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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2개의 올레 코스를 걸었던 우리는 오늘은 10 코스만을 걷는다. 한 코스만 걷지만 거리가 15.6Km로 결코 만만한 여정은 아니다. 저질 체력은 이제 10Km를 넘어서면 발부터 온몸이 "더 걷기 싫어!"라고 외치기 때문이다. 아무튼 화순 금모래 해변에서 시작하는 올레길 10코스는 해변의 아기자기한 숲길과 황우치 해변을 지나 산방연대 인근에 있는 하멜 기념비에 이른다.
어제 오후의 시끌벅적했던 화순 금모래 해변의 조용한 아침 풍경이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빛은 아니지만 강렬한 햇살이 비추면 금빛 모래를 뽐낼 듯하다. 방파제 안쪽에 있는 해수욕장이라 잔잔한 물과 함께 해수욕할 수 있는 곳이다.
올레길 10코스는 이제 산방산을 향해서 이동한다. 화순 금모래 해변은 해수욕도 즐길 수 있지만 해수욕과 함께 차가운 용천수를 이용한 야외 수영장도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입장료도 무료다. 야외 수영장 앞을 지나서 길을 이어간다.
해변을 지나온 올레길은 썩은 다리 탐방로를 통해서 숲길 걷기를 시작한다. 사근 다리라고도 부르는 썩은 다리는 이름을 처음 접했을 때는 다리가 오래되어 썩어서 그렇게 부르는 것으로 상상했었다. 그렇지만, 실제는 상상과는 거리가 멀다. 일단 교각을 의미하는 다리가 아니다. 산방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언덕이지 다리가 필요한 곳은 아니기 때문이다. 돌이나 달을 지칭하다가 변한 것으로 추측한다. 사근 다리의 경우 모래 해변 근처라는 해석도 일리가 있지만 지질적으로 서귀포의 다른 해안은 대부분 용암이 굳은 현무암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곳은 화산재가 쌓여서 만들어진 퇴적암인 응회암 절벽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노랗게 변하며 돌이 썩은 것처럼 보인다고 붙은 이름이다.
썩은 다리에 올라 바라본 화순 금모래 해변의 풍경이다. 확실히 금빛 모래를 가졌다. 이름이 금모래인 것은 모래 색깔 뿐만아니라 실제 금이 났던 곳이기 때문이란다. 1960년대에는 사금 채취를 했었다고 한다. 용천수로 풀장을 운영하는 야외 수영장도 규모가 꽤 큰 편이다.
썩은 다리 동산에 오르면 해안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따라 숲길을 걷는다. 숲길 너머 화순항을 뒤로하고, 올레길은 과연 뾰족한 산방산을 어떻게 요리했을까? 하는 상상을 하며 길을 이어간다. 설마 저 산방산을 오르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길 앞에 산방산을 두고 걷다 보니 왠지 모를 기대와 설렘이 교차한다.
썩은 다리 동산을 내려가도 푸른 숲길은 해안가로 계속 이어진다. 예전의 올레길은 이 근처에서 산방산 뒤편으로 한 바퀴 돌아서 용머리 해변으로 간 모양인데 이제는 산방산 앞쪽 해안길을 계속 이어서 걷는다.
산방산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뷰포인트에 도착했다. 산방, 즉 둥굴이 있는 산이라고 붙은 이름이다. 산방산은 395미터의 높이로 150미터 정도에 위치한 자연 동굴 속에는 불상이 있다.
산방산 앞쪽 해안을 따라 걷지만 숲길이 계속 이어진다. 열대야가 극성일 정도로 무더위가 이어지는 날씨에 흐르는 땀까지 막아주지는 못하지만 오전의 강렬한 태양을 조금이나마 막아주니 좋다.
산방산 용머리 지질트레일 안내판 뒤로 용머리 해안과 송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올레길은 산방산 용머리 지질트레일의 C, A, B코스를 차례로 조금씩 겹쳐서 걷게 된다. 지금 위치는 황우치 해변 직전의 소금막 용암이 있는 곳이다. 제주도에서 가장 최근에 분출한 용암 흔적이라고 한다.
