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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 다리를 지난 남파랑길 3코스는 용두산 공원으로 향한다. 원래의 코스는 돌아서 동쪽으로 진입해야 하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 의도치 않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남쪽에서 공원으로 진입한다. 용두산 공원을 빠져나오면 대청로 큰 도로를 따라 보수동 책방 골목과 국제 시장을 거쳐 자갈치 시장 인근까지 내려온다. 예전에 아이들과 걸었던 경로와 비슷하게 걷게 되었다.
남파랑길 2코스에 이어 남파랑길 3코스 11.5Km 지점에 있는 숙소까지 걷는다. 영도 숙소부터 오늘 걸어야 할 거리의 딱 절반을 걸었는데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가파르지는 않았지만 봉래산 산책로가 시간이 의외로 소요되었고 넉넉한 점심시간을 가진 이유도 있을 것이다. 오후 3시를 바라보는 시각인데 앞으로 걸어야 할 거리가 12Km 가까이 되니 해가 져서 숙소에 들어가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일단 용두산 공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부산시 중구에서 세워놓은 세계 거리 표지판을 보니 우리 부부의 다음 해외 걷기 여행지는 어디가 될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코로나 전후로 현지 분위기도 여행자의 생각도 많은 것이 바뀌었다. 아직은 모르겠다. 대마도가 60Km, 런던이 9,222Km라고 한다. 길을 건너서 만난 영도 다리 포토존. 오후 2시 도개 시간이면 사진 찍기 좋겠지만 지금은 난간과 지나가는 버스가 그 앞을 가로막았다. 영도 다리는 단순한 다리가 아니라 피난민에게 새로운 만남과 희망의 장소가 되었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도로를 횡단보도로 건너지만 도로 아래는 도시 철도 1호선 남포역이 있는 공간이다. 남포역 5번 출구 앞에는 광복 쉼터라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곳 의자에 앉아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일부 이상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노래를 계속 틀고 있었지만 이곳은 부산 중구에서 설치한 음악다방이 설치되어 있어서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의 노래들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주변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음악다방을 제 것인 양 점유한 사람들 때문에 마음 편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휴식 공간과 음악다방을 설치한 구청의 의도만큼은 나무랄 일이 아니었다. 항상 사람이 문제다.
남포동은 서면과 함께 부산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지역 중 한 곳이다. 서울의 명동과 비슷한 분위기이다. 그런데, 남파랑길은 이 광복로로 가지 않고 우회전하여 우리는 그만 광복로로 좌회전하고 말았다. 당연히 넓은 길로 가겠지 하는 마음도 있었고 아직 남파랑길 표식 찾기에 익숙하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그런데, 광복로를 걷다 보니 의도치 않게도 용두산 공원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게 되었다. 화려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면서 이 좋은 길을 놔두고 남파랑길은 왜 빙 돌아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편하게 길을 올라가는 입장에서는 마냥 좋았다. 홍콩 시내의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느낌이었다.
에스컬레이터 초입에는 네온사인으로 장식했는데, 끝부분에는 스크린까지 설치되어 있었다. 에스컬레이터에서 나오니 인공 폭포와 부산 타워가 우리를 반긴다.
부산 타워가 상징인 용두산 공원은 일제 강점기에 만들어져 공원에는 큰 규모의 신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신사 참배를 강요하던 공간이었는데 1945년 한 청년의 방화로 신사는 없어졌다고 한다. 공원은 어떤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지금이야 행사로 사람들이 많지만 이곳은 부산의 대표적인 집회 장소였다고 한다.
국제시장 방면으로 용두산 공원을 빠져나온다. 이곳은 오랜 세월 이곳을 지켜낸 커다란 은행나무들이 많이 있었다. 가을이 깊어지면 노란색으로 물들 것을 상상하면 그 또한 환상적이겠다 싶다.
대청동 방향으로 용두산 공원을 빠져나가는 길에는 용두산의 옛 모습이 타일에 새겨져 있었다. 개항 전 20세기 초의 용두산과 부산항의 모습, 1990년대 초반 이곳에서 선거 유세가 있었던 사진을 보니 감회가 새롭다.
주교좌 중앙 성당 옆을 지나 길을 내려가면 용두산 어귀 삼거리에서 대청로 도로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좌회전하여 도로를 따라 보수동 책방 골목으로 향한다.
용두산 공원 삼거리에는 부산 근대 역사관이 있는데 새로운 부산 근현대 역사관으로 한창 공사 중이었다.
국제 시장 속살을 만나는 것은 잠시 후로 미루고 계속 대청로 도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이동한다. 언뜻언뜻 보는 시장 골목은 살짝 보기만 해도 사람들로 복잡하다.
보수동 책방 골목에 도착했다. 학생 시절에도 직장 초년생 시절에도 서울 청계천 헌책방 골목은 교보 문고나 종로 서적과 같은 유명 서점보다도 자주 찾던 곳이었다. 지금이야 헌책도 온라인 마켓으로 활발히 거래되는 상황이니 오프라인 헌책방이 자리할 공간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을 찾았을 때는 선물로 만화책 시리즈를 구입해 주기도 했었다. 부담 없이 책을 선물할 수 있었던 곳인데 이곳도 예전만큼은 아닌 모습이었다. 상인에만 책방 골목을 맡겨 둔다면 자본 논리에 밀려 이 골목도 유지하기가 어렵지 않을까 싶다.
보수동 책방 골목을 나오면 대청로 도로를 건너서 부평 깡통 시장으로 진입한다. 미군 부대에서 나온 통조림이 많이 거래되던 곳이라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미군 부대에서 나온 통조림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기억으로는 과일잼, 고기, 비스킷과 코코아, 커피도 있었다. 몰래 부대에서 반출되는 것도 있었고 형편이 좋았던 미군들이 버린 것을 유통하는 경우도 많았다고 들었다.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장 안으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먹거리들이 넘쳐난다. 당장이라도 자리에 앉아 명태전이나 모둠 튀김을 시켜놓고 사람들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으면서 맛있게 먹고 싶다. 그런데 웬일일까? 이런 군것질 좋아하는 옆지기 님이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신다. 사람들 많은 곳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까닭일 수도 있겠다. 아니면 넉넉하게 먹은 점심 식사 때문일 수도 있다. 처음 보는 명태전과 비빔 당면은 지금 생각해도 군침이 도는 음식이었다.
지붕이 얹어진 아케이드 구간을 나오니 양곱창, 보쌈, 갈빗집이 이어진다. 중리에서 점심을 가볍게 먹었다면 어느 집이라도 들어가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겠지만 우리는 넉넉한 점심 식사 덕분에 아직도 배가 꺼지지 않았다. ㅠㅠ
남파랑길 표식을 찾으면서 우리는 부평동 한복의 거리, 족발 골목, 조명의 거리, 만물의 거리를 차례로 지난다. 없는 것이 없는 그야말로 만물 시장이다. 무엇보다 사람들로 넘쳐난다. 삶 가운데 짐은 모두 내려놓고 먹고, 씹고, 뜯고, 구경하며 걷고, 소화시키고 또 먹고, 도심 속의 휴식을 원한다면 이곳도 좋은 선택이다 싶다.
남파랑길은 아리랑 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자갈치역 방향으로 이동한다. 아리랑 거리는 전통 공예품이나 특산품을 파는 상점들이 모여 있다고 한다. 입구 쪽에는 좌판에서 충무 김밥, 팥죽, 비빔 당면 등을 만날 수 있는 골목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으로 정신이 없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구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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