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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악산 입구에서 길을 이어가는 올레길 10코스는 송악산 해안으로 한 바퀴 돌아 다시 송악산 입구로 나와서 섯알 오름으로 이동한다.
송악산은 원래 해송이 많아 송악산이라 이름이 붙여졌지만, 일제 강점기에 군사 기지를 만든다며 수많은 나무를 태워버려 곳곳에 풀만 무성한 곳이 많다.
많은 이들이 일본군의 진지 동굴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며 대충 눈길만 주고 지나가는데, 이런 동굴을 만드는데 동원된 제주도민의 고통과 희생을 제대로 알려주는 안내가 필요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송악산 언덕길에서 바라본 산방산, 형제섬과 그 뒤로 화순항과 월라봉의 전경이다. 이제는 아련한 거리이다. 송악산을 돌아 나가면 더 이상 시야에 잡히지 않을 풍경이다.
잘 포장된 해안 산책로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송악산 정상부는 2027년까지 휴식년제로 현재는 올라갈 수 없다. 송악산 안쪽으로 들어오면 송악산이라고 이름 붙을 정도로 해송이 많았던 곳인가 싶을 정도로 무성한 풀만 있는 휑한 들판을 목격하게 된다. 군사 기지 만들겠다고 나무를 모두 태워버린 일제가 남겨 놓은 상흔이 여전히 아물지 않은 현재의 모습을 들판에서 만난다. 송악산은 지형적으로는 이중 분화구 형태로 1차 폭발로 형성된 분화구 안에서 2차 폭발이 일어나 두 개의 분화구가 존재하는 특이한 화산지형이다.
아름다운 해변을 감상하며 걷는 송악산 둘레길은 2.8Km에 이르는데 많은 사람들은 멀리 보이는 첫 번째 전망대까지만 가고 그 이후부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며 걸어야 하는 결코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나무가 사라진 무성한 풀밭에서는 방목하고 있는 말들이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고, 잔잔한 바다 위에는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마라도를 오가는 여객선이 평화로운 풍경 속의 주인공이다.
송악산에는 크고 작은 봉우리가 99개나 있다고 한다. 그래서 99봉이라고도 부른다.
가파도와 마라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가파도는 손에 잡힐듯 가깝다.
해안 절벽을 바라보면 아래가 보이지 않는 아찔함도 있지만, 온몸을 땀범벅으로 만드는 무더위 속에서 저기에 지금 들어가면 얼마나 시원할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언덕 위에서 마라도와 가파도를 바라보면 해안선 위로 얼마 높지 않은 섬의 높이에 수많은 폭풍우 속에서 저곳의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 오셨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실제로 가파도는 표고가 20미터로 우리나라에서 표고가 가장 낮은 섬이라고 한다.
길도 바다도 풍경 만큼은 일품인 길이다.
해안 절벽은 바위도 토양도 독특하여 세상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풍경을 선사한다. 이런 절벽에서도 바다로 나가기 위한 길을 만들었는지 절벽 옆으로는 바위를 깎아 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올레길에서는 가끔씩 말을 만나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줄에 묶여 있는데 송악산에서는 자유롭게 방목하는 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운송 수단이나 군사용으로 말을 이용하던 시대가 지나고 지금은 승마, 경마용과 함께 식육용으로도 기른다고 한다.
99봉이라는 별칭을 가진 송악산 답게 송악산 둘레길도 크고 작은 봉우리를 오르락내리락하고 중간중간에 있는 작은 봉우리에 전망대들이 마련되어 있다. 3 전망대까지는 데크길이 이어진다.
바람과 파도에 깎여 나간 바위 절벽은 조금 있으면 무너질 듯 아슬아슬할 정도다. 층층마다 수많은 세월의 이야기를 담았을 지층을 바라보면 인간의 존재란 저 가운데 있는 돌멩이 하나만큼이나 될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제 송악산 둘레길도 끝자락을 향해 가는지 3 전망대로 향하는 둘레길 너머로 넓은 상모리와 하모리의 평야 지대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송악산 입구에 진지 동굴이 자리했던 절벽처럼 반대편도 거대한 응회암 지층이 그 나이테를 드러내며 자연의 위대함을 뽐내고 있다.