중간중간에 만나는 작은 해변들은 사람의 손길이 없어 바다 쓰레기가 그대로 방치되기는 했지만 아는 사람들끼리는 자신들만 즐길 수 있는 개인 해변으로 사용할 수 도 있겠다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떤분들이 자동차가 들어올 수 있는 곳까지 최대한 차를 붙여 놓고 오늘 하루를 즐기기 위한 짐들을 부지런히 나르고 있었다. 해안으로 밀려온 쓰레기들을 조금 치워 놓으면 나만의 금모래 해변을 누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오르락내리락, 구불구불한 해안 숲길을 걷다 보면 의외로 체력 소모도 큰 편이지만 한 점 그늘도 없는 뙤약볕의 아스팔트 길보다는 낫다. 산방산 용머리 지질트레일 C코스와 함께하는 숲길이다.
햇빛 때문에 챙이 긴 모자를 썼지만 머리에 뭔가가 올라가 있다는 것은 더위를 더하면 더했지 몸을 식혀 주지는 않는다. 나무 그늘에 들어가면 모자를 벗었다가, 다시 해 아래로 나오면 모자 쓰기를 반복한다.
잠시 포장도로로 나왔던 올레길은 다시 숲 속으로 길을 이어간다. 쭉 뻗은 넓은 숲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없어질수도 있는 숲 속 오솔길이 아니라서 그럴까?
여전히 해안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숲 안으로 조금 깊이 들어왔다고 해안산이 멀어져 보인다. 대신 산방산은 더욱 가까워져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보면 볼수록 나무들은 참 대단하다 싶다. 깎아지른 바위 절벽 위에 한 줌 흙이라도 있으면 뿌리를 내려서 바위산 조차도 멀건 대머리가 되지 않게 했다.
숲길을 빠져나와 카페 앞을 지나면 긴 해안선을 가진 황우치 해변을 만난다. 뒤로는 산방산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앞으로 는 용머리 해안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해안선 멀리 용머리 해안으로 올라가는 길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모래가 많던 곳인데 화순항 개발로 지금은 바위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곳이 많다.
올레길은 황우치 해변 뒤편의 산책로를 통해서 용머리 해안 쪽으로 이동한다.
산방산 기암절벽이 설악산 울산 바위를 보는 듯하다. 물론 암석의 종류는 다르다. 울산 바위는 화강암이고 산방산은 조면암이다.
산방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이니 파노라마 컷으로 기록을 남겨본다.
올레길은 용머리 해안을 향해 오르막을 오른다. 이 오르막길은 전후좌우 사면으로 엄청난 풍광을 맞이하는 곳이다.
용머리 해안을 잠시 맛볼 수 있는 구간. 자연이 빚은 위대한 걸작 앞에 아름답다는 생각도 있지만 위압감이 마음을 누르는 순간이다. 응회암 퇴적층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황우치 해안과 화순항을 볼 수 있는 항망대 안내판을 만난다. 한국 전쟁 당시에는 인근 훈련소와 미군 부대로 가는 전쟁 물자와 장병을 실어 나르던 곳이고 전후 70년대에는 해병대가 상륙 훈련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항망대라는 이름답게 왕우치 해변과 화순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머리 해안 동쪽에서 오르막을 올라왔던 올레길은 용머리 서쪽 해안으로 내려간다. 해안으로 내려가는 길 반대쪽에는 봉화를 올리던 산방 연대가 자리하고 있다.
용머리 해안의 위쪽 모습도 좋지만 용머리 해안의 진짜 모습은 해안으로 내려가야 한다. 중문 대포 주상절리대처럼 입장료를 내면 해안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산 아래로 하멜 상선 전시관도 보이고 사계 포구와 멀리 송악산도 눈에 들어온다.
하산길에 만난 하멜 기념비. 1980년 한국과 네덜란드 정부가 함께 세운 것이다. 하멜이 대만에서 일본 나가사키로 향하다가 제주도에 표류하게 되는데 정확한 지점은 논란거리지만 그가 13년간의 억류 생활에서 탈출하여 그가 속했던 동인도 회사에 밀린 임금을 받기 위해 작성한 보고서인 이른바 하멜 표류기가 없었다면 이런 기념비도 없었을 것이다. 그의 억류 과정에서 빚어지는 다양한 국내외 정세와 앞서 조선에 정착한 박연이 통역가로 등장하는 등 수많은 이야깃거리에도 불구하고 글과 기록의 힘을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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