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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봉 밭길을 지나 지미봉(162.8 미터)을 올라 사방으로 탁 트인 환상적인 풍경을 접하고 나면 종달리 쪽으로는 조금은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종달항 인근에서 해안 도로로 나와 종달리 해변에서 올레 21코스를 마무리한다. 올레 1코스와 만나는데 올레 21코스를 끝내면 다음 여정인 서귀포로 이동하기 위해서 올레 1코스를 역방향으로 걸어 종달 초등학교 앞의 버스 정류장까지 이동한다.

 

원뿔처럼 생긴 지미 오름에 가까워질수록 오르막에 대한 긴장감이 한층 더해진다. 이번 여행에서 걷기를 계획하고 있는 다른 올레 코스에도 오름이 여러 개 있기 때문에 이번 여행 전체의 체력과 몸 상태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시작이 반이라 하지 않는가! 첫 오름을 무난히 통과한다면 이번 여행은 전체적으로 부담 없는 여행이 될 것이다.

 

한 여름의 녹음이 짙어진 숲을 앞두고 옆지기에 다시 한번 물어본다. "오르막 가지 말고, 그냥 둘레길로 우회할까?" 지미봉은 정상을 오르지 않고도 둘레길을 통해서도 종달리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힘든 일을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면 그냥 힘든 일을 포기해 버리는 내면의 유혹이 있었겠지만 옆지기는 묵묵히 오르자고 한다. 만약 둘레길로 가서 지미봉 정상에 오르지 않았다면 정말 후회할 뻔했다. 지미봉에서 바라보는 경관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지만 숲길 걷기는 참 좋다. 스틱 없이 걷고 있으니 그냥 걸어도 될법한 길을 밧줄을 붙잡으며 한걸음 한걸음 천천히 오르막을 오른다. 햇빛을 가리겠다고 챙이 넓은 작업모를 쓰고 왔는데 땀이 줄줄 흐르니 몸에 걸리는 모든 것이 걸리적거린다. 모자를 잠시 벗고 걸으면 얼마 가지 않아 햇빛이 쏟아지는 구간을 만나 다시 모자를 뒤집어써야 한다. 땀을 닦아내는 손수건은 이미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숲길이 좋기는 한데 모기에 취약한 옆지기는 벌써 몇 방을 쏘였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숲길 입구에 해충 기피제를 뿌릴 수 있는 장비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장비가 있는 곳이라면 온몸에 해충 기피제를 뿌리고 숲길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 모기는 맨몸을 골라서 쏘는 것도 아니고, 팔 토씨나 셔츠 정도는 그냥 뚫는다. 땀을 많이 흘리며 걷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경사도가 있기는 하지만 2백 미터가 되지 않는 높이 덕분에 조금만 견디면 머지않아 지미봉 정상에 닿는다. 우리 같은 저질 체력도 20분 정도에 정상에 오를 수 있었다. 예전에는 정상에 봉수대도 있었다고 한다. 지미봉 정상에 오르면 환상적인 경관을 통해서 땀 흘린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다.

 

지미봉에서 바라본 종달리와 성산 일출봉의 모습. 사진으로도 도저히 담을 수 없는 가슴 벅차오르는 환상적인 풍경이다.

 

지미봉에서 바라본 내륙 방향의 전경이다. 수많은 오름들과 멀리 가시리 국산화 풍력 발전 단지도 시야에 들어온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이라는 우도의 모습. 쉴 새 없이 사람들을 실어 나르고 있는 여객선이 시선을 끈다. 우도를 자세히 보니 소머리오름 분화구도 보인다. 우도는 한라산의 기생 화산중 하나로 마그마가 바닷속에서 분출한 수성 화산이다.

