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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봉산과 봉화산 사이의 계곡으로 산을 내려간다. 사곡리의 점동마을, 사라실 라벤더 치유정원, 본정마을을 지나 마을길을 빠져나오면 백운로 도로 아래를 빠져나와 광양시 사라실 예술촌에 닿는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억만천을 따라 내려가다 석정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광양 경찰서 앞을 지난다.
배나무재를 내려오면서 바라본 사곡리의 풍광이 일품이다. 구봉산과 봉화산 사이의 계곡에 위치한 사곡리는 1970년대에 폐광되기는 했지만 한때는 금광과 은광 광산이 성업했던 곳이라 한다. 사곡리라는 이름도 철광석이 함유된 사철이 많이 난다고 붙은 이름이라는 추정이 있다. 풍광은 광산과는 거리가 먼 아름다운 계곡의 모습이다.
내리막길 걷기는 늘 마음이 가볍다. 게다가 봄기운이 돋고 있는 들판을 내려가는 기분은 그야말로 상쾌하다.
이른 봄 꽃을 피운 탱자가 발걸음을 붙잡는다. 통상 5월에서 6월까지 하얀 꽃을 피운다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은은한 향기를 흘리며 4월 초에 꽃을 피웠다.
우리말에 "탱자 탱자 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가시 울타리 밖에 아무 소용이 없을 줄 알았는데 가시 사이의 영롱한 탱자꽃을 보니 생각이 달라진다. 개인적으로 키워보고 싶은 나무 중의 하나가 탱자나무다. 오늘 만난 탱자 꽃의 향기 말고도 커다란 가시로는 삶은 다슬기를 빼먹고, 가시 줄기를 삶은 물을 바르면 두드러기에 가라앉힌다고 한다. 열매는 향기 자체로 비염에 좋아서 머리맡에 두고 자는 것도 좋고 설탕으로 청을 만들어 차로 마시고 소화도 잘되고 가래도 삭여 준다고 하니 쓸모없는 탱자라고 함부로 말해서는 안 되겠다.
길은 깔끔하게 정비된 점동마을의 사곡 저수지를 지난다. 마을 저수지를 이렇게 깔끔하게 정비해 놓은 곳은 처음 만난 느낌이다.
점동마을 버스정류장 건너편 밭에는 상당한 규모의 라벤더가 심어져 있었다. 이곳에서는 프렌치 라벤더도 노지 월동이 가능하다고 한다. 지금 보다는 6월에 꽃이 만발하며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마을길 옆 어느 집 정원에 박태기나무가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꽃모양이 밥알을 닮았다고 붙은 이름인데 밥티 나무라고도 부른다. 아카시 나무처럼 콩과 식물이기 때문에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고 한다.
당산나무 쉼터를 지나는데 언덕에 자리한 느티나무를 보니 마을의 유구한 역사가 느껴지는 듯하다.
길은 하얀 벚꽃이 반겨주는 본정마을로 진입한다.
본정마을회관 옆에는 할머니 당산나무라는 별칭이 있는 보호수가 마을을 지키고 있다. 수령 4백 년을 바라보는 느티나무인데 4백 년이 넘어가고 있지만 이른 봄을 맞이하며 연한 녹색의 잎을 내고 있다. 올해도 여름이면 짙은 녹음으로 주민들에게 넉넉한 쉼을 제공할 것이다.
샛노란 개나리, 아기 잎을 보이는 은행나무, 하얀 벚꽃까지 이런저런 풍경을 감상하며 사곡로 길을 따라 내려간다.
남파랑길은 마을길 끝에서 국도 아래 굴다리를 통과하여 광양시 사라실 예술촌을 만난다.
굴다리를 빠져나오면 헐벗은 플라타너스가 독특한 풍경을 제공한다. 어릴 적에는 도시에서도 쉽게 플라타너스를 만날 수 있었는데 어느덧 주변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나무가 되어 버렸다. 시야를 가린다고, 전깃줄에 걸린다고, 손이 많이 간다고, 강풍에 약하다고 너무나 쉽게 잘라 버린 까닭이다. 파리 여행을 가본 사람이라면 삭막할 수도 있는 파리 시내를 식혀주는 것은 플라타너스인데...... 아무튼 폐교 앞에서 플라타너스를 만나니 반갑다. 플라타너스에게 봄은 아직 본격적으로 오지 않은 모양이다.
폐교를 예술인들의 공간으로 만든 사라실 예술촌. 우리는 화장실이라도 쓸 수 있을까 싶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꽁꽁 닫혀 있어 결국 사용할 수 없었다.
길은 사라실 예술촌 앞에서 좌회전하여 억만천을 따라 내려간다. 억만천 중간에 길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아무리 작지만 세월교라는 이름도 붙어 있었다.ㅎㅎ
유채꽃이 피어 있는 억만천을 따라 걷던 길은 억만천과 헤어지며 석정마을로 들어간다.
석정마을로 가는 길은 광양역으로 연결되는 경전선 철로 아래를 통과하여 이어간다. 길은 깔끔하고 좋으나 아직 가로수들의 잎이 없으니 그늘 없는 길에서 받는 4월 초의 땡볕은 너무 뜨겁다.
석정 삼거리 인근에서 좌회전하여 굴다리를 통하여 백운로 도로 아래를 지나는데 굴다리에 적힌 "퇴비증산"이라는 문구가 정겹게 느껴진다. 온갖 화학 비료로 쉽게 쉽게 농사짓는 현실을 생각하면 퇴비증산이라는 말도 세월과 함께 흘러간 문구가 되었다.
석정마을을 짧게 지나면 광양경찰서가 보이는 큰길로 나오며 광양읍내와 좀 더 가까워진다. 광양시는 앞서 머물렀던 중동에 시청을 두고 있고 앞으로 우리가 가게 될 광양읍내에는 제2 청사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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