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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변항에서 출발하여 봉대산과 일광 해수욕장을 거쳐 임랑 해수욕장에 이르는 해파랑길 3코스를 시작한다. 15Km가 넘는 길을 6시간 이상 걸어야 하지만 오늘도 눈부시게 맑은 햇살로 해파랑길 걷기에 힘을 돋우어 준다.

 

평화로운 대변항의 아침 모습이다. 오늘도 숙소에서 버너로 밥을 해서 점심 도시락도 챙기고, 아침도 든든하게 먹었다. 버너 바닥에 조금 누른 누룽지에 물을 넣고 끓여 먹는 맛이란! 역시 그냥 밥에 물을 넣고 끓인 것과는 맛에 차이가 있다. 식사 후에 뜨거운 누룽지도 먹었으니 완전한 식사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집에서도 누리지 못하는 식사의 완성을 걷기 여행의 매일 아침에 누리고 있는 셈이다. 사실 식사 후 누룽지 끓이기는 코펠을 어렵지 않게 씻기 위한 개인적인 방법이다. 설거지에도 도움이 되고 든든한 식사 마무리도 되니 일석이조의 누룽지 끓이기다. 든든한 아침 식사 덕에 연 이틀 걷기의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이 가볍다.

 

대변항은 해양수산부 장관이 지정한 국가 어항이다. 어부와 어선을 보호하고 수산물 유통의 거점 역할을 하는 항구를 말하는데 전국적으로 110개가 넘는 국가 어항이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부산에는 다대포항과 대변항 정도가 지정되어 있다. 해파랑길을 타고 쭉 올라가다 보면 동해안을 따라 25여 개의 국가 어항들을 만나지 않을 싶다.

 

대변항(大邊港)이라는 이름을 처음 본것은 이 근처로 출장을 왔던 길에 차 안에서 본 길 표지판이었다. "대변"이라니 동네 이름이 뭐 이래! 하면서 웃었더랬다. 그러나 대변포(大邊浦)라고 처음 불린 것은 조선 후기로 대동법 시행 이후 세금으로 걷는 쌀을 보관하는 창고인 대동고 주변에 있는 포구라고 해서 대동포라 불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요즘 한창 종합부동산세가 폭탄이라고 일부 세력들이 난리를 치고 있는데, 대동법을 지금 시행한다면 그들은 거의 죽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토지의 1 결당 12두씩 똑같이 세금을 내도록 했던 대동법도 양반 지주들이 난리를 피워서 결국 경기도만 시행하다가 일백 년이 지난 다음에야 전국적 확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변항의 멸치 광장. 상징물이 워낙 크다 보니 멸치가 아니라 거대한 청새치가 아닌가 싶었다.ㅎㅎ  대변항하면 멸치, 멸치 하면 대변항이라 여행 전에는 멸치 요리도 먹고, 멸치젓도 저렴하다면 옆지기에게 큰 것으로 선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막상 대변항에 도착하니 멸치 잡이 배는 눈을 씻고도 찾을 수 없었다. 이른 아침이라 그렇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봄 멸치(2∼6월)는 산란을 끝낸 멸치로 작고 부드러워 젓갈로 많이 담그고 가을 멸치(9∼12월)는 10센티 내외로 크기가 커서 회, 구이, 조림 등 다양한 요리로 즐긴다고 한다. 아침 식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요리를 먹을 수도 없고, 아쉬우니 수많은 젓갈집 가운데 하나에 들러서 창난젓 하나 구입해서 배낭에 넣었다. 남은 여행 내내 좋은 반찬 역할을 해주었다. 얼마전 까지도 명란젓, 창란젓 이렇게 사용했는데 알고 보니 명태의 알로 만드니 명란젓은 맞는데 창란은 알이 아니니 틀린 말이었다. 창난젓은 명태의 창자로 만드는 젓갈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라 한다. 중국 고서에서는 창난젓을 명태의 창자, 위, 알집을 씻어서 만든다고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대변항 끝자락에서 좌회전하여 대변 숲속길로 향한다.

 

멸치의 고장 대변, 미역 특산지 기장 답게 봉대산으로 향하는 길에서는 젓갈 발효통, 미역 말리는 공간들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해파랑길 표식을 따라 마을길을 올라가다 보면 봉대산 등산로를 만난다. 해파랑길 1코스부터 3코스까지 코스의 시작은 늘 숲길 또는 산길 걷기로 시작한다. 1코스에서는 이기대 자연공원을 걸었고, 2코스에서는 달맞이 공원, 오늘은 봉대산 걷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1, 2코스의 공원은 말이 공원이지 오르락내리락 등산이었다. 그런데, 오늘 걷기의 시작은 아예 대놓고 등산이다. 해파랑길을 설계한 분은 의도였는지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해파랑길은 산길과 해안길이 적절하게 섞인 길이다.

 

들풀이 자라난 오르막을 천천히 밟아간다. 지난 이틀 간의 걷기 탓일까 오르는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정인의 "오르막길"이 우리 부부의 걸음과 마음을 딱 표현하는 듯하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 일지 몰라...

