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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도 해변의 숙소에서 하룻밤 휴식을 취했던 우리는 해파랑길 49코스 나머지와 50코스의 도보 여행 가능 구간까지 걷는 것으로 여정을 마무리한다.
하룻밤 묵은 부천장 모텔은 연식이 오래되기는 했어도 나름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었다. 해파랑길을 걷다가 해수욕을 하는 꿈만 같은 일을 경험할 수 있었다. 해수욕을 위한 준비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숙소 바로 앞바다에서 조개도 잡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젖은 옷은 빨아서 베란다에서 말릴 수 있었으니 문제가 될 게 없었다. 주인장이 바다가 보이는 방을 주셨는데 방안 벽면에는 이곳을 다녀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어찌 보면 낙서지만 벽에 나름 정성스럽게 적어 놓은 글을 읽으면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사연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모두들 허름한 숙소에 대한 짜증이나 불평을 쏟아 내거나 장난을 치는 것이 아니라 함께한 이들과의 관계에서 넘치는 애정을 글로 녹여낸 것이었다.
보슬비가 조용하게 내리는 초도 해변은 일요일 오전임에도 사람 구경을 할 수가 없다. 작은 우산 하나씩 들고 해파랑길 걷기 마지막 여정을 시작한다. 작년 가을부터 시작한 긴 여정이 오늘 비로소 그 끝을 맺는다. 감회가 새롭다.
초도 해변의 추억 때문일까 아쉬움에 자꾸 뒤를 돌아다보게 된다. 하루 종일 걸었던 피곤을 차가운 바닷물에 모두 씻어내고 모래 속에서 조개를 건져 올리며 30년 전 추억을 끌어올리던 기억은 아주 오랫동안 남을 것 같다. 멀리 보이는 화진포 해수욕장 앞바다의 금구도가 확실히 광개토대왕의 무덤임이 고증되어 우리 앞에 새롭게 등장할 날도 기대가 된다.
보슬비 속에서 대진항을 향해 천천히 나아간다. 그런데, 우산을 쓰고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산을 어깨와 턱으로 붙잡고 두 손을 이용해서 사진을 찍었으니 무식한 짓이었다. 사실 한 손만으로도 스마트폰 사진을 충분히 찍을 수 있는데 생각하지도 찾지도 배우지도 않았던 것이다. 스마트 폰의 촬영 버튼을 자신이 편한 곳으로 옮길 수도 있고(플로틴 버튼) 조금 번거롭지만 타이머를 이용할 수도 있다. 화면을 터치하지 않고 음량 버튼을 촬영 버튼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쉬운 방법이 있는데, 카메라의 "음성으로 촬영" 기능을 사용하는 것으로 해당 옵션을 활성화시킨 다음, 촬영한 곳을 비춘 상태에서 "찰칵", "촬영", "김치", "스마일"을 말하면 사진을 찍는 것이다. 버튼을 누르다가 화면이 흔들릴 일도 없으니 좋은 방법이다.
일요일 오전, 한참 장사로 분주할 대진항의 횟집과 식당들은 비 때문인지 한산하다. 산뜻한 색깔로 단장한 산책로를 따라서 대진항을 지난다.
대진항이란 이름은 경북 영덕에도, 강원 동해시에도 있지만 고성의 대진항은 국가 어항으로 관리되고 있는 규모가 큰 어항이다. 우리나라에서 최북단에 있는 항구이기도 하다.
다양한 조형물이 설치된 대진항 해상공원에는 비가 오는 중에도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바닥이 뚫린 철판 위로 바다를 보며 걸을 수 있는 곳이다.
대진항 항구를 따라 길을 이어간다. 대진 2리 버스 정류장 뒤편에는 예쁜 시계탑이 서있는 작은 광장을 만들어 놓았다. 마을마다 이런 광장을 갖는다는 것은 의미도 있고 참 좋은 시도가 아닌가 싶다.
회를 즐기는 편도 아니고, 저렴한 음식도 아니어서 우리 집과 회는 친하지 않다. 그런데, 시중에는 "비 오는 날 회를 먹으면 안 된다"는 속설이 있는 모양이다. 위생이 떨어지던 옛날도 아니고 속설에 그치는 이야기겠지만 슬슬 사람들이 몰려들 시간에 항구는 한산하다.
관광객은 많지 않았지만 대진항에서는 많은 주민들이 성게 살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인근 횟집으로 팔기도 하고 일본으로 수출한다고 한다. 말똥성게와 보라성게가 잡히는데 보라성게가 훨씬 흔한 모양이다.
해파랑길은 대진항 끝자락에서 대진 등대 방향으로 이동한다.
대진항에서 대진 등대로 가는 포장도로는 없고 비포장 샛길을 통해서 등대 입구로 갈 수 있다.
등대 입구에서 우회전하여 잠시 대진 등대를 들러서 간다. 1970년대에 세워진 팔각 모양의 대진 등대는 동해안 최북단의 등대로 전망대로 올라가면 맑은 날에는 금강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대진 등대에서 내려와 언덕을 내려가면 대진 1리 해변에 닿는다. 멀리 금강산 콘도도 눈에 들어온다. 동해시에서 배로 이동하던 것을 2003년 2월부터 금강산 육로 관광을 시작했는데 육로 관광을 위한 집결지가 바로 금강산 콘도였다. 2008년 북한군에 의한 관광객 피격 사건으로 관광이 중단될 때까지 200만 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금강산에 다녀왔다고 한다. 캄캄한 새벽, 통제선을 넘어선 한 여성의 죽음은 나비 효과를 일으켜 북을 통하는 모든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 공단이 폐쇄되고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남북이 으르렁 거리는 현재에 이르고 있다. 누구를 원망하랴!
비가 내리는 대진 1리 해수욕장은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으로 수심이 깊지 않아 해수욕하기 좋은 곳이다. 고성군의 시내버스를 타면 종점이 있는 곳도 대진 1리다.
이제 멀리 보이는 금강산 콘도와 마차진 해변을 지나면 해파랑길 49코스도 끝이 나고 마지막 코스만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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