷산에서 바라본 은전 마을의 전경이다. 바다 건너로는 흰구름을 모자 삼은 거금도이다. 시야를 가득 채울 정도로 큰 섬이다. 녹동에서 소록도를 거쳐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인천공항이 있는 영종, 용유도를 빼면 우리나라에서 열 번째로 큰 섬이다. 우리나라 11대 섬들 중에 울릉도와 거금도, 진도는 아직이고 나머지는 모두 가 보았으니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지도 모르겠다. 

 

산 아래 바다 풍경을 보면서 산 능선을 따라 추모 공원으로 향한다.

 

연보랏빛의 멀구슬나무 꽃을 만났다. 향기도 좋고 꿀도 많은 밀원 식물이다. 꽃향기는 좋지만 잎이나 뿌리에서 나는 냄새는 벌레를 쫓기 때문에 천연 방충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꽃이 지면 동그란 열매가 맺힌다.

 

서쪽으로는 작은 섬 만제도와 함께 3호 방조제를 지나면 만날 도양읍 봉암리도 보인다.

 

추모 공원 직전에 만난 독특한 식물에 이목이 끌린다. 덩굴 식물로 보이는데 잎에도 덩굴손에도 붉은빛이 돈다.

 

여러 정보를 찾아보았는데, 키위라 부르는 양다래였다. 꺾꽂이로도 씨앗으로도 번식하니 야생으로 번지고 있는 모양이다.

 

산길을 통해 오마간척한센인추모공원에 도착했다. 3년간 자활 정착을 꿈꾸며 오마 방조제를 쌓았던 한센인들을 기리며 고흥군에서 만든 공원이다. 1962년부터 시작된 공사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는데 지역민의 반대와 정치권의 이해가 맞물리며 한센인의 모든 꿈은 사라졌다고 한다. 산 아래로 펼쳐진 드넓은 평야에서 새로운 삶을 꿈꾸던 그들의 아픔을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산 아래로 도양읍 봉암리까지 이어지는 3호 방조제 안으로 펼쳐진 평야에서 한센인들의 눈물과 설움을 본다.

 

오로지 사람의 힘으로 만든 방조제의 건설을 조형물로 모두 다 표현할 수 없겠지만, 지금까지 보아온 수많은 조형물 가운데 가장 마음에 와닿는 조형물이었다.

 

말 조형물은 고발도, 분매도, 봉도(오마도), 오동도, 벼루섬을 이르는 오마도(五馬島)를 상징하는 것이다.

 

길은 추모 공원을 내려가 3호 방조제로 향한다.

 

3호 방조제는 방조제 둑방길이 아니라 도로 우측의 농로를 따라간다. 멀리 비봉산을 보면서 걷는다.

 

흰구름과 푸른 하늘, 모내기 끝낸 논의 싱그러움, 거울처럼 반짝이는 물 댄 논까지, 자신의 논을 보며 뿌듯해하는 것을 꿈꾸었을 텐데, 한센인들의 무너진 꿈에 가슴이 무겁다.

 

방조제 옆의 농로를 걷던 길은 도로로 올라와 도로를 따라 걷는다.

 

3호 방조제 끝자락의 배수갑문에 도착했다. 넓은 담수호 위의 푸른 하늘과 흰구름, 호수까지 한 폭의  명작이다.

 

길은 배수갑문을 지나서 좌회전하여 해변으로 나간다.

 

도양읍 봉암리로 넘어온 길, 봉암리 해안길에서 3호 방조제 안내판을 만난다. 준공연도가 1968년이다. 한센인들이 일구어 놓은 열매는 소위 비한센인이 따먹었으니, 그분들의 설움과 억울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동양이나 서양이나 나병, 문둥병은 천형으로 생각하고 사람들의 따돌림과 천대를 받아 왔지만 19세기 한센이 나균을 발견한 이후로는 그 정체가 분명해진 나균에 의한 만성 감염병이다. 한센병이 나균에 의한 것이라는 정체가 밝혀진 만큼 치료제도 나왔고, 다른 세균병처럼 자연 치유도 된다고 한다. 유전병도 아니고 쉽게 전염되는 병도 아니다. 완치 가능한 병이라 이야기다. 가장 무서운 것은 고정관념이다. 한센병이라고 이름을 바꾼 이유도 그런 이유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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