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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Km로 길이는 길지 않지만 난이도가 해파랑길에서 가장 높다는 괘방산 산행을 시작한다. 그런데, 괘방산의 높이가 300여 미터로 그리 높지 않고 능선을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코스는 아니다. 정동진리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안인항에서 코스가 끝난다. 염려반 기대 반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등산로 입구에는 안보 체험 등산로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1996년에 발생한 강릉 무장 공비 침투 사건이 계기가 되어 설치된 등산로다. 기억에 살짝 남아 있는 사건으로 돌아보니 당시에 전국을 상당히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었다. 상어급 잠수함을 타고 강릉 안인진리 해안에 도착한 무장 공비 26명이 당시 춘천에서 열렸던 전국 체전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저격하려 했던 사건이었다. 이들이 타고 온 잠수함이 좌초되면서 침투 사실이 발각되었고 이때부터 49일간의 공비 소탕 작전이 시작되었고. 1명이 생포되고, 13명이 사살되었으며, 11명은 자체적으로 처형했다고 한다. 아군도 11명의 전사자가 발생한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리 멀지도 않은 과거, 헬기에서 줄을 타고 내려가던 특전사 요원이 사살당하는 사건이 이 땅에서 벌어졌으니......

 

등산로 초입은 경사도가 조금 있지만, 이곳만 벗어나면 완만한 오르막이 이어진다. 쾌청하게 맑은 날 숲 속으로 들어오는 따스한 햇살, 싱그러운 숲 냄새를 맡으며 기분 좋은 산행을 이어간다.

 

나무들 사이로 밝게 비추는 아침 햇살은 그 자체로도 아름답지만, 연두연두하게 잎을 올리고 있는 작은 나무들의 잎들을 더욱 찬란하게 만들어 준다. 누군가 걸어 놓은 새집에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숲길을 이어간다.

 

능선에 올라오면 오르막이라고는 왠만한 산책로 걷는 느낌으로 걸을 수 있다. 해파랑길에서 난이도가 가장 높다는 길이 이 정도라면, 겁낼 필요 없겠는데! 하며 발걸음도 가벼워진다.

 

통통하고 쭉쭉 뻗은 소나무는 아니지만 온통 자갈밭인 이 산에서 뿌리를 내리고 세찬 바람을 견딘 소나무들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덧 산 능선에 올라왔는지 주변 경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동해 바다 쪽은 어디가 바다인지, 어디가 하늘인지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모두 푸르다.

 

정동진리에서 길을 시작한 까닭일까, 정동진의 배 모양 호텔이 선명하게 시선에 들어온다.

 

내륙 쪽으로는 산을 깎으며 길을 만든 7번 국도와 동해 고속도로의 모습이 산이 잘려 나간 곳을 통해서 선명히 드러난다. 7번 국도보다 좀 더 내륙 쪽으로 길을 만든 동해 고속도로는 강릉시 강동면 구간에서 5개의 터널과 여러 교량으로 직선화 된 도로를 이어간다.

 

183봉이라 불리는 작은 봉우리를 지난다. 해파랑길 36코스는 강릉 바우길 8구간과 함께하는 길인데 8구간의 별칭이 바로 "산 우에 바닷길"이다. 길은 삼우봉을 향해서 이어진다. 괘방산 봉우리를 지나서 조금 더 가면 만나게 될 봉우리다.

 

183봉을 지나 내리막길로 능선은 이어진다. 조금 거칠 때도 있지만 거친 구간은 그리 길지 않다. 발을 가볍게 해주는 완만한 내리막 숲길은 언제나 반갑다.

 

이름 없는 작은 봉우리에는 작은 돌무더기 만이 그 존재를 나타낸다. 이런 곳을 지날 때면 나도 돌 하나 얹어 놓고 가야 할까? 하는 찰나의 의문을 늘 품곤 한다. 

