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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남대천을 건너 명주동으로 들어온 해파랑길 38코스는 칠사당과 강릉 대도호부를 지나 강릉 중앙 시장이 있는 금성로를 걷다가 철도 지화화로 탄생한 월화 거리를 걷는다.

 

천천히, 느리게라는 의미의 강릉 사투리 시나미 명주를 보니 제주 올레길에 붙은 놀멍, 쉬멍, 걸으멍이 생각난다. 해파랑길 코스를 마무리하며 달성했다는 기쁨도 좋지만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쉬멍, 걸으멍 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시나미 해파랑길 걷기를 하는 것이 걷기의 본질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명주동 골목길을 나오면 칠사당과 강릉 대도호부 방면으로 35번 국도의 일부인 경강로를 건넌다. 태백으로 이어지는 35번 국도의 일부인 경강로 가로수가 특이했다. 은행나무 가로수 밑동에 담쟁이를 심어서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가을이 되면 노란 은행잎과 붉은 담쟁이 단풍으로 가로수 자체 만으로도 훌륭한 조형물이 되겠다 싶다. 강릉시는 가로수 조형화 사업을 꾸준히 해오고 있다고 한다.

 

경강로 길을 건너면 우회전하여 칠사당과 강릉 대도호부 관아를 차례로 지난다. 칠사당은 조선시대 일곱 가지 공무를 보았던 관청으로 일곱 가지 공무는 호적 관리, 농업 및 양잠, 병무, 교육, 세금, 재판, 풍속이다. 지방 수령이 해야 하는 일곱 가지 일을 말한다. 고려 때는 교육과 병무를 제외한 수령 5사가 있었다. 6.25 전쟁 후에는 강릉 시장의 관사로도 이용했다고 한다. 대도호부는 고려와 조선 시대 주요 지방에 설치한 관청으로 조선 초기에는  경상도 안동, 강원도 강릉, 평안도 영변에 설치했다가 나중에 함경도 영흥과 경상도 창원을 추가했다. 강릉은 고려 때부터 대도호부가 설치되었었다. 그렇지만, 일제가 강릉 대도호부 건물 대부분을 철거해서 옛 모습대로 남아 있는 것은 칠사당과 삼문 정도뿐이고, 나머지는 복원한 것이라 한다.

 

강릉 대도호부를 지나면 객사문 사거리에서 길을 남쪽으로 되돌아간다. 임영로 도심을 걷다가 좌회전하면 강릉의 중심 거리라 할 수 있는 금성로로 들어선다. 강릉 중앙 시장을 지나 월화 거리로 이어지는 도심 거리이다.

 

금성로에 붙은 다양한 조형물들. "쇼핑하러 가자"라는 문구에 어울리듯 대형 상설 전통 시장인 강릉 중앙 시장도 있지만 금성로 좌우로는 쇼핑할 것 천지다.

 

강릉 중앙 시장과 중앙 성남 전통 시장은 모두 강릉시 성남동에 위치한 시장으로 이어져 있다고 봐도 된다. 들어갔다가 갈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사람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헤어 나올 자신이 없었다. 다양한 먹거리로 유명한 곳이다.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강원 영동 지방의 물류 중심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시국에 이 정도이니 평상시 같았으면 사람으로 미어터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이다. 앞서 점심을 먹지 않았더라면 이곳에서 더 많은 선택지가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공간이었다.

 

금성로를 따라 시장 골목을 지나면 이내 강릉의 명동이라 할 수 있는 월화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예전 같으면 철도 교각이 머리 위로 지나갔을 텐데 철도는 땅속으로 들어가고 이곳은 이제 강릉을 찾는 모든 이들에게 필수 방문지가 되고 있다. 노암동 문바위 인근에서 땅속으로 들어가는 철도는 한강 하저 터널처럼 남대천 아래를 통과하여 이곳을 지나 반지하 형태의 강릉역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땅속으로 들어간 철도 덕분에 생긴 땅은 월화 거리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한 것이다. 남대천 강가에 있는 월화정이라는 정자가 월화 거리 이름의 유래이다. 아스터 꽃이 화단 끝자락에서 앙증맞게 여행객을 맞는다.

 

꽃양귀비를 좋아하는 옆지기의 성화에 양귀비도 한컷 남기고 길을 이어간다.

