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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월 초등학교 앞의 강변에서 48코스를 끝낸 다음에는 바로 이어서 49코스 걷기를 시작한다. 강변을 따라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과 망덕 포구를 지나 인도교로 배알도를 거쳐서 태인동 해안길을 걷는 여정이다.

 

진월정 공원 바로 앞 강변에서 여정을 시작하는 남파랑길 49코스는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잎과 함께 환상적인 분위기가 주는 약간 들뜬 마음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섬진강 하구로 길게 이어진 섬진강 자전거 도로 위로 하얀 벚꽃이 장관이다.

 

진월정 공원이 위치한 곳은 선소 마을의 입구에 해당하는 곳으로 이전의 남파랑길은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가 진월 공원을 거쳐 다시 나왔지만, 지금은 강변 길을 계속 이어서 걷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진월면사무소도 자리하고 있는 선소 마을은 조선 시대에는 배를 만드는 조선소도 있었고 수군의 선소진이 있어서 선소 마을이라 불렸다고 한다. 선소 마을 민속 공원이라는 비석과 뒤로 보이는 작은 공원을 보니 마을을 아끼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을 짐작케 한다.

 

조금은 투박한 데크길 위로 올라가 길을 이어간다. 자전거가 올라올 수 없는 길이라 이제는 자전거를 피하느라 신경 쓸 필요가 없어졌다. 무접섬 광장이라는 장소를 지나는데 매년 광양 전어 축제가 열리는 곳이다. 무접섬이라는 이름은 임진왜란 당시에 군량미를 쌓아두는 곳이라고 미적섬이라 했는데 이것이 무접섬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1960년대, 1970년대에는 전어배들이 전어를 내리는 곳이었다.

 

망덕 포구 데크길의 난간에는 이목을 끄는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발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전어배 만들기부터 그물 만들기, 고기잡이 과정까지 우리의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보통 전어배 두척으로 전어잡이를 했는데 전어배 한 쌍을 "한마쪼리"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나일론 그물이 일상이라 너무도 자연스럽지만 옛날에는 물고기 잡는 그물을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난간에 적힌 내용을 보니 칡, 피나무, 삼 껍질등이 주 재료였고 소나무 껍질로 강도를 강하게 했다고 한다. 그물 만들고 보수하는 것 자체가 고된 노동이었을 그때를 생각해 보면 수산물을 쉽게 접하는 지금의 환경은 도저히 상상 불가이다.

 

진월 공원 끝자락에는 유동주의 시비들이 세워져 있는 공원도 마련되어 있었다. 길은 망덕산을 바라보며 "윤동주와 망덕포구 시비" 지나 진월교를 건넌다.

 

망덕산 아랫 자락으로 좁게 자리한 망덕 포구 해안 끝자락으로는 우리가 거쳐갈 배알도와 함께 멀리 산업단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섬진강 망덕 포구 먹거리 타운 홍보판에는 전어, 강굴, 재첩을 적어 놓았다. 배알도 입구까지 많은 식당들이 즐비한 곳이다. 인근에는 남해고속도로 진월 IC가 위치한 지역이기도 하다.

 

백두대간 호남정맥의 끝자락이 망덕산이라는 안내판을 보니 외환위기 당시 전 직원이 백두대간을 나누어서 걸었던 추억도 가물가물 떠오른다.

망덕 마을의 공중 화장실은 배모양의 독특한 모양을 가졌다. 가옥 뒤편의 콘크리트 옹벽 배경이 아쉽지만, 영화에서 만났던 윤동주 유고 보존 정병욱 가옥을 만나본다. 

 

정병욱 박사와 그의 어머니의 노력이 없었다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도 윤동주도 그 빛을 보지 못했을 것을 생각하며 한 인간의 운명과 명운에 대한 잡념에 빠져본다.

 

길을 걸으며 눈으로 들어오는 특이한 풍경에 호기심을 갖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 망덕 마을 앞 물 위 떠있는 커다란 해상 가옥은 과연 그 정체가 무엇일까? 하는 의문을 품는다. 남파랑길을 걸으며 종종 만났던 해상펜션과는 그 규모가 확연하게 다르다. 복층 구조에 집 앞에는 배도 정백해 놓은 것이 살림집 수준이다. 적법일까? 수도와 화장실, 전기는 어떻게 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의 연속이다. 광양에 들어오면서 자주 만났던 빨간 시내버스도 인상적이다. 빨간 바탕에 흰색으로 매화를 그려 넣었다.