 

수줍은 봄처녀의 모습 같은 연분홍빛 진달래가 반갑다. 날이 쾌청한 날이면 한낮에는 따뜻하지만 이른 아침에는 여전히 쌀쌀한 아슬아슬한 초봄의 계절, 진달래가 지면 이 초록 숲에는 무엇이 특별한 색상으로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할지......

 

자갈 투성이의 내리막길. 어렵지 않은 능선을 걷지만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다.

 

능선에서 보이는 것은 산을 깎아 길을 낸 동해 고속도로의 모습뿐이다.

 

쉼터에서 잠시 쉬어간다. 쉼터가 많은 것이 아니므로 쉴 때는 쉬어 주어야 한다. 정동진에서 1.9Km이고 안인항까지 남은 거리가 7.5Km이니 아직 갈길이 멀다.

 

때로는 해파랑길 표지판보다는 바우길 표지와 리본이 계속 이어지기도 한다.

 

새로 돋아나고 있는 앙증맞은 나뭇잎의 모습이 마치 꽃과 같다. 

 

이 구간의 바닥은 유난히 검다. 마치 예전에 석탄을 채굴했던 광산이 있던 곳 아니야!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그런데, 알고 보니 착각이 아니었다.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정동 탄광 지구라 하여 정동진리, 산성우리, 심곡리의 많은 주민들이 탄광업에 종사했다고 한다. 전국 각지에서 석탄을 캐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1989년 석탄 산업 합리화 정책으로 탄광은 폐광되었다고 한다. 지금이야 관광객으로 붐비는 정동진역은 사실 석탄 수송을 위해 만들어진 간이역으로 역 주변은 쌓아놓은 석탄에서 날리는 검은 먼지로 온통 시커멓게 변했었다고 한다. 지금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그 역사를 몸으로 써오신 분들에게는 상전벽해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거뭇거뭇한 돌들에 호기심의 촉을 세우고 길을 나아간다.

 

마치 벌레처럼 생긴 오리나무의 꽃들이 한창이다.

 

이렇게 검은 흑토지대를 지나는 산행길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독특한 길이었다. 정동진이 어려운 시절 많은 이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석탄 생산 지역이었다는 것을 많은 이들을 모를 것이다. 무연탄에 진흙을 섞어 연탄을 만들어 수많은 가정이 난방 연료로도 취사 연료로도 사용했었다는 기억은 부끄러운 기억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질 것이다. 석탄의 질은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산길에도 드러나 있는 석탄 광맥이라면 호주에서 유연탄을 기계로 퍼내듯 사람 손으로 위험하게 캐내지 않고도 포클레인으로 퍼내도 되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보았다.

 

당집을 1Km 남겨 놓은 지점. 이제부터는 오리나무 숲길이 이어진다. 소나무 숲길을 걷다가 활엽수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매력을 선사받는다.

 

바닥으로 떨어진 오리나무 꽃들을 사뿐히 즈려 밟으며 아름다운 오리나무 숲길을 빠져나간다.

 

길은 안인항을 6Km 남겨둔 지점에서 널찍한 임도를 만나서 잠시 동안 산책하듯 걷는다. 산성우리로 이어지는 임도다.

 

차량이 다니기는 힘든 길이지만 우람한 소나무들 사이로 편안하게 산책하듯 걸을 수 있는 산중의 산책길이었다.

 

편안한 임도를 얼마간 걸으면 또 다른 임도와 교차하는 사거리를 만나는데 이곳에서 해파랑길은 직진하여 당집 방향의 산길로 들어간다. 새로 만나는 임도를 따라 우회전한다면 계곡을 따라 내려가 고성목 해수욕장이 있는 해안으로 내려가게 된다. 좌회전하면 처음 만나 임도가 시작되는 산성우리로 내려가게 된다.

 

당집에 도착했다. 산신을 모시는 곳이란다. 이곳은 우람한 나무들이 멋진 숲을 이루고 있는 곳이었다. 잠시 배낭을 내려두고 넉넉한 휴식을 취한다. 숲 속 그늘이어서 외투를 꺼내 입어야 할 정도로 선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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