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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밭이 많았다는 맥전포 마을을 떠나면 공룡 산책길이라 부르는 둘레길을 따라 상족암 군립 공원에 이르게 된다.

 

맥전포에 들어선 남파랑길은 공룡 산책길, 표지판에서는 "공룡 발자국 따라 걷는 길"과 함께 길을 같이 한다. 맥전포는 남파랑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특히 더 반가운 곳이다. 이곳에 남파랑길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우리는 한쪽 구석에 있는 정자에 앉아 이른 점심 식사를 하면서 휴식을 취했다.

 

공룡 산책길은 포구 구석에 있는 마을길을 통해 시작된다.

 

마을길은 어느덧 숲길로 바뀌어 길을 이어간다.

 

숲길을 지나며 경남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에서 하이면 월흥리로 넘어간다.

 

숲길로 고개를 넘어서면 입암마을 전경과 함께 바다 건너로 공룡 박물관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암 마을로 들어서는 길은 지금까지의 남파랑길 중에 가장 특이하지 않았나 싶다. 숲길 이후에 마을 앞의 습지를 관통해야 하는데 임시로 얹어 놓은 것들은 장기적인 관점으로는 아니다 싶다. 길을 바꾸던가 돌다리를 놓던가 하는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월흥리 입암마을로 들어서면 해안으로 나가서 포구를 지나 해안길을 걷게 된다.

 

입암 마을 포구를 지나니 상족암 공룡길이라는 표지가 등장했다.

 

주상절리하면 양산 주상절리처럼 해안에서 관찰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이곳은 길가에서 주상절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자연의 유구한 역사와 세월을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사는 인간이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이 든다.

 

상족암 군립 공원으로 가는 해안길, 바위 해안 위로는 데크길을 설치해 놓았다.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겠지만 공룡 발자국이 있을지도 모르는 바위 위에 굳이 데크길을 설치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상족암 군립 공원을 향해서 걷는 해안길의 인도에는 공룡 발자국들이 새겨져 있다. 공룡들이 이곳을 우리처럼 걷지는 않았을지라도 그 당시 존재했던 생명체가 살았던 시대를 마구 상상하면서 걷게 되는 길이다.

 

깔끔하게 정비하고 있는 상족암 군립 공원으로 진입한다. 아이들 놀이터도 주제는 공룡이다.

 

우람한 소나무들이 존재를 뽐내는 공원 벤치에 앉아 공원 앞바다를 바라보며 잠시 휴식 시간을 갖는다. 남파랑길에서 가끔씩 이런 공간이 등장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다. 화장실도 있고  벤치도 있고 매점도 있으니 걷기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어머니 품 같은 공간이다.

 

공원에서 상족암으로 가려는데 하늘 구름이 마치 철새들이 군무를 지어 날아가는 모양새다. 멀리 보이는 데크길로 상족암을 찾아 나선다.

 

물개 모양의 상족암 조형물을 뒤로하고  제전항으로 향하는 길, 공룡 화석지 해변길 안내판에는 고성에만 공룡 발자국이 5천여 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미국 콜로라도, 아르헨티나 서부 해안과 더불어 세계 3대 공룡 발자국 화석 산지라고 한다.

 

제전항을 앞두고 상족암 모래 해변을 돌아본다. 

 

바위 절벽으로 지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해안 길을 따라 과연 공룡 발자국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호기심을 가지고 길을 이어간다.

 

억겁의 세월을 지나왔을 바위 위에 새겨진 공룡 발자국을 실제로 보니 실감이 나질 않는다. 가지런히 새겨진 저 발자국을 보고 옛사람들은 무엇이라고 설명했을까? 소설 같은 현실에, 누군가 장난으로 깎아 놓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상상까지 하게 된다. 사실 상족암이라는 이름은 바위에 새겨진 발자국 때문에 붙은 이름도 아니고, 해식 동굴이 코끼리 다리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도 아니고 해식 동굴이 상다리처럼 생겼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하긴 한 번도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조상들이 바위에 코끼리를 빗댈 이유도 없다.

 

데크길을 얼마간 걷다 보면 해안 너머로 상족 몽돌 해변에 자리 잡은 경남 청소년 수련원이 보이기 시작한다.

 

수련원 앞의 몽돌 해변은 몽돌 해변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재미가 만들어낸 돌탑 해변이었다. 우리는 굳이 이곳에 돌탑 하나를 더하고 싶지는 않았다.

 

길은 청소년 수련원을 가로질러 해안 끝으로 향한다.

 

남쪽을 향하고 있는 몽돌 해변에서 수평선을 대신하고 있는 것은 커다란 사량도다. 은빛 비늘을 반짝이는 정오의 남해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 바로 옆을 걸으며 만나는 지층들은 대체 이 지구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도저히 상상할 수 없게 만든다. 종교도 철학도 역사도 수많은 이야기들도 그 간극을 채울 수도 없다. 미약한 인간의 두뇌로 이 모든 것을 해석하고 이해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는 일부의 흔적으로 자신의 가설을 증명했다고 확신하겠지만 가소로운 착각이 아닐까?

 

공룡조차도 저 수많은 지층 가운데 일부에 불가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해보면 우리가 모르는 수많은 일들을 파헤치는 마음보다는 내가 자리한 이 지층에서 가치 있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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