 

망덕포구 선착장에서는 한 어민이 강굴 작업이 한창이다. 벚꽃이 필 무렵 난다고 해서 벚굴이라고도 불린다. 언뜻 보아도 크기가 상당하다. 바다굴, 참굴은 겨울이 제철이라면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곳에서 자라는 강굴은 봄이 제철이다. 통상 물이 빠졌을 때 잠수로 강 바다에 있는 강굴을 채취한다. 다른 강 하구에서도 강굴이 있기는 한데, 섬진강 유역이 전체 강굴 생산량의 90%를 차지한다고 한다.

 

망덕 마을 끝자락, 배알도로 넘어가는 해상 인도교가 눈앞으로 성큼 다가왔다. 2018년에 설치되었다. 이전의 남파랑길은 섬진강 자전거 도로가 지금도 넘고 있는 태인대교를 건넜지만 지금은 해상 인도교로 배알도를 거쳐 태인도로 넘어간다.

 

깔끔하게 정비된 해상 인도교를 통해 배알도로 넘어간다. 섬의 모양이 망덕산을 향해서 허리를 굽히고 절하는 모양이라고 배알도라 했다고 한다.

 

해상 인도교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좋다. 서쪽으로는 섬진강 자전거 도로가 넘는 태인대교이고 바로 남쪽으로는 우리가 배알도를 거쳐서 태인도로 넘어갈 또 다른 인도교가 보인다.

 

배알도는 나들이 나온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버스 타고 온 단체 여행객도 있었으니 사람에 치일 정도였다.

 

배알도 반대편의 해상 인도교를 건너는데 강변 모래톱에서 놀고 있는 독특한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태인대교 앞의 모래톱에서 평화롭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네 강의 예전 모습은 콘크리트가 아니라 바로 저런 모습이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곳에 만들어진 모래톱에 물까지 맑다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해상 인도교를 내려오면 배알도 수변공원인데 공원 입구에서는 섬진강 자전거 도로를 완주한 라이더들이 인증 센터에서 인증을 받느라 여념이 없다.

 

배알도 수변공원은 캠핑 나온 사람들, 자전거 라이더들, 나들이 나온 관광객들, 운동하는 사람들이 섞여 북적북적 정신이 없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잠시 휴식을 취했지만 사람들이 많아서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공원을 떠나 태인도 북쪽 해안길을 걷는다. "감성의 강 섬진강 시점"이라는 표지석에 눈길이 간다. 이곳의 주소는 광양시 태인동인데 지금은 간척과 산업단지가 들어서서 옛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지만 태인도라는 유서 깊은 섬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김양식을 시작한 곳이고 전우치전의 배경도 이 섬이다.

 

태인대교 아래를 통과하여 태인도 북쪽 해안 도로를 따라서 길을 이어간다. 뒤로 우리가 지나온 배알도와 해상 인도교가 멀리 아른거린다.

 

도로 표지판에는 광양 제철소가 등장했다. 산업단지를 앞두고 있는 것이 마음에 조금은 불편했는데 도로변에 존재를 뽐내고 있는 붉은 꽃들 덕택에 마음이 가벼워진다.

 

지면패랭이꽃이라고도 불리는 꽃잔디이다. 

 

지면을 완전히 덮고 있는 꽃잔디를 보니 왜 이름에 잔디가 들어갔는지 공감할만하다.

 

보랏빛 꽃잔디와 어둑한 갯벌을 동시에 보니 꽃빛이 더욱 또렷하다.

 

꽃잔디는 어린 가로수들 주위로도 자리하여 삭막할 것 같은 이곳을 밝히고 있다. 길은 점점 더 산업 단지에 가까워지고 좁은 길목에 위치한 장내 포구를 향해서 길을 이어간다. 좁은 바다 건너편은 금호동인데 남파랑길은 제철소 정문을 지나 한 바퀴 돌아 바다 건너편으로 오기 때문에 우스개 소리로 헤엄쳐서 건너면 좋겠다는 말도 하지만 지금은 소용이 없다. 그런데, 포털 지도를 보면 얼마가지 않아 이곳과 바다 건너편을 연결하는 작은 인도교가 만들어질 모양이다. 그때가 되면 산업 단지 앞을 지난 필요가 없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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