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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끝자락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겨울의 시작점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 주말에도 우리 부부는 KTX를 타고 남파랑길 걷기에 나선다. 이번에는 지난번 여행에서 절반을 걸었던 남파랑길 11코스를 마무리하고 13코스까지 걸을 예정이다. KTX를 타고 남파랑길 걷기를 떠나는 것은 이번 여행이 마지막이고 다음부터는 고속버스를 이용할 것 같다. 점점 더 남해안 깊이 들어간다. 마산역을 통해 시내버스로 진동면 시내에 도착하면 지난번 여정에 이어서 시내 구간을 돌아 우산(198m) 아래 자락의 해안을 걸어서 신기리, 고현리, 율티리를 지나 암아 교차로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

 

마산역을 향하는 KTX 열차가 밀양역을 지난 다음에 기차는 한동안 밀양강을 따라 달리는데 차창 밖으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일품이었다. 여행에서는 늘 예상하지 못한 선물과도 같은 순간을 선사받는다.

 

마산역에 내리니 역 우측으로는 장으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마산역시장으로도 불리는 마산역 번개시장이었다. 역 우측 모서리뿐만 아니라 역 진입로 우측으로는 시장 좌판이 쭉 이어져 있었다. 5일장이 아니고 상설 시장인데 새벽 일찍 열고 빨리 문을 닫는다고 번개시장이라고 부른다. 오전 11시면 이미 문을 닫는 곳이 있고 12시면 모두 문을 닫는다고 한다. 우리는 역전 콩나물국밥 집에서 든든하게 식사를 하고 시내버스로 진동까지 이동했다. 버스가 자주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시간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진동에서 시내버스를 내리면 지난번 여정에 이어서 진동 교차로에서 통영, 고성 방면으로 걷기를 시작한다. 도로 이름이 삼진 의거 대로인데 4.3 삼진 의거는 진동, 진북, 진전 일대에서 일어났던 항일 만세 운동을 지칭한다. 3. 1 운동 절정기에 민초들을 중심으로 일어난 독립운동이었다고 한다.

 

사동교를 통해 진동천을 건너면서 바라본 남해 바다 쪽 풍경이 아름답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이 장관이다. 이곳은 진동천, 덕곡천, 인곡천이 한 군데로 모이는 지점으로, 남파랑길은 세 하천을 모두 건너서 멀리 아파트 단지 앞에 설치된 인도교 건너편으로 하천변을 따라 이동한다.

 

도로변에 자리한 코스모스 꽃에 앉아 꿀을 빨고 있는 벌 한 마리가 사람이 지나도 모를 정도로 열심이다. 아무리 따뜻한 남쪽나라라고 하지만 12월을 앞두고 활짝 핀 꽃을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니 그럴 법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맑은 하천에서는 새 한 마리가 물고기 사냥에 여념이 없다.

 

하천을 돌아가는 길에서 만난 캐릭터가 반갑다. 아귀찜 마니아라서 그럴까 생전 처음 보는 미더덕과 오만둥이 캐릭터에 웃음이 터졌다. 아귀찜을 먹다가 많은 이들은 미더덕을 대충 씹다가 버리는 모양인데 필자는 그 맛이 좋아 꼭꼭 씹어 전부 먹는다. 그 오묘한 맛은 그 어떤 음식 재료에서도 만날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그런데, 미더덕 주산지를 만난다고 생각하니 괜히 설레는 마음도 생긴다. 진동은 우리나라 미더덕 생산의 70% 이상을 담당하는 곳이다.

 

물에 사는 더덕이란 의미의 미더덕은 땅에 사는 더덕과 비슷하게 생겨서 이름에 더덕이 들어가 있지만 식물이 아니라 동물이다. 통상 시중에 나올 때는 겉껍질 대부분이 까진 상태로 나온다. 미더덕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그 대체 작물로 해외에서 들여온 외래종인 오만둥이도 많이 양식한다고 한다. 많은 이들은 오만둥이에 대한 기억을 미더덕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전문가가 아니라면 외형으로는 거의 분간하기 힘들고, 가격도 훨씬 저렴하니 충분히 착각할 가능성이 많다. 살이 거의 없지만 오돌오돌한 맛으로는 오만둥이가 미더덕 보다 낫다고 한다. 분류상으로는 미더덕과 오만둥이 모두 미더덕 속이다. 미더덕은 도토리 모양으로 껍질을 까야하므로 비쌀 수밖에 없고 살도 많고 향도 오만둥이보다는 낫다. 온라인 마켓에서는 덮밥용으로 미더덕 속살만 팔기도 한다. 오만둥이는 살도 적고 향도 떨어지기는 하지만 껍질을 깔 필요도 없으니 저렴할 수밖에 없다.

 

하천 세 개를 차례대로 모두 건너면 이제 하천변을 따라서 신기리 해안길을 걷는다.

