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도 포구 인근의 별방진을 지난 올레 21코스는 해맞이 해안로 도로를 따라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 인근을 지나 하도 해변과 용항포 터에 이르러 지미봉 밭길로 진입한다.

 

하도리 마을길을 지난 올레길은 잠시 문주란로 1길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시 우회전하여 밭길 사이로 들어간다. 도로와 보행로 사이 화단에는 가자니아를 심어 놓았다.

 

올레길을 걸으며 태양국이라 불리는 노란 가자니아를 본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만난 것은 중심부는 노랗고 하얀 꽃잎을 가진 가자니아다. 남아프리카가 원산지인 국화과 가자니아속 식물로 20여 종의 가자니아가 있고 교배종이 많이 판매되고 있다. 제주도 토박이는 아니고 물 건너온 식물이다. 사철 꽃을 보게 하려는 의도에 맞고 제주에서 노지 월동이 가능한 품종도 있으니 많이 심는 모양이다. 훈장국이라는 별명도 있다.

 

길은 하도리의 마을 밭길을 가로질러 해안으로 나간다. 해안으로 나가면 김녕에서 올레 21코스의 종점인 종달리를 거쳐 성산 일출봉까지 이어지는 해맞이 해안로 도로를 따라 걷는다.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하지만 올레 21코스는 이 도로 옆으로 조성된 자전거길을 따라 지미봉 인근까지 해안을 따라 걷는다. 해맞이 해안로라는 길 이름처럼 제주도 동부에서 일출을 감상하기 좋은 장소다.

 

해안 도로에서 하도 포구 쪽의 풍경을 뒤로하고 우회전하여 길을 이어간다.

 

산티아고 순례길, 해파랑길도 그렇지만 걷기 여행을 하면서 도장 찍기는 때로는 아이들이나 하는 거지 하며 터부시 할 수도 있지만 지루할 수도 있는 걷기 여행에서 가끔씩 분위기를 전환하는 역할을 한다. 도장을 찍기 위해 잠시 숨을 고를 수도 있으니 완주 증명용이 아니더라도 나름 긍정적인 의미가 있다. 통상은 시작과 종료 지점에서 스탬프를 찍지만 요즘은 완주 인증을 위해 중간 지점에도 스탬프함을 설치하는 경향이다. 제주 올레 패스포트를 사용하는 경우  시작, 중간, 종료 지점 중에 2개 이상의 도장이 있으면 해당 코스를 완주한 것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간세 모양의 중간 스탬프함을 지나 길을 이어간다.

 

오전 9시를 바라보는 시각, 태양은 열심히 중천을 향하여 갈길을 가고 있지만 여전히 동쪽 하늘에서 눈부시다. 하지 근처에서 일출 시간이 가장 빠르고 일출 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라도 8월 초에는 오전 6시 전에 해가 뜨므로 1시간에 15도씩 움직이니 지금은 45도 지점에서 우리를 비추고 있는 것이다. 흰구름이 없다면 저 강렬한 햇빛을 온전히 받으며 걸었어야 했는데 그나마 다행이다.

 

불턱은 해녀들이 옷을 갈아입거나 휴식하는 장소이자 만남의 장소라고 한다. 하도리 신동 코지에 있는 불턱 안내문을 지난다. 코지는 툭 튀어나온 지형인 '곶'을 의미하는 제주 방언이다. 생각해보면 불턱으로 향하는 해녀의 발걸음은 도시에서 직장인들이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힘든 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기대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닌, 희로애락이 모두 있는 곳, 가야만 하는 곳으로 움직이는, 어느새인가 몸이 알아서 가고 있는 그러한 발걸음이지 않았을까.

 

인근 펜션에서 세워놓은 예쁜 표지판. 솟대 아래 단순하게 지역과 거리를 표시해 놓았지만 푸른 하늘과 들판, 흰구름을 배경으로 하니 작품이다.

 

도로 경계석에 인근 카페에서 무료로 찍은 공짜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자신의 재능을 활용하여 사람들도 즐겁게 하고 마케팅도 하는 일석이조의 전략이다. 커피 한잔 마시면 전문가가 찍은 인생 사진을 덤으로 얻을 수 있으니 괜찮다 싶었다.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풍경도 좋지만 그 풍경에 사람이 없으면 뭔가 허전한 느낌은 감출 수가 없다. 조물주가 빚은 최고의 작품인 사람이 풍경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사진 찍을 맛이 난다. 그러하니 카페 사장님은 사진 찍는 것이 노동이라는 부담이 아니라면 커피도 팔고 즐거운 사진 찍기도 하는 것이니 일석이조 맞다.

 

카페 인근 해변에는 사진 찍기에 도움이 되는 몇 가지 오브제도 설치한 모양이다. 그렇지만, 오전의 태양이 흰구름 속에 가려진 지금의 풍경은, 마치 태양이 간접 조명처럼 비추어 오는 이 그림은 잡는 사람만이 누리는 걸작이다.

