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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간만에 다시 떠나는 제주 올레 걷기 여행, 청주 공항은 그 사이에 주차장이 4 주차장까지 확대되었고 주차 타워도 생겼으며 주차장을 오가는 셔틀버스도 시범 운행하고 있었다. 청주 공항이 2016년 개항 20년 만에 흑자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 저가 항공 활성화와 이용객 증가에 기인한 것이라면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주차장을 엄청나게 확대할 만큼 이용객은 많이 늘었지만 국제선은 아직이다. 3,4 주차장이 1,2 주차장보다 멀어서 하루 6,000원(경차 3천 원)으로 이용료가 저렴한데 이용객이 많을 때만 연다. 다행히 우리가 갈 때는 4 주차장까지 열어 놓아서 경차를 사용하는 우리는 하루 3천 원의 주차료를 내고 일주일이 넘는 제주 올레 걷기를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었다.
청주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고도를 올려 어느새 구름 위로 올라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구름들이 양탄자 같은 환상적인 풍경을 만들어 준다.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그치지 않던 하늘이 오늘부터는 맑은 하늘을 보이고 있다. 청주에서 이륙하는 비행기들은 제주도로 직선으로 날아갈 것 같지만 실상은 태안 쪽으로 기수를 돌려 서해안으로 이동한 다음 군산, 광주 상공을 따라 제주도로 이동한다.
제주 시내에서 101번 급행 버스를 타고 도착한 세화 해변은 평화로움 그 자체다. 어제저녁에도 비가 흩뿌리더니 이른 아침이지만 후덥지근한 열대야의 열기가 여전하다. 이른 새벽에도 이어지는 여름의 더위가 아름다운 세화 해변의 풍경에는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다.
청명한 하늘이 아니어도 좋다. 낮은 구름이 그려놓은 짙은색의 풍경화 한 폭을 감상하며 오늘 하루 26km에 이르는 긴 여정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깊은 심호흡으로 각오를 다지며 올레 21 코스 시작점으로 이동한다.
21코스 시작점으로 이동하는 길에 만난 분꽃. 꽃 모양이 나팔 모양이라 나팔꽃으로 착각하기도 하지만 나팔꽃은 꽃은 크기도 크고 분꽃과는 엄연히 구분되는 꽃이다. 특이하게 해질 무렵인 4시 정도부터 아침까지 꽃을 피우고, 낮에는 꽃이 오므라든다. 나팔꽃은 반대로 낮에 꽃을 피웠다가 저녁이면 꽃이 오므라든다. 검고 동그란 열매를 맺는데 그 안에 분가루 같은 흰 녹말가루가 있어서 분꽃이라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실제로 열매를 가루 내어 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올레 21코스는 제주 해녀 항일 운동 기념 공원에서 시작한다. 올레 공식 안내소에는 이른 아침부터 관리하는 분이 나오셔서 올레꾼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계셨다.
제주 해녀 항일 운동 기념 공원의 나무에 달린 올레 리본을 따라 길을 시작하다가 잠시 기념탑에 다녀온다. 제주 해녀들의 항일 운동은 국내 최대의 여성 항일 운동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이를 기리기 위해 위한 기념탑이다.
한쪽에는 2003년 대한민국 건국포장을 수여받은 부춘화, 김옥련, 부덕량 열사의 흉상이 세워져 있었다. 1931년 20대 초반의 나이였던 이분들은 모두 구좌읍 하도리 출신으로 일제의 부당한 식민지 침탈에 항거하는 시위대의 대표였다고 한다. 1천여 명의 해녀들과 함께 일본 경찰에 맞서 시위를 벌였고, 민족운동가의 검거를 막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하셨다. 20대 초반의 꽃다운 나이에 동료들을 위해 앞장선 이 분들의 용기는 도저히 가늠하기 어렵다.
어제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은 공원길은 이른 아침부터 매미들이 아우성이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기록해 놓는다. 매미는 제주도 사투리로 "재열이"라고 한다. 짝짓기 시기의 매미 울음소리는 자동차 소리보다도 크다고 한다.
공원길에서 연대 동산 숲길로 들어간다. 예전에 봉수대가 있던 곳이라 연대 동산이라 부른다. 간세 주변으로도 분꽃이 가득하다.
물 건너온 야자 매트가 깔린 깔끔한 산책로를 걷는다. 그런데 푹신한 야자 매트가 물 먹으면 미끄럽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흥얼거리며 걷다가 내리막 길에서 그만 꽈당하고 말았다. 발목이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여행 초반 이후 여정에서도 조심하라는 조물주의 적절한 경고였다.
연대 동산을 지나면 하도 축구장 옆을 지난다.