 

숙소를 떠난 지 1.5km 내외를 걸었고, 봉대산 정상까지는 7백 미터 내외가 남았는데 벌써부터 머리카락 몇 가닥 없는 머리에서는 땀이 비처럼 쏟아진다.

 

대변항 쪽에서 오르는 산길에는 오가는 사람이라고는 우리 밖에 없다. 대변항 쪽으로는 큰 아파트 단지가 없는 까닭 이리라. 이 숲길에는 나뭇잎 사이로 비집고 들러오는 따스한 아침 햇살, 가을의 싱그러운 냄새, 브이자를 거꾸로 표시하고 있는 해파랑길 리본 그리고 부부의 거친 숨소리뿐이다. 고요하다.

 

예전 일본 구마노고도 걷기 기억을 떠오르게 하는 숲길이다. 비슷해서 떠오른 기억이 아니라 너무나 대비가 되어서 생각난 기억이다. 바닥에는 다양한 들풀이 깔려있고 키 높은 교목과 키 작은 관목이 어울리며 다양한 색깔을 선사한다. 눈을 편안하게 한다. 이름 모를 산새의 지저귀는 소리, 코를 간질이는 풀 냄새, 나무 냄새, 이러한 것들이 우리나라 가을 숲에서 느끼는 시각, 청각, 후각이라면 일본 구마노고도 산길에서 느끼는 것은 삼나무 한 가지만 존재하고 아무런 냄새도 느껴지지 않으며 새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플라스틱으로 만들어 놓은 것과 같은 숲이었다. 물론 아주 일부의 숲으로 일본의 모든 장소를 일반화시킬 수는 없다. 다만, 사람의 경제적 전략이 담긴 숲이 아니라 자연이 만들어가는 숲이 숲도 살리고 사람도 살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조금은 가파른 구간도 있다.

 

동해안 해안을 따라 올라가는 해파랑길은 가는 길에 거대한 산업단지나 발전소와 같은 막힘이 없다면 웬만하면 해안을 붙어서 걷는다. 4코스에서는 원자력 발전소, 5코스에서는 산업단지 때문에 내륙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해안으로 길을 잡는다. 그런데, 왜 3코스에서도 내륙으로 들어갈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그 답을 준 것이 바로 "월전 마을" 표지판이다. 대변항을 거쳐 해안을 따라 월전항, 죽성항까지는 갈 수 있었겠지만, 지도를 보니 죽성항에서 해안을 따라서는 일광 해수욕장 옆에 있는 학리항으로는 갈 수가 없다. 기장군청 옆으로 해서 바다까지 흐르는 죽성천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봉대산을 넘어 기장읍내를 거쳐 일광 해수욕장으로 이르는 길을 만들었구나 하는 추측을 하게 된다.

 

대변항 쪽에서 오르는 길이 아직 정비가 되지 않은 까닭에 등산로 초입도 그렇고 사진처럼 누군가의 무덤들 사이를 지나가기도 해야 한다. 정비가 되지 않은 까닭에 산책하는 사람이 많지 않은 점은 좋다.

 

봉대산 정상까지 200미터가 남았다. 표지판에 있는 무양 마을도 대변항에 있는 동네로 대변항에서 봉대산으로 올라오는 산길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229미터의 작은 산이지만 저질 체력은 이 정도의 산도 버겁다. 정상에 오르면 일단 기장문화원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봉대산은 조선 시대에 봉수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봉대산이란 이름의 산은 해운대에도 있는데 그 산은 634미터에 이른다. 그 산 또한 봉수대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들이 기장의 봉대산 등반을 한다면 보통은 기장 문화원에서 시작해서 산을 넘어 죽성리까지 간다고 한다. 해파랑길은 주 등산로가 아닌 대변항에서 시작해서 내려갈 때도 기장 문화원까지는 가지 않고 중간에 기장군청 방향으로 꺾어진다.

 

정상 부근에 마련된 체육공원. 기장 문화원 쪽에 아파트가 많은데 그쪽에서 올라오시는 분들을 위한 운동 기구들이 아닐까 싶다. 

 

정상 부근은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정상 부근에서 기장 문화원 방향으로 가는 길은 대변항에서 올라오던 길과는 다르게, 산책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길도 널찍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나이를 먹으면 내리막길도 무릎 때문에 올라오는 길 못지않게 힘이 들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곳은 살살 내려가고, 경사가 급하면 지그재그로 느릿느릿 내려간다. 젊은 시절 지리산을 내려갈 때는 배낭을 등짝에 통통 튕기며 뛰어 내려가고 경사가 높은 곳이면 아예 점프하는 스릴을 느끼기도 했는데 이제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한다. 에고.

 

기장 문화원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갈림길을 만나게 되는데 갈림길에서 기장 문화원이 아닌 우신 네오빌 아파트 방향으로 꺾어져야 한다.

 

대변항부터 이어진 봉대산 길을 그려본 그림이다. 이제 갈림길에서 점선 방향으로 내려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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