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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군 포두면의 가장 남쪽에 있는 익금 마을을 지나는 남파랑길은 고흥 반도 남부를 동에서 서로 가로지른다. 익금 마을에서 도화까지 77번 국도로도 갈 수 있고 봉산로 도로를 따라서도 갈 수 있으나 남파랑길은 봉산로 도로 인근에서 농로를 걸어 도화까지 이동한다. 이동하면서 석수포, 봉산 마을, 중산 마을을 거쳐서 간다.

 

익금 마을에서 벗어난 길은 국도 진입로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국도 쪽으로 이동하는 길, 나무로 막힌 해안에서 잠시 열린 시야 속에서 익금 마을 앞바다로 오 형제도, 수락도 등이 보인다. 이 섬들은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한 섬들이다.

 

길이 77번 국도와 합류하면서 이제 익금마을 풍경과도 안녕이다. 

 

국도로 들어선 길은 포두면에서 도화면으로 넘어간다. 국도변의 가로수 때문에 풍경을 보기는 어렵지만 가끔씩 열리는 바다 풍경으로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는 덕중리 오돈등산 자락도 볼 수 있었다.

 

길은 도화, 봉산리 방면으로 우회전하는 석수포에 이르렀다. 석수포에서 보는 바다 풍경을 뒤로하면 69코스도 천등산을 넘으므로 당분간 바다 볼일이 없다.

 

석수포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봉산로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이동한다. 우리는 석수포 버스 정류장에서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쉬었다 가기로 한다. 정류장 바로 뒤로 주택이 하나 있었는데 할머니 두 분이 우리를 보시며, 뭐 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눈빛이시다. 

 

봉산로 도로를 쭉 따라가도 68코스의 종점에 닿지만 남파랑길은 봉산로를 6백여 미터 따라가다가 좌회전하여 농로를 통해서 도화에 이른다. 오후 5시를 바라보는 시각, 서산으로 지고 있는 석양이 눈 부시다.

 

들판에서는 보리가 익으며 황금빛 물결을 만들고 있고 바로 옆 논은 모내기가 끝나서 어린 모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길은 봉산로 도로에서 좌회전하여 농로로 들어간다. 남북으로는 산들이 병풍처럼 바람을 막아주고 평야 가운데로는 덕중제 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이 흘러 바다로 나간다.

 

봉산로 도로에서 들어온 농로는 멀중뫼라는 산 아래까지 들어와서 산아래 구불구불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산 아랫 자락을 따라가는 농로에서 바라본 들판 건너편 풍경은 오늘 68코스 여정을 함께 했던 마북산 자락이다. 마북산은 ㄴ자를 옆으로 뒤집어 놓은 형태로 그 서쪽 끝은 오늘의 목적지인 도화까지 이어진다. 산 꼭대기에는 우주센터에 기상 정보를 제공하는 기상관측소도 보인다. 산 중턱으로는 엄청난 태양광 단지가 자리를 잡았다. 남향이니 입지는 좋아 보인다.

 

눈부신 석양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서쪽으로 움직인다.

 

모내기가 한창인 들판 너머로 기상관측소 아래로는 봉산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논이 많은 지역에는 소를 키우는 농장도 많은 법, 이곳도 예외는 없다. 농장을 지나면서 피할 수 없는 소똥 냄새는 이제는 정겹기까지 하다. 그런데 냄새를 맡으며 생각해 보면 소똥에서 나는 냄새와 소 먹이 풀에서 나는 냄새가 거의 동일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농장 근처에는 보통 공룡알, 초대형 마시멜로라고도 하는 소먹이 풀을 쌓아 놓는데,  이것은 베일러라는 장비로 볏짚이나 풀을 둘둘 말아서 비닐로 랩핑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 소먹이 풀에서 나는 냄새와 소똥 냄새가 거의 비슷하다는 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일 수 있다.

 

들판 건너편으로 덕중제가 보이는 지점에서는 농로가 끊어지기 때문에 길은 잠시 중산 마을 쪽으로 돌아서 가야 한다.

 

마을 꼭대기에 있던 쉼터의 나무는 정말 인상적이었다. 나무 두 그루가 만들어내는 그림이다. 시간은 늦었지만 또, 잠시 쉬어간다.

 

중산 마을이라는 이름은 마을이 주위의 산들 가운데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골목길로 마을을 돌아간다.

 

언덕 위에도 마을 나무 두 그루가 있더니 언덕 아래에도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인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낸다. 나무만 보아도 마을이 좋아 보인다.

 

중산 마을을 벗어나 다시 농로를 걷는다. 한창 모내기를 준비하고 있는 논을 보니 돌을 쌓아 만든 논이다. 한 뼘의 땅이라도 더 이용하려는 선조들의 피와 땀이 어려있는 곳이다.

 

다시 농로를 걸어 서쪽으로 향한다. 오후 6시를 넘긴 시각, 오늘 하루 걷기 시간은 11시간을 넘기고 있다. 서산의 태양은 지치지도 않는지 강력한 빛을 내뿜고 있다. 

 

미세먼지나 해무가 없다면 붉은 석양에 온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었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렇지 않다. 대기 중에 조금씩 안개가 생기는 느낌도 있다.

 

농로를 걷던 길은 잠시 77번 국도를 타고 올라가지만 다시 농로를 통해 도화 읍내로 향한다.

 

멀리 당곤 마을이 보인다. 을사오적에게 칼을 꽂았던 독립지사 기산도의 유적지가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논 한가운데 섬처럼 서 있는 소나무도,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보리들도 서산에 지는 태양에 아름답게 빛난다.

 

길은 농로에서 도화 읍내를 관통하는 77번 국도로 올라서면서 길었던 오늘의 여정을 마무리한다. 

 

숙소를 찾아가는 길에 가나안식당이란 곳에서 1만 원짜리 백반 정식을 먹었는데 1만 원의 가치를 하는 집이었다. 인근에 마트도 있고 여관도 있어서 좋았으나 여관에 대한 기대 수준이 높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숙소 수준은 겨우 참아 줄 만한 수준이었다. 5월 중순임에도 날씨가 후텁지근해서 에어컨이라도 돌리고 싶었으나 에어컨이 돌지 않으니 옆방에서는 문을 활짝 열어 놓아서 팬티만 입은 남자들이 누워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광경을 어쩔 수 없이 봐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아무튼 잠시 쉬어 가는 곳으로는 참을만했다. 천등산을 올라야 하는 내일을 기약하며 휴식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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