축구장 구석에는 수줍게 꽃을 피운 녀석이 있었다. 꽃과 잎 모양을 보아서는 제주의 해안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애기 달맞이꽃이 아닌가 싶다. 인체에 유용한 성분이 많아서 인디언들은 만병 통치약처럼 활용했다고 한다.
숨비 소리길은 하도리 밭담 길이라고도 부르는데 해녀 박물관을 중심으로 해녀의 삶을 느낄 수 있도록 조성된 길이다. 대부분 올레길과 같이 간다. 물질과 밭일을 모두 감당해야 했던 해녀들의 발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숨비 소리는 물질하면서 참았던 숨을 한 번에 내뱉는 소리를 가리킨다.
숨비 소리길 공터에 자리한 코스모스가 감성을 더해준다. 코스모스는 가을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6월부터 10월까지 볼 수 있는 꽃이다. 살사리꽃이라는 우리말도 정겨운, 한 여름에 만나도 마냥 좋은 그런 꽃이다.
마을길을 지나며 만나는 커다란 나무는 마을의 어르신을 뵙는 것과 같은 존경심도 있고 푸근함과 정겨움도 있다. 통행에 불편하다고 나무를 싹둑 잘라내는 마을치고 좋은 마을을 보지 못했다. 하도 포구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 묘소 너머 멀리 수평선이 눈에 들어오니 이 또한 좋다. 이른 새벽의 검은 구름 대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이 풍경을 채우고 있다.
낯물 밭길을 이어간다. 면수동의 옛 이름인 낯물 마을의 밭길을 걸어가는 길이다. 이모작을 하는 이곳의 밭들은 봄 작물 수확을 끝내고 다음 작물 재배를 위해서 밭을 갈아놓아 지금은 밭이 텅 빈 상태였다.
밭길에서는 작물은 만나지 못하고 대신 길 한가운데서 거미줄에 걸린 잠자리를 만났다. 사진에는 거미줄이 잘 보이지 않으니 그냥 보면 날아가는 잠자리를 포착했다고 해도 믿을만한 그림이다.
낯물 밭길의 들풀, 돌담, 바람, 바람에 나부끼는 올레 리본, 강렬한 태양과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늘을 가득 채운 흰 구름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풍경화 그 자체이다.
아스팔트도 콘크리트도 없는 비포장 흙길을 걷는 느낌은 사각사각 발자국 소리와 함께 가슴속 감성을 깨운다. 이런 길을 걷다 보면 어느새인가 작은 돌이 신발 속으로 들어가 걸음을 멈추고 돌을 꺼내게 하지만, 그래도 좋다. 현무암이 부서진 화산회토를 밟으며 걸을 수 있는 곳이 그리 흔치 않으니 말이다.
길은 하도 포구 인근의 별방진을 지난다. 조선 중종 5년에 출몰하는 왜구를 효과적으로 막기 위해 둘레 1,008미터 높이 3.5미터의 타원형으로 쌓은 성이다. 별방진은 하도리를 별방이라고 불렀었다고 붙은 이름이다. 비교적 성이 잘 보존된 곳이다.
육지의 큰 성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겠지만 제주 동부에서 가장 큰 진성이었음이 실감이 날 정도로 규모가 작지 않다.
별방진 내에 있던 서문동 우물 자리. 지금이야 제주도 물이 육지로 판매되고 있는 상황이니 제주도에서 물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어렵지만 옛날에는 빗물이 모인 봉천수와 지하수가 지표면을 뚫고 솟아나는 용천수를 식수로 사용하다가 우물을 팠다고 한다. 그렇지만, 해안에서 가깝고 지표에서 깊게 들어가지 못하므로 물은 짠맛이 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현재 제주도의 상수도는 지하수나 저수지 등 다양한 취수원의 물을 끌어올려 정수장을 거쳐 일반 가정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한다. 다른 지역도 그렇지만 누수가 문제인데 다른 지역과 달리 암석 지대가 많다 보니 누수가 발생해도 땅속으로 스며들어가 누수를 찾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한다.
마을 골목길에서 만난 커다란 문주란이 하얀 꽃을 피웠다. 문주란이 꽃을 피운다는 것은 지금이 여름이라는 증명일 것이다.
처음 "문주란로 1길"이라는 표지판을 만났을 때는 빈약한 상식으로 가수 문주란을 떠올렸었다. 가수 문주란의 노래는 잘 모르지만 어린 시절 여러 번 들었던 이름인 까닭이었을 것이다. 사실 가수 문주란은 부산 출신으로 제주와는 특별한 인연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길 이름에 문주란이 들어간 까닭은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되어 있는 인근의 토끼섬 문주란 자생지 때문이다. 문주란이라는 이름은 "아름다운 구슬처럼 생긴 난초"이지만 난초과가 아니라 수선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따뜻한 곳에 사는 식물로 토끼섬은 문주란이 자생할 수 있는 북방 한계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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