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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파랑길을 걸으며 가장 황당했던 코스. 별다른 공지도 없었는데 길도 막히고 우회로도 없었다. 순천만 습지를 앞두고 용산 전망대를 거쳐 순천만 갈대 군락지로 가야 하는데 용산 전망대로 가는 데크 계단은 입구를 꼼짝 못 하게 막아 두었다. 주위를 둘러보다가 산 아래 해안을 따라가는 길을 발견하고 가다 보니 갈길이 아니었다. 더구나 만조 때라 길은 더 찾기 어려웠고 어찌어찌 원래의 길로 합류할 수 있었지만 다시 생각해도 갈길이 아니었다.
해변 갈대숲까지 물이 가득 들어온 농주리 해변을 걷고 있는 남파랑길은 멀리 전망대가 있는 용산을 보면서 걷는다.
용산을 앞둔 농주리 해변에는 해당화도 심어 놓았다.
붉은 해당화를 감상하며 즐거워할 때만 해도 앞으로 우리에게 닥칠 황당한 미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가 방문할 4월 중순만 해도 조류독감 때문에 3월까지는 61-1코스로 우회할 수 있다는 공지는 있었지만 용산 전망대로 가는 길을 막아 놓았다는 공지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두루누비 페이지를 보니 4월부터 10월 말까지 열리는 순천 정원 박람회 때문에 61코스와 61-1 코스를 폐쇄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아마도 뒤늦게 지자체 요청으로 공지를 올린 모양이다. 용산 전망대로 오를 것을 생각하며 심호흡을 하고 계단 앞에 서니 길을 아주 막아 놓았다. 우회로라도 있으면 돌아가면 좋겠지만 우회로도 없다. 얼마나 황당하던지, 계단 옆을 타고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우리 뒤에 장우산을 들고 혼자 걸으시던 남성 어르신이 있었는데 그분도 앱을 꺼내서 이것저것 살펴보셨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다가 해안 쪽 오솔길을 발견했다. 낚시금지라는 팻말이 있는 것으로 보아서 낚시꾼들이 다니던 길인 모양인데 산아래 해안선을 따라가는 길로 생각하고 일단 움직여 보기로 했다. 장우산을 들고 혼자 걷던 분도 우리를 따라오셨다. 다녀온 후기지만 다시 갈길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갈 길이 아니다.
해안길은 초반에는 다닐만했다. 사람들이 많이 다녔는지 확실히 길의 모양이 있었다. 사람들의 수많은 발자국이 만든 길임에 틀림없었다.
길은 산과 해안선이 만나는 딱 그 경계선을 타고 이어졌다.
용산 바로 아래로 이어지는 갈대숲과 함께 하는 길이었다.
문제는 갈대숲으로 튀어나간 큰 바위 앞에서 길이 더 이상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이제 진흙탕에 신발이 살짝 빠질 수도 있는 길이었다. 신발이 젖지 않으려면 바위를 타야 하는데 그럴만한 바위도 아니었다.
이제는 갈대밭 사이를 헤쳐 지나간다. 신발이 젖지 않게 조심조심 전진해 가는데, 갈대밭 사이 구멍으로 게들이 돌아다닌다. 사람 발자국 소리에 놀라 후다닥 숨기에 바쁘다. 바깥에서 보면 누런 가을의 갈대 모습뿐인데 갈대밭 사이에서 보니 게도 돌아다니고 갈대도 푸른 잎을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만난 게는 순천만 습지의 또 다른 주인공인 농게다. 농게 사진을 찍느라 멈추어 서면 우리를 따라오시던 분도 멈추시기 때문에 미안한 마음도 있고 쫓기듯 걷는 것도 부담스러워 먼저 가시라 했다.
길이 없으니 이제는 사람이 다닌 흔적을 찾아 길을 뚫어야 하는 상황이다. 앞장서 가시는 분이 길을 가다 위험하다 싶으면 큰 소리로 경고해 주시기도 하셨다. 지금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 굵은 파이프를 설치했던 적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나마 파이프가 길잡이 역할을 해주기도 했다. 물론 파이프가 물속으로 들어가거나 높은 경사면으로 가는 구간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가끔씩 보이는 용산 앞바다의 풍경을 보면서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절벽 구간을 지날 때는 아찔한 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때로는 길 비슷한 구간을 지나며 순천만 습지의 경관을 바라보는 여유를 누리기도 한다.
예상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던 길 찾아가기는 가끔은 아찔한 길도, 가끔은 환상적 뷰도 만나게 한다.
길 끝자락에서 절벽길을 보니 우리가 어떤 길을 헤쳐온 거야! 하며 아찔하다.
이제 멀리 순천만 습지와 함께 배수 갑문 인근으로 갈대 군락지로 이어지는 길도 보인다. 얼마나 걸었을까? 앞서 가시던 어르신께서 길이 없어요!라고 외치시더니 잠잠하시다. 아무래도 길을 찾아가신 모양이었다. 장애물에 도착하고 보니 어르신이 왜 길이 없다고 하셨는지 이해가 되었다.
아무튼 길도 막히고 우회로도 없어 황망함으로 시작했던 길은 배수 갑문 옆의 쉼터를 통해서 원래의 길로 합류하게 되었다. 입장료를 받자니 다니는 사람이 많지 않고, 입장료를 받는 박람회장이니 그냥 열어 놓을 수도 없는 지역의 입장도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4월 초부터 경로 폐쇄 공지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먼 길을 달려와 61코스의 시작점인 와온 해변에서 걷기를 시작했다가 농주리 해변에서 그냥 돌아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원래의 길이라면 용산 전망대에서 내려왔어야 하는 길이었다. 이곳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용산 전망대로 향하고 있었다. 전망대까지 왕복으로 40분이 걸린다고 한다. 순천을 알리는 아름다운 조형물이 있었지만 이날부터 순천에 대한 인상이 급격하게 달라졌다. 개인의 경험에 따라 한 도시에 대한 인상이 이렇게도 바뀌는구나 하는 경험을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어렵게 길을 찾았던 용산과 산 아래 쉼터를 뒤로하고 갈대 군락지에 놓인 데크길을 따라 길을 이어간다. 평일이고 보슬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갈대 군락지의 가을 갈대를 잘라 놓으니 푸릇푸릇 올라오는 갈대들을 볼 수 있다.
데크길 한쪽은 가을 갈대를 잘라 푸릇푸릇 올라오는 갈대를 볼 수 있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봄을 맞아 새롭게 올라오는 갈대는 누런 갈대숲에 꽁꽁 숨어 있다. 갈대 군락지에 놓인 데크길을 보면서 인간의 능력이 놀랍기는 하지만 생명의 신비 앞에서는 그저 초라한 모습일 뿐임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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