 

지미봉 정상에서 이제 종달리 방향으로 내려간다. 종달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은 경사가 급해서 계단의 연속이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에 기가 막혔는지 계단에 앉아 이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어제저녁 구입해서 냉장 보관해 놓았다가 상하지 않도록 배낭에 싸온 김밥이 다행히 상태가 좋았다. 김밥집 주인장은 내일 점심이면 김밥이 상할 수 있으니 팔 수 없다고 난리가 아니었다. 우리를 배려하는 것은 알겠는데 도시락에 대한 대안도 없으니 양을 줄여서 구입했었다. 돌아보면 김밥 주인을 통해서 식사 준비와 위생에 대한 경고를 미리 받은 것 아닌가 싶다. 김밥을 다 먹고 일어설 무렵이 되니 종달리 쪽에서 사람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타이밍도 굿이었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솔숲 사이로 성산 일출봉이 보이고 조금 더 내려가니 종점까지 2Km도 남지 않았다는 표지판이 나온다.

 

야자 매트가 깔린 구간을 지나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지미봉 주차장에 도착한다. 우리가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11시를 지나고 있었는데 지미봉 풍경에 대한 명성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이 산을 오르기 시작하고 있었다.

 

지미 오름 표지석을 뒤로하고 펜션 골목길을 통해서 해안으로 길을 잡는다. 제주목의 땅끝이라는 의미로 지미봉이라 했다는 안내문이다. 

 

종달리 해변으로 나가는 밭길에서 나무 터널을 만났다. 한 겨울 제주를 찾았을 때 빨간 열매로 시선을 이끌었던 먼나무라고 생각했는데 먼나무가 아니었다. 먼나무는 "뭔 나무여?" 하는데서 이름이 온 것은 아니고 수액을 먹으로도 사용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아무튼 먼나무는 10월부터 빨간 열매가 맺히는데 지금은 8월이니 시기도 맞지 않고 열매도 포도처럼 다발로 맺히는 모양도 다르다. 바로 이름도 독특한 아왜나무이다. 꽃 모양 때문에 거품 나무라는 별칭도 있는데 불에 잘 타지 않아 방화목으로 심기도 한다.

 

돌담과 나무들이 만들어낸 숲 터널을 지나서 마을길을 만나 좌회전하면 종달항 쪽으로 나갈 수 있다.

 

종달항이 보이면 종달항으로 가지 않고 우회전하여 해맞이 해안로 도로를 따라서 길을 이어간다. 종달리라는 이름이 독특한데 여러 설이 있지만 재미있는 전설 하나는 진시황과 연관된 것으로 진시황의 지시에 따라 물길을 끊으러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이 고종달이고 그가 다녀간 곳이라 해서 종달리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전설이다. 서귀포 정방에 가면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으러 서복 일행이 다녀 갔다는 또 다른 전설도 있다.

 

종달항 해변에서 바라본 종달항 방면의 모습과 성산 일출봉 방면의 모습이다. 초록빛 해변과 새파란 하늘이 눈부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로 중천에 오른 뜨거운 태양을 온몸으로 받으며 해안길을 걸어간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챙 넓은 모자를 고쳐 쓰고 햇빛이 맨살에 닿지 않도록 조금이나마 숨어보는 것뿐이다. 그렇다고 숨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쾌청한 하늘 아래 우도와 성산 일출봉을 바라보는 풍경만큼은 일품이다.

 

제주의 아름다운 여름 풍경을 해치는 것이 있다면 해안으로 떠밀려온 해조류들이 썩어 들어가는 모습이다. 냄새도 보통이 아니다. 괭생이모자반이 몰려오기도 하고 올해는 파래가 골치라고 한다. 

 

드디어 올레 21코스의 종점인 종달리 해변에 도착했다. 우리는 올레 7코스 일부와 8코스 일부를 이어서 걸을 예정이므로 서귀포로 이동하기 위해서 바로 뒤편으로 올레 1코스를 역방향으로 걷는다. 기억력이 좋지는 않지만 한번 걸었던 길을 다시 걸으면  그 장소에 대한 기억은 마법처럼 살아난다. 길을 걸으니 예전에 올레 1코스를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종달리 마을길 돌담에서 처음 보는 화초를 만났다. 빗살 같은 잎을 가진 한해살이 덩굴 식물인 유홍초다. 새깃 유홍초, 깃털 유홍초라고도 부른다. 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인 유홍초가 제주에서 앙증맞은 꽃을 피웠다. 제주에서 많이 심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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