 

10년 전만 해도 남대천 철교를 넘어온 철도가 지나면서 도시를 더욱 어둡게 하는 풍경이었는데, 천지개벽 수준으로 거리가 바뀌었다. 오른쪽 사진은 교각 아래 굴다리가 있던 자리인데 교각도 없어지고 이제는 산책 명소가 되어버린 폐철교 입구에서 월화 거리를 나타내는 조형물과 조각 작품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버스킹 공연이 자주 열린다고 한다. 그 누가 지금 이 자리 아래로 고속철도가 지나고 있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원주에서 강릉으로 이어지는 철도는 복선 전철이지만 강릉 도심 지하화 구간인 강릉 터널은 단선으로 최대 지하 깊이는 37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하늘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들을 표현한 아름다운 작품이 발길을 붙잡는다.

 

월화 거리 풍경은 그야말로 일품이다. 걷기 여행이 아니라도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도시 강릉이다.

 

조각상 옆에서 옆지기를 앉게 하고 인증숏 하나 남긴다. 김문기 작가의 "여유"라는 작품인데, 모든 이들이 놀멍, 쉬멍 하며 시나미 하게 사는 삶이 되기를 바라본다. 여유는 창조력과 배려, 도약의 기반이 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예전에는 기차가 지나던 철교가 이제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산책로로 바뀌었다. 

 

폐철교 산책로에서 바라본 강릉교의 모습이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강릉 남대천의 수량을 확보하기 위해 다리 아래로 두산보가 설치되어 있다. 멀리서 보아도 보 상류와 보 하류와의 높이차는 상당히 큰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어도가 있기는 하지만 물이 없는 어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적절치 못한 설계와 관리 때문에 가을이면 자신의 고향을 찾아오는 연어가 이 보에 막혀서 허무하게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연어 회귀로 유명한 양양 남대천의 경우에도 상류까지 올라온 연어가 인공 구조물 때문에 다시 바다로 나갈 길을 찾지 못하면 그냥 민물고기가 되어 산천어가 되고 마는 일도 벌어진다고 한다. 인공구조물은 그대로 두고 치어 방류만 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하는 한숨이 나온다.

 

다리 중간에는 유리 바닥도 있어서 철교의 뼈대와 함께 남대천을 바라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정말 아찔했다.

 

월화 거리의 이름 유래인 월화정이 정면으로 다가온다. 1930년 강릉 김 씨 후손들이 신라시대 설화를 배경으로 지은 것이다. 경주에서 강릉으로 부임한 무월랑과 연화부인의 러브 스토리가 깃든 곳이다. 강릉에 부임하여 우연히 연화를 만나 사랑에 빠진 무월랑은 다시 조정의 부름을 받고 경주로 떠나면서 둘 사이는 소원해졌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부모님의 결혼 성화에 지쳐가던 연화는 자주 가던 연못의 잉어에게 편지를 부탁했고, 무월랑이 부모님의 병환으로 잉어를 사 와서 배를 갈랐는데 그곳에서 연화의 편지를 보고 둘이 다시 재회했다는 이야기다. 춘향전의 모티브가 되었다고도 한다.

 

기차가 다니던 철길이 깔끔하게 정비된 산책로로 변신했는데, 철로 주변에 사시던 노암동 마을 분들은 환경이 좋아져서 좋을까? 아니면 사람들이 북적거려서 싫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았다. 이전 같으면 한참을 돌아서 가야 했던 시장도 자전거 타면 안전하게 금방 다녀올 수 있으니 좋고, 집값도 최소한 떨어지지 않았을 테니 좋고, 좋은 점이 많아 보이기는 한다.

 

하트 모양의 잎을 가진 계수나무. 일본에서는 잎을 따서 말려서 가루를 내어 달콤한 냄새가 나는 향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월화 거리에 어울릴 만한 사랑 사랑하는 나무로 택하지 않았나 싶다.

 

기차가 다니던 노암 터널도 조명이 설치된 깔끔한 월화 거리 산책로가 되었다.

 

역사와 현대 건축 기술, 러브스토리가 담겨 있는 월화 거리는 부흥마을에서 마무리된다. 거리를 조성하면서 심은 나무들이 더욱 울창해질 무렵이면 이 거리는 더욱 명품 거리가 되어 있을 것 같다. 그때는 등에 짊어진 배낭 없이 가벼운 차림으로 옆지기와 함께 시장에서 군것질도 실컷 하고 월화 거리도 추억 삼아 다시 걸어볼까 하는 기대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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