송악산 둘레길이 잘 정비되어 있고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 것은 좋지만 그늘 한점 없고, 오르락내리락 길이 평탄치 않다는 것은 우리 같은 저질 체력에게는 좀처럼 만만한 길은 아니다. 결국 옆지기는 그늘이 있는 데크길 계단 위에서 벌러덩 누워 버렸다. 때마침 반대편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에게는 송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옆지기가 더 푹 쉴 수 있도록 그냥 두었다. 올라오던 분들도 누워있는 옆지기를 피해서 조심스럽게 길을 이어갔다. 한동안 누워서 쉬던 옆지기는 다행히 몸이 조금 회복되어 계속 길을 이어갈 수 있었다.
송악산 둘레길을 빠져 나가는 길에서 바라본 가파도와 마라도. 표고가 낮은 가파도는 한강 위에 만들어 놓은 인공섬처럼 보일 정도다.
제3전망대 이후로는 데크길 대신에 숲 속 산책길을 걷는다. 나무 그늘, 완만한 내리막길, 이런 길만 쭉 이어질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마음 가득하지만 바람과 달리 이 길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산책로 출입구와 "송악산과 99봉" 안내판을 지나면 송악산 둘레길은 끝이 난다.
송악산 둘레길을 나오면 다시 송악산 입구로 가게 되는데 올레길 10코스는 좌회전하여 섯알 오름 방면으로 이동한다.
평화 바람길이라는 별칭이 붙은 구간이다. 일제 고사포 진지가 있는 방향으로 오르막 길을 오른다.
푸른 들판 위로 떠가는 흰구름이 한 풍경하는 장면이다.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눈을 시원케 하는 풍경이다.
언덕에 올라 바라본 형제섬 방면의 전경과 송악산 너머 상모리, 하모리 방면의 전경 또한 아름답다. 푸른 풀밭과 흰구름이 주연이다.
잘 가꾸어진 언덕 능선을 통하여 길을 이어간다. 올레길의 상징인 간세가 문 처럼 통과하는 형태는 처음이다.
숲길을 얼마간 지나면 일제 고사포 진지를 만나게 된다.
송악산 북쪽으로는 알오름이 3개가 동서로 분포하고 있는데 동쪽에 있는 것을 동알 오름, 서쪽에 있는 것을 섯알 오름, 가운데 있는 것을 셋알 오름이라고 하는데, 가운데 있는 셋알 오름에 있는 일제 고사포 진지다.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을 방어하기 위한 시설이었을 것이다. 제주도를 최후의 방어기지로 삼은 것은 일제가 태평양 전쟁 말기 그들이 원자 폭탄으로 패배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상황에서 나온 전략이었을 것이다. 진주만 공습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죽이고, 다시 원자 폭탄으로 수많은 민간인을 살상한 일본과 미국이라는 두 나라가 지금은 세계 정치 현장에서 끈끈한 동맹이고,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앞뒤에서 밀어주고 있는 나라가 미국이니 이런 역사의 아이러니가 없다.
셋알 오름에서 섯알 오름으로 가는 길. 평탄한 평야 지대를 걷는다. 송악산 북쪽의 세 알오름들은 모두 50미터 내외로 높이가 높지는 않다.
섯알오름은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가 오름 전체를 탄약고로 만들었던 장소다. 그런데, 한국 전쟁 당시 2백여 명의 양민을 대량 학살했던 아픔이 있는 곳이다. 미군은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탄약고를 폭파시켜 버렸는데 그때 생긴 그 커다란 웅덩이에 수많은 양민을 학살한 것이었다. 수많은 양민이 죽어나간 4.3 사건은 1948년의 일이었지만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다시 무리한 검속과 사상 검증이 단행되었고 사상이 애매모호하다는 판단으로 재판도 없이 사람을 총살한 것이었다.
섯알 오름 예비 검속 희생자 추모비로 들어오는 긴 진입로가 주변의 수많은 농지 가운데서 그날의 아픔을 대변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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