 

올레길은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는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 바로 앞을 지난다. 토끼섬으로는 물이 조금 빠지는 간조 시간에 돌담길을 따라 걸어서 들어갈 수도 있다. 물론 허리까지 물을 적실 것을 각오하고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인근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한다. 여름이면 하얗게 꽃을 피우는 문주란이 가득한 섬이 토끼처럼 보인다고 토끼섬이라 불렀다고 한다.

 

밀물에 들어왔던 고기가 썰물에 갇히도록 만든 것을 갯담이라고 하는데 하도리 굴동에 위치한 멜튼개는 멸치가 잘 든다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돼지고기를 찍어 먹으면 일품인 멜젓이 생각난다.

 

야자수 가로수 뒤로 우리가 오를 지미봉이 성큼 다가왔다.

 

문주란 자생지인 토끼섬 인근이라 자연스럽게 퍼진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일부러 심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길 주변으로 하얀 꽃을 피운 문주란이 이어진다.

 

토끼섬을 지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길, 멀리 우도와 종달리 해변이 시야에 들어온다.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이라고 우도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바닷물에 닿아도 죽지 않는 강인한 생명력을 가진 순비기나무가 자줏빛 꽃을 피웠다. 덩굴 식물은 아니지만 줄기가 옆으로 퍼지면서 줄기에서도 뿌리를 내리므로 바닷가 모래밭에서는 빨리 퍼진다고 한다. 그래서 만형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이 식물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들은 스쳐 지날 수 있지만 꽃에는 꿀이 많아서 바닷가 밀원 식물로 활용 가능하고 아주 춥지 않은 곳에서는 상록 관목의 효용성도 있다. 잎과 줄기는 향기가 있어 입욕제로 활용하고 흑자색의 열매는 해열, 소염 진통의 효과가 있다고 한다.

 

투명 카약이 있는 하도 해변 너머로 지미봉이 한 발짝 더 가까이 왔다. 이름 그대로 하면 땅끝이라는 의미로 봉우리 두 개가 있는데 동쪽이 주봉이고 올레길도 원뿔 모양의 주봉을 향해 오른다.

 

올레길은 데크길을 통해서 잠시 하도 해수욕장 뒤편 산책길을 걷는다. 

 

하도 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데크길 주변으로는 문주란을 넉넉히 심어 놓아서 좀 더 가까이에서 문주란 꽃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문주란 꽃이 워낙 커서 꽃이 피기 직전의 꽃봉오리는 마치 호박꽃을 보는 느낌이다. 코를 가까이 하니 감미로운 향기를 맡을 수 있었다. 넓고 큰 잎으로 공기 정화 식물로도 좋다고 한다.

 

한 여름 피서객으로 북적일 하도 해수욕장은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한산하다. 

 

조선 시대만 해도 하도리와 종다리 사이는 바다였었다. 용의 목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용항포도 있었지만 지금은 1990년대 초반 건설된 해안 도로를 따라 종달리로 건너간다.

 

만 형태의 하도 해변에는 파도에 떠밀려온 파래들이 마치 잔디를 깔아 놓은 듯하다. 문제는 떠밀려온 해조류를 빨리 치우지 않으면 썩으면서 악취를 풍기기 때문에 제주도에서도 고민이라고 한다.

 

내륙 쪽으로는 동해안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석호는 아니지만 나름 호수인 용목개와당이 철새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후수 위로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구름이 해를 가려준다 싶더니만 얼마 전부터는 본격적으로 뙤약볕 속에서 걸어야만 했다. 우리 부부가 잘 선택하는 방법은 아니지만 시원한 콜라 한잔하며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가비오타라고 카페와 펜션을 같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주인장께서 콜라 하나를 시키니 시원한 얼음물도 같이 내어주는 센스를 발휘하셨다. 카페 바깥에서 신발도 벗도 땀을 닦아 내며 여유로운 휴식시간을 가졌다.

 

해안 도로에서 카페 옆길로 우회전하여 지미봉 밭길로 들어선다. 아무리 높이가 높지 않은 봉우리라 해도 오르막길을 앞두고는 긴장감이 더해진다. 이번 여정에 임한 나의 체력은 어느 정도인지 지미봉 봉우리를 오르며 가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미봉 밭길을 걷다 보면 묘소를 지나게 되는데 묘소 입구에는 붉은 꽃을 피우고 있는 배롱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목백일홍이라고도 불리는 배롱나무를 제주에서는 무덤을 환하게 밝히기 위해서 무덤에 심지만 집안에서는 심지 않는다고 한다. 풍수지리에서는 절개와 지조를 상징해서 충신이나 선비의 무덤에 가려 심는다고 한다. 한 여름 100일간 붉은 꽃을 피우는 배롱나무를 이번 여행에서 여러 번 만날 듯하다. 제주 밭길을 걷다 보면 어김없이 만나는 것이 묘소이기 때문이다.

 


댓글
댓글쓰기 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