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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36코스 걷기를 끝내고 단항 마을에 위치한 숙소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한 우리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시 창선파출소로 돌아와 남파랑길 37코스를 시작한다. 창선면 읍내를 빠져나가 흥선로 도로변을 걷다가 37코스에 가장 인상적인 고사리밭길 걷기를 시작한다.

 

숙소에서 바라본 일출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하루 긴 여정의 에너지를 받아본다. 동쪽 바다로 떠오르는 태양은 삼천포 화력 발전소의 굴뚝도 남해 바다의 섬들도 무대의 배경으로 만들며 내게로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듯하다.

 

남파랑길 37코스의 이전 코스는 남해군 공공 승마장을 거쳐서 해안으로 나가서 해안길을 걸어갔지만, 지금은 읍내를 가로질러 걷다가 좌회전하여 3번 국도 방향으로 이동하여 국도 아래를 통과해서 흥선로 도로를 걷는다.

 

읍내 곳곳의 식당은 일요일 아침에도 불구하고 맛있는 냄새가 솔솔 풍겨온다. 이른 아침 숙소에서 아침을 해결하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들어가서 배 두둑하게 한 끼 챙겨 먹고 가고 싶은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아침 식사를 두 번 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른 아침 쌀쌀한 날씨를 가르며 3번 국도 아래를 통과해서 길을 이어간다. 

 

국도를 빠져나오면 가인리 방향으로 좌회전하여 흥선로 도로변을 따라 걷는다.

 

흥선로 도로변에는 보기 드문 비자나무가 가로수로 심어져 있었다. 천천히 크고, 병해충에 강하고, 오래 살고, 상록수인 데다가 목재의 품질도 좋다고 하니 따뜻한 남부지방에서는 훌륭한 가로수 맞다. 그런데, 흥선로라는 도로명의 흥선은 고려 충선왕 당시 창선도를 부르는 이름이었다고 한다. ㄴ자 형태의 창선도 좌측을 서부로와 동부대로 도로가 감싸 돈다면 창선도 우측은 흥선로 도로가 한 바퀴 돈다. 앞으로의 여정에서 자주 만날 수밖에 없는 도로다.

 

흥선로 도로에서 부윤리로 가는 갈림길 인근에는 창선면 면민 동산이라는 이름의 작은 공원이 자리하고 있었다. 창선면의 중심지라는 것이 실감이 난다.

 

이곳이 섬인가 싶을 정도로 부윤리 방향은 논이 기다랗게 이어진다.

 

섬 반대편인 적량으로 가는 갈림길을 만나지만 남파랑길은 계속 창선도 동쪽 끝자락인 가인리를 향해서 나아간다.

 

별도의 인도 없이 도로변을 걷지만 차도 많지 않고 갓길도 넓어서 도로변을 걷고 있는지 느끼지 못할 지경이다. 창선도의 가장 동쪽으로 가는 갈림길을 지나고 오룡리에서 나오는 오룡천도 건너서 길을 이어간다.

 

좌측으로 노전 마을을 지나는데 도로 바로 옆으로 낮은 지대인데도 고사리 밭이 펼쳐져 있다. 고사리는 높은 산지에서만 서식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도로변을 걷지만 도로변에서 만나는 풍경만큼은 일품이다. 이번에는 2월에 만나는 창선도의 산수유다. 추운 날씨에도 이제 봄이 오고 있다고 외치고 있는 산수유에 위로를 받는 길이다.

 

도로변의 대나무 숲에도 감탄이 이어진다. 대나무 숲을 지나면 눈앞으로 고사리밭을 따라 이어지는 오르막길이 다가온다.

 

눈앞으로 선명하게 보이는 오르막 길에 억! 하는 거침 숨소리와 경사 급한 언덕으로 자리 잡은 고사리밭을 보면서 와우! 하는 탄성 소리가 겹쳐진다.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산중에 자리한 고사리밭을 본 적이 있지만 이처럼 산 전체가 고사리밭인 것은 처음 본다.

 

잔디밭이 펼쳐진 공원처럼 계곡 전체가 고사리밭으로 펼쳐져 있는 생전 처음 보는 풍경에 그저 놀라움뿐이다.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자리한 고사리밭에서 사람들은 대체 어떻게 고사리를 수확할까? 하는 호기심도 생기고 고사리밭을 만들기 위해 무분별하게 산림을 훼손한다면 산사태 우려도 있을 텐데 이 동네는 괜찮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소나무 숲길을 지나 능선을 오르니 산 전체가 고사리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고사리밭이 펼쳐져 있다. 고사리를 채취할 시기에는 통행을 제한한다는 이유를 이해할만했다.

 

산 능선에 오르니 가인리 고사리밭의 전경에 압도되는 분위기다. 와우! 하는 감탄사 연발이다. 가인리에는 214미터의 높지 않은 여봉산이라는 이름의 산 하나가 자리하고 있는데 이 산 자락의 언덕들에 수많은 고사리밭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이곳에서의 본격적인 고사리 재배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에 식포 마을에 살던 한 주민이 자신이 소유하던 임야에 고사리밭을 일구면서 시작된 것이라 한다. 그 이전만 해도 산중에서 자라는 자연산 고사리를 채취하는 것이 고작이거나 중국산을 수입하는 것이었을 텐데, 생활 수준이 올라가고 좋은 먹거리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고사리 재배가 안정적인 수입을 가져다주니 가인리 전체로 퍼진 것이 아닌가 싶다.

 

길은 고사리밭이 펼쳐진 산을 넘어서 식포마을로 내려간다. 가인리 고사리밭길의 원조격인 마을로 향한다.

 

식포 마을로 내려가는 길, 경사가 급해 보이는 계곡 건너편 산에도 고사리밭이 자리하고 있다. 남해를 중심으로 시작된 고사리 재배는 고소득 작물로 인식되며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는데, 이제는 그 마저도 기후 변화와 고령화로 생산량이 줄고 있다고 한다. 국내 생산량이 약 8천 톤 내외라면 해외 수입량은 국내 생산량의 약 1.4배를 차지한다고 한다.

 

방송에서 울릉도의 산나물 재배 등에 활용하는 모노레일을 본 적이 있지만 이곳 고사리밭길에서 모노레일을 실물로 만난다. 모노레일이 고사리 채취와 운반 등에 큰 도움을 주겠지만, 농민의 고령화라는 파도에는 별 효과가 없지 않을까 싶다. 젊은 사람들이 살아야 할 텐데......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해본다.

 

식포 마을로 내려오니 남파랑길, 남해바래길 표지판 아래에 고사리밭길은 3월 하순에서 6월까지는 예약제로 운영한다는 안내판이 붙어 있다. 도시 사람들이야 환상적인 풍경을 즐기면 그만이겠지만 이곳 주민들 입장에서는 생계가 달린 일이니 그럴 법도 하는 생각이다. 2월에 이곳을 지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식포 마을 내려온 남파랑길은 마을길에서 우회전하여 마을 회관을 지나 북쪽으로 오르막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고사리밭 언덕을 넘어야 한다. 경사가 급해서 헉헉거리며 구불구불 산을 넘어야 하는데 산을 넘으면 바다와 함께 펼쳐진 고사리밭이 또 다른 신세계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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