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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도와 남해도 사이의 환상적인 죽방렴 풍경을 보면서 남해도로 넘어온 남파랑길은 남해도의 우측 하단에 있는 삼동면을 먼저 걷기 시작한다. 시계 방향으로 남해도를 돌아간다. 오늘은 39코스와 40코스에 이어서 41코스 일부도 걸어야 하는 쉽지 않은 여정이다. 창선교를 지나 좌회전하면 바로 삼동면 사무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길은 해안으로 나가서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서 죽방렴도 지나고 전도 마을을 지나 둔촌 마을에 이른다.

 

남파랑길 39코스는 남해 바래길 6코스 죽방멸치길과 함께 걷는다.

 

39코스는 삼동면 사무소 앞에서 좌회전하여 해안으로 나가는 것으로 시작한다. 우리가 건너온 창선교를 바라보며 해안으로 나간다. 창선교 위에서 바라보는 죽방렴 풍경은 정말 일품이었다.

 

지족항의 포구를 지나가는 길, 좌측 바다로 방죽렴을 보면서 걷는다.

 

해안 도로가 경남 해양 과학 고등학교 앞을 지나는데 학교 방음벽에는 죽방멸치길이라는 길 이름답게 멸치를 붙여 놓았다.

 

도로 옆으로 죽방렴까지 데크길을 놓아서 죽방렴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도록 한 죽방렴 관람대도 있었다.

 

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5월에서 8월 사이라면 팔닥팔닥 뛰는 물고기와 반짝이는 멸치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는 시기는 3월에서 12월까지라고 하니 지금은 볼 것이 없다. 

 

시속 13~15km의 거센 물살이 지나는 지족 해협에 조류가 흐르는 반대 방향으로 V자 형태로 기둥을 박고 그물을 쳐서 간조 때 갇힌 물고기를 거두는 어업으로 거센 물살이 있는 곳에 사는 물고기라 맛도 좋다고 한다. 죽방렴 멸치는 주변에서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선도도 좋고 상처와 비린내도 없다 하니 가격차가 엄청남에도 죽방렴 멸치를 찾는 모양이다. 심지어 "죽방렴급 멸치"라고 홍보하는 상품도 있었다. 관람대를 빠져나와 길을 이어간다.

 

따스한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동쪽으로 동쪽으로 계속 이동한다.

 

물이 빠진 갯벌에는 푸릇푸릇 파래가 존재감을 뽐낸다. 파래는 이곳 갯벌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멀리 보이는 전도 마을 주민들의 소득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남해군 농기계 임대 사업소를 지나 전도 마을로 향하는 길에서 작은 공원을 만나는데 바다를 바라보도록 설치된 벤치가 상당했다. 지족해협의 바다를 보면서 멍 때리기에 최적인 장소인 것은 맞는 것 같은데 상당수의 벤치를 마치 극장처럼 바다를 바라보도록 배치해 놓은 것은 정말 특이했다.

 

잠시 멈추어 서서 우리가 어제 걸어왔던 창선도 바다와 물이 빠지며 존재를 드러낸 갯벌을 바라본다. 이른 아침부터 감성 충만이다.

 

삼동면의 상징 조형물도 전도 마을 재활용품 수집함도 모두 무지개 빛깔이다. "재활용 동네 마당"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만난 재활용품 수집함 중에는 최고로 깔끔했다. 아무리 좋은 시설도 사용하는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모양과 생명주기를 가지게 되는데 이런 깔끔한 모습들이 모든 지역으로 퍼졌으면 좋겠다.

 

전도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깔끔한 그림을 그려 놓은 방호벽과 작은 습지가 여행자를 맞는다. 전도 마을이라는 이름에는 돈 전(錢) 자를 사용하고 있는데 예전에는 마음에서 소금을 생산하며 부자 마을이었다고 한다. 섬이었지만 간척으로 육지화된 마을로 명품 마을 소리를 듣고 있는 마을이다.

 

길은 전도 마을 외곽으로 해안선을 따라간다.

 

전도 마을 포구를 지나 해안에 늘어선 커다란 나무들을 보니 전도 마을이 유서 깊은 마을 맞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 끝에 있는 쇠두름산 앞에서 우회전하여 산 아래 자락을 따라 남쪽으로 이동한다.

 

쇠두름산 아래 자락으로 마을 길과 함께 가옥들이 이어지는데 담벼락을 예쁜 벽돌로 같은 형태로 쌓아 놓았다. 동네 미관을 가꾸는데 벽화도 좋지만 같은 형태의 벽돌 담장을 쌓는 것도 좋아 보였다. 이곳뿐만 아니라 마을 전체가 벽돌 담장을 가진 특이한 마을이다. 마을에 마을 찜질방도 있으니 훌륭하다.

 

쇠두름산 아래 자락을 돌아가는 길, 전도 마을을 빠져나오면 농로를 따라서 길을 이어간다.

 

농로로 작은 언덕을 넘어 남해 청소년 수련원 옆을 지나는 길이다.

 

남해 청소년 수련원 옆을 지나는데 건물 규모가 상당했고, 놀이 시설과 같은 부대시설도 갖추고 전용 마트도 운영하고 있었다. 최대 1천 명을 수용한다는데 상상이 가질 않는다. 수학여행을 해외로 나가는 시대에 과연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만, 수련원 앞에 펼쳐진 넓은 해안은 매력적이었다. 웬만한 학교의 전교생이 와도 수용 가능하다 싶다. 아이들이 저 바다에 자유롭게 풀어놓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힐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정글에 방치하지 말고 이런 자연을 즐기게 하는 공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도 해본다. 현실과 너무나 동떨어진 상상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남해 청소년 수련원을 지나면 다시 도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둔촌 마을에 들어선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는 말 대신에 "둔촌 사랑", "보석처럼 빛나라"라고 쓰인 장승도 이채롭고, 마을 입구의 커다란 나무들도 이 마을의 역사를 가늠케 한다. 둔촌 마을이라는 이름은 예전에 이곳에 조정으로 올라가는 곡식을 두던 창고가 있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오랜 세월을 마을과 함께했던 고목을 가진 마을이 부럽다. 나무의 나이만큼이나 마을도 성숙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되고 사람들도 나무만큼이나 푸근하고 여유로울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된다. 둔촌 마을은 빨간 지붕을 특색으로 가지고 있었다. 양옥집 빼고는 모든 집의 지붕이 빨간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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