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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후박나무로 유명한 단항 마을에 들어선 남파랑길 36코스는 단항 마을 해변을 걷다가 마을의 명물 왕후박나무를 만나고 임도를 통해서 연태산과 대사산 사이의 고개를 넘어 당항 마을로 넘어간다.

 

1024번 지방도 서부로 도로변을 걷던 남파랑길은 단항 마을 회관 앞에서 우회전하여 해변으로 나간다. 

 

해변으로 나오니 넓게 펼쳐진 바다를 눈에 담을 수 있어 좋다. 남해도와 사천 땅으로 호수처럼 둘러싸인 바다지만 한낯 미물과도 같은 사람의 시선에는 눈을 시원하게 하는 넓은 바다이다. 정면으로는 작은 소초도가 좌측 포구 너머로는 대초도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물이 들어와 있지만 물이 빠지면 소초도까지 바닷길이 열리기도 한다고 한다.

 

길은 단항 마을 포구에서 좌회전하여 왕후박나무를 만나러 간다. 당항 마을 표지판이 등장했다.

 

마을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멀리서도 웅장한 자태를 뽐내는 천연기념물 299호 왕후박나무를 볼 수 있다. 나무의 수령이 500년이 넘는데도 여전히 푸르르다. 마을에서는 매년 나무 앞에서 마을의 평안과 풍어를 기원하며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오랜 세월 이곳에서 건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나무를 귀하게 여기는 마을분들의 마음도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남파랑길은 왕후박나무 근처를 가지만 나무를 직접적으로 만나지는 않고 우측 마을길을 통해 다시 해안으로 나온다.

 

다시 해안으로 나오니 이번에는 정면에서 대초도를 만난다. 마을 분들은 그냥 큰 섬, 작은 섬이라 부른다고 한다. 대초도를 뒤로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해안 반대편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정면으로 연태산 자락을 보면서 오르는 길이지만 방향으로 치자면 남쪽으로 향하는 길이다. 강렬한 정오의 햇살이 가끔씩 밀려오는 쌀쌀함 마저 녹여준다.

 

길은 다시 서부로 도로를 만나서 잠시 도로변을 걸어야 한다. 대벽 마을과 소벽 마을로 이어지는 길이다.

 

도로변을 걷다가 얼마가지 않아 길을 건너 산으로 오르는데 도로변에서 꽃을 피운 매화를 만났다. 아침에는 여전히 서늘한 날씨인데 매화를 보니 이제 봄이 오는 것이 실감이 난다.

 

하얀 꽃도 아름답지만 매화의 향기는 상긋하고 달콤한 것이 기가 막히다. 매난국죽에서 매화는 선비의 기풍과 고결함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보기 좋은 만큼 향기가 빼어난 꽃이다. 그윽하면서도 강렬하게 사람을 이끄는 매력이 있다.

 

서부로 도로를 뒤로하고 연태산 자락을 차곡차곡 오르기 시작한다.

 

땀을 흘리며 오르막길을 얼마나 올랐을까? 산 아래로 단항 마을 앞바다와 함께 남해도도 보이고 하동 땅의 높다란 금오산도 눈에 들어온다.

 

연태산 자락의 임도에서 만난 편백나무숲. 편백숲은 만날 때마다 늘  숲 자체에서 독특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그 독특한 기운은 항상 "참 좋다"라는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소나무들이 이 숲에는 잘생긴 편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있어!라고 이야기 하는 듯하다. 편백숲이 좋기는 하지만 다양성이 있는 숲만큼 건강한 숲은 없을 것이다. 경제성에 파묻혀 생물의 다양성을 놓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연태산 자락의 임도를 걷던 남파랑길은 중간에 대벽 마을에서 올라온 포장길을 만나 고개를 넘는다. 숲 너머로 반대편의 대사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당항 마을로 가는 고개를 오르는 길 우측으로는 오랜 세월의 흔적을 품고 있는 돌담을 만난다. 이전에는 이곳이 다랭이 논이었을지, 민가가 있었던 곳인지 모르겠지만, 돌담 사이에 뿌리내린 나무들은 조금씩 사람의 손길을 지우고 있었다.

 

나무뿌리에 무너진 돌담을 보니 사람의 능력이 엄청난 것은 사실이지만 억겁의 시간 속에 개인의 시간은 티끌도 되지 못하고, 자연의 복원 능력은 사람의 능력을 초월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좌측으로는 간벌한 숲 사이로 작은 편백나무들이 다음 세대를 준비하고 있다.

 

대사산 언덕으로 자리 잡은 누런 봉분들을 보니 반백년을 넘긴 나이에 누리는 여유에 대한 감사와 세월의 무상함이 겹쳐진다.

 

이제 고개를 넘어 당항 마을을 향해 내리막길을 걷는다. 종점까지 9.38Km가 남았다고 한다.

 

당항 마을로 내려가는 길, 돌담 위로 풀숲이 우거진 것을 보니 그 옛날 땅에서 돌을 골라내어 돌담을 쌓으며 밭을 만들고 가족을 부양했을 농민들의 노고를 상상하게 된다. 하루 종일 일해도 가족들의 입에 겨우 풀칠할 정도였을 그들의 노고가 무색하게도 곳곳에 이렇게 방치되는 밭들이 늘어나는 모습이 안타깝다. 대형 농기계가 접근할 수 있는 곳들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마땅히 쉴 자리를 찾지 못했는데, 고사리밭 끝의 옹벽 위에 앉아 잠시 쉬어 간다. 계곡 너머로는 온통 고사리밭이다. 고사리로 유명한 남해 창선도의 모습을 맛보기로 보여주는 모양이다. 고사리는 땅속줄기를 캐서 잘라 심는 방식으로 번식시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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