 

진북면, 진동면에 병풍처럼 둘러서있는 600~700미터 고봉들에서 내려온 맑은 물에서는 오리가 놀고, 하천별 길가로는 코스모스가 늦가을의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주말 오전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이 주말이 없는 오리와 코스모스에게도 묻어난다.

 

진동만을 향해 맑은 하천이 흘러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걷고 있으니 마산 초입에서 만났던 회색빛 공업단지의 모습들은 어느새 머리에서 흐려진 모양이다. 정겨운 시골길 걷기가 마냥 좋다.

 

오전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물결과 은빛 억새의 향연에 잠시 발걸음을 멈추어 간다.

 

신기리에는 중전 저수지라는 이름의 작은 저수지가 하나 있는데 저수지의 물길이 바다로 나가는 곳에 있는 습지도 가을 가을 하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진동만까지 발걸음마다 절경이 이어진다.

 

길은 방파제 끝에 있는 개구리 산을 살짝 돌아서 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길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하는 수 없이 지도 앱을 열어 길을 찾아가다 보니 교정이 예쁜 우산 초등학교도 지난다. 한국 전쟁 중에 세워진 초등학교다.

 

고현 마을에서 다시 남파랑길을 만나 길을 이어가는데 항구 주위로 독특한 풍경이 펼쳐져 있다. 미더덕 판매장, 미더덕 덮밥, 미더덕 회, 미더덕 찜까지 다른 동네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하는 이름들이 가득이다. 별천지다. 항구 한쪽에 김려의 우해이어보를 소개하고 있었는데 정약전의 자산어보보다 11년 앞선 저술이라고 한다. 우해는 지금의 진해를 의미하는데 저자가 진해로 유배를 와서 이곳의 어류들을 기록한 것이다. 자산어보가 흑산도의 어류를 기록한 것이라면 우해이어보는 진해 근방의 어류를 기록한 것이다.

 

진동항을 떠나 해안을 따라 잔잔한 남해 바다를 벗 삼는 길이다. 바다가 이렇게 맑고 잔잔해도 되는 거야! 하는 감탄을 연발하는 길이다.

 

잔잔한 호수 같은 바다, 장기 마을을 지난다. 마을 앞으로 장터가 있었다고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이곳은 바다 자체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물고기들이 유영하는 모습에 한동안 멍 때리기 하다가 길을 떠났다.

 

바닷가 바로 옆으로 이런 마을 풍경이 가능할까? 마치 호숫가 마을 풍경 같다. 물론 좋은 점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점도 있기 마련이지만, 이곳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해본다. 

 

미더덕로 작은 도로를 따라서 선두 마을로 향한다. 도로 이름도 미더덕로라니...... 1970년대까지만 해도 미더덕은 피조개와 같은 양식업에 방해가 되는 해적 생물 취급을 받았다고 한다. 실제로 미더덕이 양식 품종으로 지정된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멍게, 피조개, 굴 양식에 미더덕이나 오만둥이가 붙으면 성장을 방해하거나 먹이 경쟁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당연히 기피 대상이 되고 그냥 부산물 정도의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미더덕 양식을 하시는 입장에서는 굴 같은 것이 붙으면 양식에 방해가 되니 사람의 시각에 따라 입장이 바뀔 뿐인 것이다.

 

동화 같은 그림의 버스 정류장이다. 버스 정류장에 앉으면 바로 뒤가 바다라는 상상 이상의 풍경이 이어지는 곳이다. 선두 마을은 고현리를 거쳐 들어오는 시내버스의 종점이기도 하다.

 

선두 마을 방파제를 지나 진동면 고현리에서 진전면 율티리로 넘어간다.

 

율티리로 넘어가는 길 모퉁이에서 창포만 넓은 바다를 품어본다. 길 둔턱에 주저앉아 가만히 낚싯대 하나를 드리우고 싶은 풍경이다.

 

율티리로 넘어가는 길은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야 한다.

 

고개를 넘을 때면 라이더가 내리막길을 쌩하며 내달리는 모습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들이 오르막을 오를 때 느낄 근육의 고통은 외면하는 것이다. 어찌 되었든 내리막은 걷기 하는 사람도 좋다. 율티리는 율치리라고도 부르고 밤치라고도 부르는데 우리가 지나고 있는 고개 부근에 있는 마을이라고 붙은 이름이고 밤나무가 많은 고개가 있는 마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큰 공장 옆을 지나 길을 이어간다. 공장을 지나 좌회전하여 율티 마을 회관 방면으로 이동한다. 이제 11코스 종점까지 1.2Km가 남은 지점이다.

 

공장 지대를 빠져나오면 다시 잔잔한 창포만을 대면한다. 이런 바다 앞에 서면 왠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율티 마을을 가로질러 진동 읍내에서 진북면을 거쳐 오는 삼진 의거 대로로 나간다.

 

드디어 삼진 의거 대로로 나왔다. 저 앞이 암아 교차로이다. 두 번의 여행에 걸쳐 걸은 남파랑길 11코스를 드디어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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